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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동영상, 사망자수, 생존자수, 침몰원인


RMS Titanic -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으며 17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사망자 9명, 구조자 179명, 실종자 287명이라는 대형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보다도 더 큰 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여객선참사 중 가장 큰 대형참사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번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보다도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큰 여객선 침몰사건이 1912년에 발생한 바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라고 할 수 있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여객선참사로 기록될 만큼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대형참사로 기록된 초호화유람선 침몰참사이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탑승객 2,223명을 태우고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하여 미국 뉴욕을 향해서 항해하던 중 4월 15일 대서양에서 거대한 빙산을 만나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곧바로 침몰해버렸으며 당시 무려 1,514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인류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낳았던 대형참사였다.

뉴욕쌍둥이빌딩 테러폭팔 사고 때보다는 더 큰 규모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 여객선사고이다. 이 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당시 구조된 사람은 710명에 불과했고 무려 1,514명이나 사망했다.


대서양 횡단을 목적으로 건조된 타이타닉을 화이트스타 라인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여객선이었는데 말이 여객선이지 사실상 유람선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설비를 갖추고 있는 초호화유람선이었다.

타이타닉호는 46,328톤으로 11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형 수영장과 초호화 스위트룸, 실내체육관, 찬란한 샹들리에가 눈부신 계단, 대형 레스또랑, 드넓은 산책코스 등 화려하고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아름답고 거대한 유람선이었다.



당시 승선한 탑승객 2,223명에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710명의 가난한 승객들도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서 더욱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던 사고였다.

이렇게 4만 6천톤급 11층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원인은 빙산과의 충돌 때문이었는데 또다른 원인은 바로 통신사의 안이한 태도로 인해서 위험신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타이타닉호가 항해 나흘 째인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경 20m의 거대한 빙산과 만나 충돌했는데 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항로를 변경해서 피할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타이타닉호가 침몰로 대형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타이타닉호 통신사 잭 필립스의 안이한 대응태도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타이타닉호는 다른 선박 통신사로부터 6번의 빙산위험 경고통신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항로를 변경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빙산충돌을 피할 수 있는 상황

이었다.



그런데 타이타닉호 통신사 잭 필립스는 빙산위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안 호의 통신사 에반스가 보낸 빙산위험 통신을 절차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폐기해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범하고 말았고 그러다가 타이타닉호는 전방 450m거리에 있는 20m의 거대한 빙산과 조우하게 된다.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빙산을 보았을 때 1등항해사등 승무원들이 제때에 선박을 돌리지 않는 2차 실수를 범하고 말았고 나중에 배를 우회전했을 때는 이미 늦어진 상황이 되고 말았다.

타이타닉호가 우회전하면서 선박의 아래부분이 빙산과 충돌했고 이 때 여객선 우측 하단에 90m가 손상되어 바닷물이 엄청나게 선체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타이타닉 통신사가 6차례나 받은 빙산위험 통신에 귀 기울였다면, 그리고 빙산을 보았을 때 신속히 뱃머리를 돌렸더라면, 충돌 및 침몰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 선례가 전혀 없었던 탓에 안전불감증에 푹 빠져있던 승무원들의 무사안일한 태도로 인해 미리 대처하지 못해서 선량한 승객 1,514명이 억울하게 사망하게 되는 대형참사를 낳게 된 것이다.



대형여객선 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안전개념과 대응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승무원들의 평소의 안전의식과 상황발생시 위기대처 능력의 여하에 따라서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피해를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이타닉호 하단으로 침투한 바닷물은 서서히 선박의 대부분으로 밀려들어갔으며 3시간 만에 타이타닉호를 완전히 침수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구명정이 20개 밖에 되지 않았는데 20개의 구명정으로는 사람 1,178명을 태울 수 있었으며 타이타닉호 총 탑승객은 2,223명 전부가 승선할 구명정을 부족하게 구비한 것도 2차피해를 키웠던 또다른 원인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원래 방수용 격벽이 설계되어 있었고 문들도 물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실제 사고발생시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구명정에 타지 못한 천명 이상의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게 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십 분 내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사람이 바다물에 빠졌을 경우에는 저체온증으로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동영상




스미스 선장은 배수 펌프로 선박안에 차있던 물을 밖으로 빼내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저 몇 분의 시간을 더 버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타이타닉호와 불과 20km 정도의 거리에 정박중인 화물선 캘리포니안호가 있었지만, 해당통신사가 타이타닉의 통신사에게 일침을 듣고서는 화가 나서 취침 중이라 타이타닉호의 긴급 조난신호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약 90km나 멀리 떨어진 여객선 카르파티아호가 타이타닉호가 보낸 조난 신호에 응답해 전속력으로 타이타닉이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배의 최대 속도가 17노트밖에 되지 않는 카르파티아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타이타닉호가 침몰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였고 그 때부터 카르파티아호에 의해서 구명정에 타고있던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총 710명을 구조하였지만 구명보트에 타지 못한 채, 구조되지 못한 1,514명의 사람들을 아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3차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장 가까운 거리(20km)에 있던 켈리포니안호가 구조요청 통신에 응답해 더 빨리 구조하러 왔더라면 훨씬 사망자를 줄일 수도 있었지만 켈리포니안호 통신사는 타이타닉호 통신사와 빙산위험 통신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로 인해서 서로 감정대립이 생겼으며 그로인해 타이타닉호의 조난통신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더욱 큰 인명피해를 가져왔던 것이다.


타이타닉호 침몰과정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혀져 오고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되기 시작한 후에도 남들에게 양보하기 위해서 구명정에 타지 않고 배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노부부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이 매우 좋은 노부부였는데, 남편 이사도라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은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하인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하인을 구명보트에 태운 뒤 남편과 함께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백만장자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현지처와 하인을 보트에 태우고 자신은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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