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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청순미인 유지인, 신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영화, 과거사진, 결혼과 이혼사유




왕년의 미인의 대명사였던 유지인은 현재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방송에 출연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답니다. 유지인은 드라마 ‘청담동스캔들’에 출연하면서도 대학에서도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로서 정력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최근 ‘정윤희’의 근황이 알려지면서 70년대 3대 미인 트로이카가 새삼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70년대 중후반 ‘아시아의 대표적 미인’이라는 칭호를 들었던 ‘정윤희’는 정말 그당시 완벽한 미모로 손꼽혔던 미인이었죠. 

또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미모 못지많게 탄탄한 연기력도 인정받았던 70년대 톱스타였다는 점은 사실입니다.그런데 정윤희가 활동했던 70년대에는 미모의 톱스타가 정윤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정윤희 말고도 눈에 띄게 아름다웠던 또한명의 여배우가 그 시대를 주름잡고 있었는데 바로 여배우 ‘유지인’이랍니다.

정윤희가 완벽한 조각미인 소리를 들었다면 ‘유지인’은 이에 질세라 ‘청순한 미인’ ‘세련미 넘치는 미인’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여배우로서 정윤희와 유지인은 동일한 시대인 70년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서로의 미모를 뽐내면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각종 CF모델을 휩쓸고 다니면서 그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요.



정윤희는 선굵은 윤곽이 뚜렷한 미모를 자랑한다면 유지인은 세련미 넘치는 청순 미모로서 서로 다른 개성을 발휘하면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기영역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면서 각기 큰 인기를 누렸었답니다.


과연 이 두 여배우중 누가 더 미인인 지, 누가 더 인기가 있었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답니다.딱 두가지만 말할 수 있습니다. 


지인과 정윤희가 활동했던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까지 거의 10년 동안은 두 여배우가 각기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서 주연으로 활동했다는 점과 그리고 모든 여자연예인들의 로망인 화장품CF 모델에 전속적으로 출연했다는 점이 이 두 여배우 공통점이랍니다.

이 두가지 요건을 충족했던 정윤희와 유지인은 그 시대에 톱스타로 군림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유지인은 많은 젊은 남자들의 로망인 ‘청순한 미인’ ‘청순가련형의 미인’의 필요충분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젊은 남성팬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답니다.

지금 59세의 나이인데도 동년배의 다른 연기자보다 훨씬 젊어보이며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어서 신기할 정도이지요.


드라마에세 오히려 젊은 여주인공보다 더 예뻐 보이기까지 해서 유지인이 청춘영화에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도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젊음과 미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답니다. 50대 후반에도 저 정도이니 그녀가 젊었을 때인 70년대의 그녀의 미모는 오죽하겠습니까?


70년대 유지인의 미모는 한마디로 말해서 국보급이었으며 청순미인의 대명사였습니다.

유지인의 미모는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고고함’과 ‘정갈함’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지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미인이 아니라 고귀한 품격에서 우러나오는 고품격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지인은 세련미가 특히 돗보였던 미인이였지요. 이러한 유지인의 필살 미모에 화장품회사들이 그녀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지요.


70년대 당시 쥬단학 화장품(현 한국화장품 전신)에서는 유지인을 화장품 전속모델로 스카웃해서 유지인은 트로이카 중 가장 먼저 화장품 CF모델을 촬영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지인이 21살의 어린 나이에 화장품 모델로 선발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미모가 일찍부터 ‘공인’되었음을 의미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화장품 CF모델은 모든 여자연예인들이 가장 찍고 싶어하는 최고의 로망이자 선호도 0순위인데 여성연예인이 화장품 CF모델을 찍고 나면 그녀의 미모는 당시대 최고의 미인으로서 공인받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유지인은 이미 데뷔한 직후 아직 신출내기 시절에 트로이카 중 가장 먼저 쥬단학화장품 CF모델로 발탁됨으로써 ‘공식 미인’ 1호가 되었답니다.


유지인의 미모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때묻지 않은 ‘청순한 미인’이라는 것이지요. 유지인의 고품격과 더불어 청순한 미모는 트로이카 세명의 여배우 중 가장 돗보이는 유지인만의 매력 포인트이지요. 물론 70년대 트로이카가 모두 미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각기 자기 개성이 있고 독특성이 다르지요.


장미희는 동양적인 풋풋한 미모, 정윤희는 선굵고 윤곽 뚜렷한 섹시한 미모, 그리고 유지인은 백옥처럼 아름다운 세련미 넘치는 청순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답니다. 세명의 트로이카 미인들이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까지 모두 톱스타로 군림하면서 한국 연예계를 3등분하면서 3두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답니다.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가 활동하던 이 시기의 우리 연예계에서 이들 세 명의 인기를 능가할 다른 배우들은 전무했습니다.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CF모델이면 CF모델 등 우리 연예계의 세분야에서 이들 트로이카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니까요.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처럼 때로는 협력하면서 때로는 경쟁하면서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는 인기를 삼등분해서 자기영역에서 최고의 연기자로 군림했었지요.


유지인은 74년도 영화 ‘그대의 찬손’의 공개오디션에 공모해서 무려 2,3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주연여배우로 뽑혔답니다. 과연 이기록이 그 후에 깨졌는지는 확인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고등고시 100대l의 경쟁률보다도 훨씬 높은 2,300:1의 경쟁률에서 1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장 약한 사람은 저런 경쟁률 높은 오디션에 가슴 떨려서 신청조차 않합니다. 말이 여배우 공개모집이지 사실상 그시대에는 미인대회나 다름없답니다.


정윤희


다시말해 최고의 미인을 뽑는 모집이벤트였다는 말이지요. ‘미스코리아 진’ 보다도 뽑히기가 더 어렵다는 2,300:1의 경쟁률에서 1위로 뽑힘으로써 이미 유지인은 데뷔할 때부터 그녀의 미모가 출중했었다는 증표를 받은 셈이지요.


유지인이 나이 19세의 어린 나이에 - 당시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중 - 당당히 공개오디션에서 주연배우 자리를 꽤찬 영화는 ‘그대의 찬손’으로 당시 인기 듀오였던 어니언스의 ‘이수영’과 함께 출연한 것도 크게 화제가 되었었지요. 당시 노래 ‘편지’를 크게 히트시켰던 어니언스의 ‘이수영’은 최고 미남가수로 명성이 높았었지요.


유지인의 첫 데뷔작품인 영화 ‘그대의 찬손’은 영화 자체의 내용보다도 당시 최고의 미남가수와 최고의 미녀배우의 출연이 더 큰 화제가 되어 그것이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영화의 완성도가 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지인은 74년도 데뷔하면서부터 뛰어난 미모로 큰 화제를 몰고왔었고 그리고 그 다음해에 유지인은 ‘쥬단학화장품’ 광고의 CF모델로 발탁되면서 그녀의 ‘청순미’가 큰 빛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데뷔한지 1년 남짓밖에 안된 풋내기 배우가 당시 최고의 화장품회사의 CF모델로 발탁된다는 것은 또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지요. 유지인의 미모가 또다시 공인받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인배우 유지인은 단지 얼굴만 예쁜 배우로만 통했으며 연기력은 평가받지 못했던 시절이었지요. 원래 너무 예쁜 여자들은 연기를 잘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미모를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지라, 얼굴이 헝클어질 정도로 과감한 액션을 취하는 걸 꺼려하기 때문이지요, 


즉, 자신의 고품격 미모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망가지는 과감한 연기는 몸을 사리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이영애, 김태희도 초창기 시절에는 얼굴은 예쁘지만 연기력은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들었었지요.

반면, 못생긴 연기자들은 원래 얼굴 자체가 가만히 있어도 망가져 있으니까 망가지는 과감한 연기를 너무나 잘합니다. 더 이상 망가질 구석이 없기 때문이지요.



유지인도 데뷔 초기 2년간은 그랬습니다. 그랫던 유지인이 77년 드라마 ‘서울야곡’으로 대폭풍을 몰고옵니다. 단지 예쁜 연기자에서 연기력을 갖춘 미모의 뛰어난 연기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지요. 

77년에 방송된 일일드라마 ‘서울야곡’에서 유지인은 특유의 청순가련한 연기를 너무나도 실감있게 연기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녀의 애절하면서도 실감있는 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입니다.


유지인의 청순미와 눈물 연기가 돗보였던 ‘서울야곡’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유지인은 톱스타로 우뚝 솟아버린답니다.

77년 같은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청실홍실’의 장미희와 정윤희도 같은 시기에 스타덤에 오름으로써 이 시기부터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기자로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되었고 이 때부터 이들 세명의 스타를 ‘신트로이카’라고 명명하면서 우리나라 연예계에 3두체계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신트로이카’는 60년대 중반부터 71년까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세명의 여배우 - 문희, 윤정희, 남정임 - ‘트로이카’의 인기에 필적할 만한 세명의 새로운 인기스타라는 의미에서 ‘신트로이카’라고 매스컴에서 명명한 것이지요.



이렇게 드라마에서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던 유지인은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에게는 당연한 수순인 영화출연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지요.

‘마지막 잎새’ ‘심봤다’ ‘내가 버린 남자’ ‘가시를 삼킨 장미’ ‘26 X 365 = 0’ ‘청춘의 덫’ ‘바람불어 좋은 날’ 등 수많은 영화들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영화들은 흥행에도 성공하였지요.


이 당시 유지인이 출연했던 영화들은 47편이 넘을 정도였지요. 아마도 ‘신트로이카’의 다른 여배우들보다도 더 많은 영화출연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당시 연기자로서 수입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 영화 중에서 유지인을 진정한 ‘은막의 톱스타’로 인정받게 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요. 78년 유지인과 이영하가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마지막 겨울’이라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한 영화였지요. ‘마지막 겨울’은 유지인의 인기와 명예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될 만큼 뛰어난 걸작품이 아닐 수가 없답니다. 이 영화의 히트로 유지인은 명실상부한 당시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순풍에 돗단 듯 탄탄가도를 달려갔으며 부동의 톱스타로 자리잡게 된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신트로이카’의 팽팽했던 세명의 인기도가 유지인에게로 저울추가 쏠리는 현상이 벌어진 듯 하기도 했었답니다. 유지인이 나이 23살 때 13번째로 출연했던 78년도 영화 ‘마지막 겨울’은 너무나도 슬프고 가련한 순정멜로 영화랍니다.


유지인은 두 남자 사이에서 겪게되는 사랑의 비애를 유감없이 신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표현해 내었고 유지인의 애절하고도 가련한 연기 모습에 관객들을 눈물을 흘리면서도 박수갈채를 보냈답니다.


유지인이 맡은 캐릭터가 실제 유지인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유지인이 실제로 영화속 주인공 그 자체가 인 것 같은 착시현상까지 느끼게 했던 영화랍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지인 특유의 ‘청순미’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영화랍니다. 영화 ‘마지막 겨울’은 우리나라 슬픈 멜로영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영화로써 유지인의 혼과 열정이 담긴 당대의 뛰어난 수작이었답니다.


영화 ‘마지막 겨울’의 빅히트로 유지인은 그 후 수많은 영화들과 드라마를 오가며 승승장구하면서 한국 인기 여배우의 아이콘으로 떠오릅니다. 또한 같은 해 찍었던 ‘심봤다’에서 출충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맞보기도 했답니다.


그후 유지인은 ‘피막’ ‘내가 버린 남자’ ‘그때 그 사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 뛰어난 작품들에 연이어서 출연하는 등 유지인의 인기는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이 지속된답니다.

그러다가 86년 드라마 ‘원효대사’를 끝으로 결혼 발표와 함께 화려했던 연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우리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말았답니다.


유지인과 딸


유지인은 86년 의사 조모씨와 결혼함으로써 연예인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주부로 지냈답니다. 86년부터 2002년까지 유지인은 일체 매스컴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가정주부로서만 살아왔었는데요.


2002년 유지인은 갑자기 방송에 복귀해서 올드팬들을 설레이게 했답니다.

유지인은 오랜 침묵을 깨고 2002년 드라마 ‘삼총사’에 전격 출연한 것인데 유지인으로서는 결혼과 함께 은퇴한 후 실로 16만에 방송계로 컴백한 것입니다. - 그 중간에 딱 한번 드라마 출연한 적은 있었답니다.


유지인의 방송 복귀와 함께 들려온 또하나의 소식은 불행하고도 씁쓸한 소식이었는데 그것은 유지인이 남편 조모씨와 협의이혼했다는 소식이었지요.


결혼 하기 전 연예인 시절부터 한번도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정말 모범답안지 같았던 유지인이 16년동안 방송 출연안하면서 가정주부로서만 충실하게 살아왔었기에 그녀의 이혼소식은 뜻밖이었답니다.


유지인의 이혼이유는 ‘성격차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내막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답니다. 워낙 점잖고 입이 무거운 유지인이라서 진솔한 이혼이유를 밝힐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유지인이 16년 만에 전격 방송계에 컴백한 것은 유지인의 올드팬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 유지인을 다시 방송에서 볼 수 있어서 - 그렇다고 마냥 반가워할 만한 일은 아니랍니다. 진정한 유지인의 팬이라면 유지인이 끝까지 이혼하지 않고 영원히 남편과 함께 사는 모습을 기대했을 지도 모르지요.


다른 연예인들의 이혼은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유지인의 이혼 만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유지인을 단지 연예인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고고한 인격체’로서 존경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지인은 그만큼 워낙 빈틈없고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분이기 때문이랍니다.

아뭏튼 연예계로 다시 돌아와서 예전의 ‘트로이카’ 시절 못지않게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해나가시는 모습 매우 보기 좋습니다. 또한 유지인은 연기와 더불어 KAC 한국예술원 교수로서 강의도 담당하신다고 합니다.


최근 MBC에서 ‘대장금 2’의 방영계획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문제는 ‘대장금’ 출연에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였던 이영애가 사정상 출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보내와서 ‘대장금2’의 촬영이 난황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무조건 ‘이영애’ 한사람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MBC의 모습이 너무도 딱해 보입니다.


이미 ‘대장금’속편 출연을 놓고 수년 전부터 ‘이영애’의 출연을 거론하면서 시청자들을 현혹시켜왔던 MBC는 이제 이영애는 영원히 잊어주길 바랍니다. 당사자는 떡 줄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물만 한 양동이 이상 들이삼켰던 MBC는 이제 냉수 먹고 속차리시고 정신 좀 차릴 때가 됐습니다.


오랫 동안 CF촬영 독식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쌓아놓은 배때기 너무 불러서 다시는 힘든 촬영 안하려는 콧대 높은 이영애는 이제 그만 좀 잊어주길 바랍니다.

드라마 한편이 한사람으로 인해서 좌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영애 말고도 그녀 만큼 연기 잘하고 인물 좋은 여배우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지인을 이영애 대신 ‘대장금’ 속편에 출연시키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대장금2’는 장금이의 중년 이후의 시절을 그려나가는 내용이므로 너무 나이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갈하고 품위있고 연기력까지 갖춘 유지인이라면 장금이의 중년의 모습을 충분히 아름답게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유지인이 나이가 좀 있지만 아직도 동안인데다가 40대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충분할 정도의 미모는 남아있으니까요.


미국 허리웃 영화사에서는 50대 여배우들이 아직도 주연급 청춘영화에 많이들 출연하고 있답니다. 미국은 편견이나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갖지않고 순수한 그사람의 재능만 보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봉건적인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서 미국처럼 합리적인 안목이 필요하답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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