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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로열패밀리 잔혹사, 그것이 알고싶다 제 926회 - 장성택·김경희 외동딸 장금송의 자살이유, 장성택 처형의 진짜이유




제 926회 그것이 알고싶다 <평양 로열패밀리 잔혹사 - 아무도 믿지 마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평양 최고위급 로열패밀리의 잔혹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히 최위급 로열패밀리이라고 할 수 있었던 ‘장성택·김경희’부부와 그들의 외동딸 장금송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지요.





2006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고있던 장성택·김경희의 하나뿐인 외동딸 장금송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지요.

자살로 추정되는 장금송의 사망과 그녀의 유서가 발견됨으로써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프랑스 경시청에서 장금송의 유서를 바탕으로 경찰은 장금송의 죽음을 자살로 판단했다고 하네요.


그럼 북한에서 최고의 명문가의 가문 태생으로 남부러울 게 없었던 장금송은 왜 자살했을까요?

장금송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장금송의 주위에는 장금송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던 남성이 있었는데 장금송은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장금송이 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부모님인 장성택·김경희에게 요구하였는데 장성택·김경희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비관해서 자살했다고 합니다.


장성택과 김경희의 반대이유는 그 남자집안에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장금송은 수려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며 당시 북한에서 최고의 명문집안가문이라 남부러울 게 없었던 그녀의 자살은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답니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부모가 반대한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않은 점이 분명 있지요.

설사 부모님이 극심히 결혼을 반대한다고 해도 부모 몰래 결혼하는 사례와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지요.


장금송의 부모인 김경희와 장성택도 장금송처럼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었지요.

그렇지만 김경희는 아버지인 김일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했던 커플이지요.

김경희는 19살 나이에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동기생인 장성택에게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아버지 김일성에게 장성택과 결혼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김일성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지요.


아버지 김일성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서게 하려고 장성택을 원산으로 배치하였지만 장성택에게 마음을 빼앗긴 김경희는 매일같이 원산을 오가며 장성택을 만났다고 합니다.

결국 김경희와 장성택은 오빠인 김정일의 도움으로 8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지요.

자신들도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였으면서 자신들의 딸인 장금송의 결혼에 극심하게 반대했다고 하는 모순점이 발견되고 있지요.


그런데 김경희·장성택의 외동딸 장금송의 사망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답

니다.

북한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탈출한 한 탈북여성의 주장에 의하면 장금송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합니다.


장금송을 살해한 주범은 바로 장금송의 어머니인 김경희라고 그녀는 주장하고 있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인텔리출신이라고 밝힌 그녀는 북한에서 과거에 김경희 자서전 집필을 맡았다고 자서전 집필을 위해서 김경희와 직접 만났을 당시 김경희가 술에 취해서 스스로 장금송을 죽였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녀는 확신에 찬 듯이 그 근거로 김경희는 장금송의 실제 어머니가 아니라고 합니다.


김경희는 원래 애를 낳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경희는 75년에 자동차사고를 당하였는데 그 사고로 인해 김경희의 내장이 파열되었고 그 당시의 수술에서 김경희의 자궁을 제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경희는 애를 낳을 수 없으며 장금송은 김경희와 관계없는 장성택의 딸이라고 합니다.

즉 자신의 핏줄이 아닌 장금송을 김경희의 사주에 의해서 킬러가 살해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만주 지역의 조선족사회에서는 장금송이 타살되었다고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다고 합니다.



아뭏튼 하나뿐인 외동딸 장금송의 사망으로 인해서 장성택과 김경희는 불화를 겪게 되고 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두사람의 관계를 튼튼하게 엮어주었던 외돌딸 장금송이 사망함으로써 두사람의 연결고리가 사라지게 되었지요.


그리고 장금송의 아버진인 장성택은 장금송이 사망하고 난 후 7년 후에 김정은에 의해서 처형당하고 말았지요.

장성택은 작년 12월 13일 ‘국가전복 내란행위’란 죄목으로 처형당하고 말았지요. 그럼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숙청과 처형의 진정한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과연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이 진짜 김정은체제를 전복하려고 하였을까요?


북한전문가 대부분은 장성택이 국가권력을 전복시키고자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요.

장성택은 원래 북한에서 김정은의 후견인이자 북한권력의 실세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오고 있었지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권력 못지않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장성택이 만약 실패하면 죽음을 면치못하는 무모한 선택을 할 실익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장성택이 김정은체제를 전복할 필요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요.



장성택이 실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김정은이 어떤 이권을 북한 군부에 주려고 하였는데 그 때 행정부 제1부부장인 장수길이 검정은에게 장성택의 허락을 받고 오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김정은 장성택이 최고지도자 자리를 위협하는 인물로 판단하고 장성택을 숙청하게 되었답니다.

자신의 권력 이상으로 커져버린 장성택의 권력에 큰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김정은은 자신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장성택을 숙청하고 처형한 것입니다.


즉, 장성택의 실각과 처형은 북한 권력층에서 서로 자신들의 이권을 확보하려는 지도층간의 암투에 의해서 장성택이 패배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장성택이 처형당했을 때에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는 장성택의 처형에 적극 찬성하였을까요? 또한 뒤애서 사주하였을까요?

한 때 장성택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부부관계인 김경희가 장성택의 공개처형을 사주 내지는 찬성하였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김경희는 장성택의 숙청당시 장성택에 대한 공개처형까지는 만류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정청래 민주당의원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김경희의 공개처형 반대 의사는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경희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쟁해서 장성택과 결혼을 관철시켰고 과거 8년간이나 장성택과 뜨거운 사랑을 불태웠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요. 이러한 김경희가 장성택의 처형을 사주했다거나 찬성했다는 것은 이치상 말이 되지를 않지요.


그럼 김경희의 현재 상태는 어떨까요? 인터넷상에서 김경희가 자살했다고 하는 소문들이 나돌고 있는데 사실일까요?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김경희는 현재 건재하다고 하며 다만 공식석상에만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김경희가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장성택 사망으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 때문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지요.



장성택 처형이유에 대한 결론을 들자면 김정은이 수령제라고 하는 유일영도 체제를 확립하게 위해서 마지막 장애물로 판단되는 장성택을 제거한 것으로 보면 정답입니다.

김정은은 권력을 승계한 뒤 자신의 우상화를 계획했었는데 당시 북한권력의 실권자로 군림했던 장성택으로 인해서 자신의 우상화 계획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런 김정은에 있어서는 장성택은 자신의 유일영도체제의 확립을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로 판단하게 되었으며 김일성·김정일, 그리고 김정은 자신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제의 확립과 영속성을 위해서 최대의 걸림돌로 우뚝 솟은 장성택을 제거하게 된 것이지요.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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