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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620회, 짐 캐리의 천만 달러의 약속, 아버지와의 약속, 짐캐리 영화, 노숙자




199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건장한 한 남자가 아버지의 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무척 슬퍼했다. 아버지의 관 앞에서 슬퍼하던 그남자는 주머니에서 천만달러짜리 수표를 꺼내서 아버지의 관에 넣어주었다. 거액의 돈을 죽은 아버지관속에 넣은 그 남자는 바로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 짐 캐리였다.




짐 캐리는 94년 출연한 영화 ‘마스크’가 빅히트치면서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던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인기 명배우다. 평소에는 소심한 은행원이지만 마스크를 쓰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을 열광케 했으며 이 영화 ‘마스크’ 한편으로 엄청난 흥행성공을 이끌어내며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짐 캐리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다양하고 감칠 맛나는 표정연기와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발산하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했으며 그 후에 만들어진 영화 ‘덤앤더머’ ‘에이스 벤츄라2’ 등이 계속해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명배우의 입지를 다져나갔는데 짐 캐리는 찰리 채플린 이후의 최고의 코미디배우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렇게 최고의 배우로 명성이 높았던 짐 켈리도 과거에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짐 켈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가족들을 부양하던 짐 켈리의 아버지가 갑자기 실직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서 짐 켈리의 가계는 급속도로 어려워지고 곤궁에 처하게 된다.


아버지가 실직한 후 가정형편이 어려지자 나이 어린 짐 캐리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직접 나서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실직과 어린 자식을 생활전선에 내보내야하는 아버지가 실의에 빠졌을 때 짐 켈리는 힘들어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문방구에서 산 가짜 천만달러 짜리 지폐를 내밀면서 아버지와 약속을 한다.



자신이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반드시 천만 달러를 갖다드리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짐 캐리는 아버지와 약속을 한 후 19세 때 캐나다의 고향을 떠나서 배우가 될 꿈을 갖고 허리우드로 찾아왔다. 허지만 짐 캐리는 여러 곳의 영화제작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배역을 요구했지만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짐 캐리는 이당시 너무도 형편이 어려워서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빵 한 조각도 나눠먹으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짐 켈리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게 갖다드릴 돈 천만달러를 항상 마음속에 그리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버텨내었다.



그러던 어느날 덕 패밀리의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오디션장에서 특유의 재치와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짐 켈리는 덕 패밀리의 주인공에 발탁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영화 덕 패밀리의 주인공 스킵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첫 출연작품을 완성한다. 그 후에도 나이스보이스 등 몇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나갔지만 이당시만해도 짐 켈리는 영화배우로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으며 짐 켈리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얼마후 짐 켈리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엄청난 영화를 만나는데 그 영화는 바로 유명한 ‘마스크’다. 1994년 짐 켈리는 영화 ‘마스크’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겁많고 소심한 은행원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마스크맨의 상반된 두 개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등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해서 만든 이 영화는 2천만 달러의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리면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이 영화 한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짐 켈리는 그 후 출연한 영화 ‘덤앤더머’ ‘에이스 벤츄라2’ 등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명실상부한 허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다. 당시 허리우드에서는 짐 켈리가 출연하면 흥행이 성공한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짐 켈리의 주가는 완전 상한가를 치게 되었으며 허리우드의 여러 영화사들은 서로 앞 다투어 짐 켈리 모시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짐 켈리는 또다시 영화 ‘배트맨포에버’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개런티가 꿈에 그러던 천만 달러였던 것이다.

짐 켈리는 드디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고 행복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뵐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캐나다의 집으로부터 느닷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고 큰 슬픔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성공의 결과물을 그렇게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어했던 짐 캐리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실의에 빠지고 된다.

결과적으로 짐 캐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와의 옛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짐 켈리는 아버지의 관속에 ‘천만 달러’ 짜리 수표를 넣고 아버지와 함께 묻어주었다. 아버지와의 옛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


영화에서 보기와 다르게 짐 켈리는 정말 대단한 효자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잘 나가는 스타들, 자신이 성공하고 나면 부모님과 가족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신이 어려웠을 적의 생활을 잊지않고 자신의 성공의 대가를 고스란히 고생하신 아버지에게 갖다드리는 그 효심은 정말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다.



더욱이 천만 달러 라고 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인데 그 큰 거금을 선뜻 아버지의 관속에 넣어드리는 크나큰 효심이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주며 행복스런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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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20회 9·11테러와 빈 라덴 제거작전(넵튠 스피어)




2001년 9월 11일 세계에 큰 충격을 몰고왔던 뉴욕 맨하탄 세계무역센타 건물 붕괴사건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 9·11테러사건은

미국의 건국된 이후 미국 본토가 외국으로부터 공격받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9·11테러는 4대의 여객기가 테러범들에게 나포되어 그 중 두 대의 여객기가 뉴욕 쌍둥이빌딩에 충돌하였으며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쌍둥이빌딩은 여지없이 무너져내려 3천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또한 미국 국방부 펜타곤건물도 돌진하는 여객기와 충돌하여 많은 사상자를 낳기도 했다.





세계를 주름잡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본토를 감히 공격한 테러범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아랍출신들이었는데 이들의 배후에는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 있었다.

이들 테러범들은 당시 아랍 테러조직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9·11테러를 자행한 것이었다.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조직하고 훈련시키면서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서방세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9·11테러로 인해 세계의 초강대국 지위에 있던 미국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망가졌는데 미국정부는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미국정부는 테러범의 배후인물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응징하기로 결정하고 그 해 10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전격적인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오사마 빈 라덴과 친교관계에 있던 탈레반정부는 전쟁에서 패퇴하여 아프가니스탄 남부 산악지대로 쫒겨갔으며 아프가니스탄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 이후 거의 10년 동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데는 성공했지만 9·11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는 데는 번번히 실패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해나갔으며 산악지대로 은신해 다니면서 미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2011년 5월 1일 드디어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에 성공한다. 그런데 10년 넘게 실패했던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아마비백신 때문이었다.


빈 라덴이 미국의 오랜 추격에도 잡히지 않고 미군을 따돌리고 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파키스탄 북부를 점령하고 있던 탈레반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칸에서 미군에게 패했지만 미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파키스탄 북부지역으로 넘어와서 그곳을 점령하고 있었으며 이지역은 파키스탄의 영역이어서 미국으로서도 군사공격을 감행하기 곤란한 지역이다.



2010년 미국정부는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탈레반의 보호를 받으며 파키스탄의 북부지역에 자신의 은신처를 마련하고 은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빈 라덴의 구체적인 은신처는 찾아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미국정부가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일으킨 지 10년이 넘도록 빈 라덴을 잡아내지 못하자 미국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파키스탄 북부지역에 숨어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위해 미국정부는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결국 미국 CIA가 빈 라덴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한 묘안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바로 소아마비백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소아마비백신이 10년 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빈 라덴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방법은 파키스탄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백신을 투여하면서 몰래 아이들의 혈액을 채취해서 빈 라덴의 여동생 DNA와 대조하는 방법을 써서 빈 라덴의 자녀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빈 라덴은 자녀들,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 북부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 라덴의 소재는 쉽게 파악할 수 없지만 자녀들의 소재를 먼저 파악하면 빈 라덴의 소재는 자동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미국 CIA는 파키스탄의 아프리디의사를 매수해서 그를 이용해서 빈라덴 제거작전(넵튠 스피어작전)을 수행했다. 파키스탄의 저명한 의사였던 아프리디의사는 파키스탄 북부지역을 누비고 다니며 수천명의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백신을 투여했고 동시에 이들의 혈액을 채취해서 미국 CIA에게 보냈다.

2011년 4월 드디어 빈 라덴의 여동생과 일치하는 혈액샘플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혈액샘플과 그 주소지는 바로 미국 CIA로 보내졌고 드디어 빈 라덴이 숨어있는 은신처 소재를 파악하는데 성공했으며 그곳은 아보타바드시에 있는 넓은 대지를 갖춘 대저택이었다.



빈 라덴의 저택은 넓은 들판이 있는 대지위에 있는 거대한 저택이었는데 두께 5.5m의 두꺼운 콘크리트 강화벽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마치 요새와도 같았다. 빈라덴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 2층에도 차단벽을 설치하는 등 철옹성과도 같은 저택이었고 마당에는 경호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2011 5월 1일 드디어 빈 라덴 제거작전인 넵튠 스피어작전이 전개되었으며 아프칸에서 촐동한 특수부대요원(네이버씰요원)들이 4대의 헬기에 나눠타고 파키스탄으로 출격했으며 파키스탄군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미군헬기는 저공으로 비행하였다.



마침내 4대의 미군헬기는 빈 라덴 저택에 착륙했으며 미특수부대원들은 빈 라덴의 경호인들과 40분간의 총격전을 벌였으며 이들을 모두 제압하고 2층 서제에 있던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써 10년간 지속되어 온 빈 라덴 추격전은 끝이 날 수 있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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