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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978회, 소년 북파공작원의 실체, 파주시 행방불명된 소년들, 총알받이




3월 28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978회에서 북파공작원의 실체가 알려져서 큰 충격을 주고있답니다. 북한에 몰래 침투해서 기밀정보를 빼내는 첩보활동을 하거나 주요시설물 폭파임무를 담당하는 북파공작원은 6·25전쟁이후 암암리에 활동을 해왔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중격적인 사실은 나이 어린 소년들이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했다고 하는 사실이랍니다.



실제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18세 이하의 소년 북파공작원들이 훈련을 받아서 북한으로 침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서 큰 충격을 주고있는데요.

3월 28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송된 ‘소년 북파공작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실제로 어린 소년들이 북파공작원으로 훈련을 받고 북한으로 투입되었으며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처리되었던 사례가 확인되고 있답니다.


55년 6월 군대에 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소년 삼한운은 당시 8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육군첩보부대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대에서 소년에게 북한으로 간 아버지를 만나게해주겠다고 회유해서 북파공작원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졸지에 육군첩보부대에 감금된 8세의 소년에게 가혹한 훈련이 강요되었고 어린 소년은 살기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끔찍한 훈련을 받으며 견뎌내야 했답니다.


자신을 강제로 강물에 빠뜨리고 기어나오려면 노로 밀어버리는 등 끔찍한 훈련을 받았다고 당시 8세였던 소년 심한운씨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험한 산속에 버려져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했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뱀을 잡아 산채로 먹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기를 여러번이라고 말하는 심한운씨는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희망으로 끝까지 버텼다고 합니다. 67세의 심한운씨는 59년 전인 1956년 8살의 나이로 북파 공작원 훈련을 받았습니다. 완전무장으로 산악구보를 하고 소총 사격과 수류탄 투척은 물론 극한의 생존훈련까지 견뎌냈습니다.


1951년 당시 14살이었던 이대식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신문팔이를 했는데 어느날 소리소문도 없이 실종되어 버렸고 어머니는 실종된 아들을 찾기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사라진 아들을 끝끝내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잊혀져갈 무렵인 2011년경 실종된 아들의 사망통지서가 날아왔다고 합니다. 행방불명된 아들 이대식군이 52년 7월에 육군첩보부대에서 사망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육군정보사령부로부터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실종당시 14살 밖에 안된 이대식군이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중 첩보부대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답니다.



14세의 어린 소년이 자발적으로 북파공작원에 입단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육군첩보부대에서 어린 소년들을 강제로 징집하거나 데려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답니다.


또다른 북파공작원 출신 김윤배씨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51년경 파주시 탄현면에 사는 마을소년들이 무더기로 북파공작원으로 징집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마을소년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징집되어 북한으로 투입되었는데, 그 후 대부분 체포되거나 실종이 되었고 끝까지 살아남아 돌아왔던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육군첩보부대에서 강제로 마을 소년들 대부분을 북파공작원으로 징집했다고 하는데 그당시 소년 북파공작원으로 차출되었던 김윤배씨에 의하면 마을애서 잡혀온 소년들은 3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 30여명의 소년들은 군대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왔으며 부모들의 반대도 소용없었다고 합니다. 소년들은 첩보부대의 외진 훈련소에서 불과 2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임진강을 건너서 북한지역으로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은 51년 당시만 해도 전쟁이 지속되던 시기라서 남북한 군인들이 교전을 하는 전쟁터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소년들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서 북한지역으로 들어갔으며 맨몸으로 첩보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북한지역에서 첩보활동을 하다가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처참하게 살해된 소년들도 있고 체포된 소년들도 있었고 실종된 자들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북파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온 소년들은 30명중에서 5~6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극적으로 살아돌아왔던 소년들은 또다른 고통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 당시 어린 소년들이 겪었던 고통과 충격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영원히 악몽으로 남아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들들을 잃은 부모님들은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회한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증명서류가 남아있지 않아서 피해를 본 당사자나 부모들은 소년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보상조차 받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국가에서는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소년 북파공작원들의 실체를 철저히 숨겨왔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국방부에서는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전사확인서만을 발급해주었다고 합니다. 어떠한 경로로 어떻게 사망했다는 기록도 없이 단지 몇월 몇일에 사망했다는 짧은 기록만 확인할 수 있는 실정이랍니다.



그러면 누가 왜 이렇게 어린 소년들을 북파공작원으로 뽑아간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전쟁 도중 남한으로 넘어왔던 임백운씨는 자신이 남한으로 피난오던 중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용소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과 만났다고 하는데 그 소년들은 바로 파주에서 살다가 강제로 징집되어 북파되었던 바로 그 소년들이라고 합니다.


그 소년들이 바로 파주에서 집단으로 징집되어 북파되었던 30여명의 소년들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답니다. 그 파주소년들은 강제로 집집되어 2주간 교육훈련을 받고 북파되었다가 곧바로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그 수용소에서의 북파 소년들의 수용소생활을 엄청 비참했다고 임백운씨는 증언하고 있답니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자지도 못하는 비참한 수용소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수용소에서 함께 지냈던 임백운씨는 소년들 중 일부와 함께 수용소 탈출을 감행했다고 하며 탈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탈출에 성공했던 임백운씨와 소년들은 깊은 산중에서 뿔뿔히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북한군 수용소를 탈출했던 임백운씨는 그후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왔고 한국에서 수용소 소년들의 일부와 다시 재회해서 감회어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6·25전쟁 당시 대통령은 긴급명령을 발동해서 300만명의 소년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전쟁터로 보냈다고 하며 이 들중 2,600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정부에서는 소년들을 강제로 징집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있으며 철저히 숨겨왔다고 합니다.



UN에서는 18세 미만의 아동들에 대해 강제징집이나 적대행위를 하지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18세 미만의 아동들에 대해 강제징집이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매우 우려가 되는 부분이랍니다.

또다시 6·25와 같은 끔찍한 전쟁이 벌어진다면 또다시 국가에서 긴급명령을 발동해서 소년들을 총알받이나 북파공작원으로 내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있으니까요.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문제를 다루었고 국민권익위윈회의 권고로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소년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국방부에서는 소년 북파공작원의 징집을 적법한 행위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서는 국방부를 방문해 북파공작원에 대해서 문의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북파공작원의 규모와 희생자는 몇 명인지, 생존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몇 명인지 등을 국방부에 문의해보았는데 국방부는 한결같이 국가기밀사항이라는 이유로 함구했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철저히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인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무력동원을 하였고 그들의 희생조차도 보상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라에 해당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소년 북파공작원들의 실체를 낱낱이 밝힘으로써 앞으로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본을 방문했던 메르켈총리가 한 말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은 화해를 위해서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우리 정부에게 하고 싶네요.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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