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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가 부른 추억의 명곡, 봄비

 

 

 

이은하는 허스키한 보이스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70,80년대 한국 가요계를 풍미한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죠.

이은하의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은 그 당시 장안의 화제였었는데요. 이은하 성대의 옥타브는 역대 가수 중 최고의 하이 옥타브로 정평이 나있었고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감미롭기 그지없고 무척 감성적이어서 당시 그녀가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행진을 계속 이어갔던 정말 불세출의 가수, 보배로운 가수라고 불릴만 한 그녀이지요.

 

‘겨울장미’ ‘밤차’ ‘봄비’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 등등 이은하가 불러 히트한 곡들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지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녀만의 허스키하고 파워풀한, 호소력 짙은 보이스는 한국가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을 정도로 대단한 파워를 지닌 가수랍니다.

70~80년대에 가창력에서 그녀를 따라올 가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진짜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인 이은하의 명곡중의 명곡인 ‘봄비’를 오늘 비오는 날에 다시 들어보고 그 시대의 감성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고 싶네요.

 

 

 

 

 

 

 

 

 

 

 

 

 

 

 

 

 

 

 

 

봄비 / 가사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 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 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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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적인 매력의 소피아 로렌 (Sophia Loren)

 

1934년 9월 20일생

출신지 이탈리아 로마

신체 174cm

 

  터질듯한 풍만한 몸매와 시골처녀의 섹시한 매력으로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과 헐리우드까지 공략한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출신의 세계적인 배우다
이탈리아의 실바나 망가노,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의 글래머형 여배우의 맥을 잇는 소피아 로렌은 볼륨있는 육체에서 뿜어져나오는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매력으로 전세계의 남성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AFI가 선정한 25명의 여배우 중 살아있는 다섯 전설 가운데 한 명이며 이탈리아인으로는 유일하다
 
소피아 로렌은 아버지와 이혼한 홀어머니와 함께 나폴리 빈민가에서 자라났는데 17세때 그녀가 우연히 참가한 나폴리의 미인대회‘바다의 여왕’에서 2등으로 입상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다
 미인대회 심사위원 카를로 폰티의 눈에 띄게 되고 카를로 폰티는 이탈리아의 명망높은 영화제작자로 그녀의 미모와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녀를 배우에의 길로 인도하고 키워준 은인이면서 후일 그녀의 생애 유일한 남편이 되었다

소피아 로렌은 51년 영화 ‘쿼바디스’로 (단역)데뷔하였고 ‘나폴리의 황금’ ‘해녀’ ‘엘시드’ ‘두 여인’ ‘로마제국의 멸망’ ‘카산드라 크로싱’ ‘해바라기’등 1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였고 77세인 10년과 11에도 영화 룰티모 가토파르도: 리트라토, 영화 비커밍 버트스턴에 출연할 정도로 최근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61년 제작된 ‘두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녀의 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고 그녀의 관능적인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이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셈이다
소피아 로렌은 섹시한 이미지와는 달리 ‘닥터 지바고’ ‘길’을 만든 이탈리아의 명제작자 카를로 폰티의 충실한 아내이자 영화인으로 성실한 삶은 살고 있는 모범영화인이다 

소피아 로렌의 이미지는 명랑하다기 보다는 이지적이고 글래머스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는 고결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언뜻보면 건강한 시골처녀의 풋풋한 섹시미를 풍기지만 그녀가 출연한 블록버스터급 대작인 ‘로마제국의 멸망’ ‘엘시드’등에서는 관능적 매력보다는 우수에 젖은 여인의 고결한 아름다움과 청초함이 더욱 돋보인다
이렇게 대작에서 소피아 로렌은 ‘우수’ ‘애수’의 슬픔을 간직한 청초한 여인, 고고한 여인 이미지가 더욱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로마제국의 멸망’에서는 몰락헤가는 로마를 되살리기 위해 고뇌하는 공주로, ‘엘시드’에서는 아버지의 원수로 변해버린 사랑하는 약혼자를 복수해야하는 자신의 운명 앞에 고뇌하는 한 여인으로, ‘해바라기’에서는 전쟁에서 죽었다는 전남편이 다시 돌아왔을 때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아쉬움과 미련속에서 역시 고뇌하는 연약한 여인의 이미지에서 그녀는 “우수에 젖은 고결한 아름다움”이 진하게 베어난다
‘엘시드’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카리스마있는 고결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치 세상의 희노애락을 초월한 신선의 모습처럼 ~

이렇듯 소피아 로렌은 외관상으론 터질듯한 육감적인 몸매에서 풍겨나오는 관능적인 매력보다는 우수에 젖은 청초한 고결미가 그녀의 진정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수상 내역

수상1958년 제22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1961년 제1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1961년 제27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1961년 제1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1962년 제3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1974년 제22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1991년 제6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공로상
1994년 제4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금곰상
1995년 제5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평생공로상
2001년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특별상 

 

 

 


 

(출연작품)

나인 (2009)
션쇼 (1994)
오로라 (1984)
불의 여인 (1979)
굴 없는 표적 (1979)
암호명 S 비밀 지령 (1978)
특별한 날 (1977)
안젤라 (1977)
산드라 크로싱 (1976)
코스마토스 . 여행 (1974)
밀회 (1974)
돈키호테 (1972)
레이디 리버티 (1971)
해바라기 (1970)
카운테스 프럼 홍콩 (1967)
베스크 (1966)
V2 3인의 첩보전 (1965)
이태리식 결혼 (1964)
로마 제국의 멸망 (1964)
보카치오 70 (1962)
엘 시드 (1961)
두 여인 (1960)
검은 난초 (1958)
잃어버린 전설 (1957)
자랑과 정열 (1957)
해녀 (1957)
소렌토의 염문 (1955)
나폴리의 황금 (1954)
쿼바디스 (1951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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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의 극치, 그레이스 켈리 (Grace Patricia Kelly)

 
미국 여배우, 모나코의 왕비
출생 1929년 11월 12일
사망 1982년 9월 14일
키 170cm, 체중 49kg

    허리웃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배우를 꼽는다면 바로 그레이스 켈리가 아닐까 한다
신이 빛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 조각 같은 아름다움의 소유자로 칭송받는 그녀는 허리우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배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미국 기자클럽에서 해마다 뽑는 아름다운 여배우 톱 20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녀가 바로 그레이스 켈리인데 1위는 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이고 그레이스 켈리는 주로 2위를 차지하는데 진정한 1위 자리는 바로 그레이스 켈리라고 할 수 있는데 왜 그녀는 만년 2위에 머무르고 있는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배우경력은 고작 5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리즈 테일러는 40년 이상 은막에서 맹활약했기 때문에 그녀의 미국영화에 대한 기여와 공로를 높이 평가해 1위 자리를 준 것이고 영화 경력 고작 5년을 끝으로 모나코의 왕비자리가 탐나 미국과 미국팬들을 버리고 모나코로 떠나간 그녀에겐 괘씸죄를 물어 2위로 격하시켰음이라
그러므로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1위는 바로 그레이스 켈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아일린드계의 명문 부호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때부터 아동극단에서 활동하며 재능을 키웠고 아름다운 외모로 주변의 찬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Woman`s Journal지가 독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성에 대한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할 정도로 그녀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그녀가 죽은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찬사의 대상이 될 정도로 공인된 상태이다
170cm의 휜칠한 키에 백옥처럼 희고 고운 피부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갖추고 다소 차가운 듯 하면서도 고품격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에겐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녀만의 미의 카리스마를 지녔고 특히 한번 빠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고 푸른 아름다운 눈은 신의 걸작품 그 자체이다

 그녀는 51년 영화 ‘14시간“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하였고 56년까지 고작 5년 정도 짧게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성공한 대작들이어서 그녀의 5년은 짧고 굵고 빛나는 기간이었으며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최고의 걸작품들이라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고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녀의 5년 활동은 다른 배우들이 평생동안 이루지 못한 커다란 성과물을 양산해 내었고 그녀는 인기절정이었던 56년 모나코의 레니에 공과의 결혼과 함께 은막에서 사라진다  

그녀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출연한 영화들은 하이눈, 모감보,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나는 결백하다, 갈채, 백조 등 모두 다 허리웃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대작들이며 또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케리 그란트 등 당대의 톱스타들과 공연하였고 모두 흥행에 성공하였다
또 그녀는 55년 “갈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하고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명실상부한 허리우드 은막의 최고스타라는 지위를 얻었고 이렇게 26세의 나이에 오스카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지자 여러 유명한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이 생기지만 그녀는 도도하고 차가운 매력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흐트리지 않았다

 

56년 그레이스 켈리가 레니에 국왕과 결혼한 이후 세기적 결혼이 화제가 되면서 모나코의 이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상당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레이니에 국왕과의 사이에서 자식 셋을 낳았고 큰딸 케롤라인, 아들 알버트 막내딸 스테파니. 알버트 2세는 2005년 이후 현재 모나코의 국왕이다
사실 그녀는 결혼생활에서 세간의 부러움과는 달리 엄격한 궁중생활과 스트레스로 인해 상당한 우울증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남편과의 불화설, 우울증, 알콜중독, 화려한 남성편력, 마피아 암살설 등 다양한 루머가 따라다녔으며 영화계를 은퇴한 후 30년 가까이 왕비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그녀...  

1982년 9월 14일 그녀는 모나코 근교의 여름별장에서 왕궁으로 돌아오던중 교통사고로 53세의 나이로 영화처럼 화려했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고 원인은 막내딸 스테파니의 운전 부주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마피아 암살설 (그녀가 모나코의 주 수입원인 카지노를 규제했기 때문)등등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도 많았다고 한다
레니에 국왕은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며 그는 이후 재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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