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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 주연의  "쿼바디스" 
허리우드 고전영화 

머빈 르로이 감독  51년작 

 

쿼바디스는 고전미인 데보라 카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로버트 테일러의 핸섬한
용모를 감상할 수 있는 몇안되는 귀한 작품이다
영화 ‘애수’를 만든 명감독인 머빈 르로이가 연출한 명작중의 명작이며 시대극의 붐을 일으킨 영화이다 쿼바디스는 헨릭 센키비츠의 소설을 영화화했으며 타이틀은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만나 외쳤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쿼바디스는 특히 당대의 최고 미남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최고 미녀 데보라 카가 주연으로 출연으로 큰관심을 모았으며 51년 미국에서 개봉되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고 최고의 수익을 얻었으며 유럽과 아시아에 수출되어 전세계영화팬들의 찬사를 받은 대작중의 대작이다

쿼바디스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에 자극받은 다른 허리웃 영화사들도 경쟁적으로 성서시대극들을 양산해냈는데 50년대 허리우드에는 때아닌 대시대극 제작붐이 일어나 우리가 잘 아는 십계, 벤허, 스팔타카스, 소돔과 고모라 같은 대작들이 거대한 자본을 들여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대시대극의 효시역할을 한 영화가 바로‘쿼바디스’다
우리나라에는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무려 4번이나 정식 수입되었을 정도로 폭팔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로 성서시대극의 전설과도 같은 걸작이다  

잘생긴 용모의 로버트 테일러는 수많은 여성팬들의 로망이 되었고 우아하면서 청순한 매력을 발산하는 데보라 카는 허리웃 미인의 상징으로 각인되었고 그녀가 극중에서 콜롯세움의 나무기둥에 묶여 성난 황소앞에 가슴죄는 모습은 수많은 남성들의 부성애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아름답고 청순한 미모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쿼바디스 하일라이트 영상                        12분




전쟁의 영웅인 사령관 로버트 테일러(마커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여
로마귀족의 자택에 머무는데 거기서 만난 데보라 카(리지아)에 천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가 당시 로마에서 금기인 기독교인임을 알고 갈등을 격게
되는데 두사람은 사랑과 신앙사이에서 갈등하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 시기 광기에 사로잡힌 폭군 네로황제는 새로운 로마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로마를
불바다로 만들고, 네로의 만행에 분노한 로마시민들이 궐기하자 위기를 모면하고자
방화범들은 기독교인들이라고 소문을 퍼트려, 기독교인에게 누명을 씌우고 기독교인
들을 대대적으로 처형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로버트 테일러(마커스)는 기독교인들의 편에 서게 되면서 결국 기독
교에 귀의하여 데보라 카(리지아)와 사랑의 결실인 혼인을 맺으며 독재자 네로에게
대항해 싸운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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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가드너 / (허리우드스타)



Ava Gardner

출생일 1922년 12월 24일 ~ 1990년1월 25일

출신지 미국 키 168cm

  미국 섹스의 심볼, 눈부신 아름다움의 소유자 에바 가드너
에바 가드너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담배농사를 짓던 부모와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18세때 에바의 눈부신 미모는 뉴욕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형부의 사진을 통해 MGM사의 영화관계자들에게 전해지게 되고 에바의 매력에 한눈에 반한 그들은 그녀와 전속계약을 맺음으로써 에바 가드너는 허리웃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첫영화 “살인자들”에서 버트 랭커스터의 상대역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헉스터”에서 허스키한 목소리와 매혹적인 자태로 195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섹스 심벌'로 명성을 높였다
영화“판도라”에서 여신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나와 춤을 추거나, 누드로 수영을 한 후 맨 몸에 타월만 걸친 채 출연해 섹시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영화“모감보”에서 클라크 게이블과 함께 출연해 그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라고 찬사를 받을만큼 그녀의 육감적인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그녀는 미키 루니, 아티 쇼,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쟁쟁한 스타들과 세번의 결혼을 했으며 석유재벌 하워드 휴즈와는 20년간 지속된 핑크빛 염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술과 담배를 좋아했으며 외모는 여성적이지만 성격은 남자처럼 호탕하였다고 하는데 그녀와 프랭크 사나트라와의 결혼생활에서 그녀의 터프한 성격의 일면을 읽을 수 있는데 그녀는 남편인 프랭크 시내트라와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임신중 2번이나 낙태를 하였으며 그로인해 심한 충격과 갈등을 겪은 프랭크 시내트라는 2번이나 자살기도를 하게 되고 극적으로 살아난 일화가 있는데 이때 그녀의 변은 “우리자신들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데 어뗳게 애를 났아 기르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보통의 여성 같으면 남편이 애를 지우라고 다그쳐도 어떻게든 애를 낳아 기르려고 하는 것이 상례인데 에바는 확실히 보통여성과는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당대의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두 번이나 자살의 원인을 제공했던 그녀의 터프하고 호탕한 성격을 잘 말해주는 있다
결국 두사람은 1957년 6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에바 가드너는 1958년 MGM을 떠나 독립하여 계속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연기에의 한계를 느끼면서 점점 대중들로부터 잊혀져가게 된다
그녀는 자서전 `에바 나의 이야기`을 집필하던 중 폐렴으로 이세상과 하직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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