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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TV 서프라이즈’ 660회, 호주 친딸 살해사건의 엄마 린디 체임벌린, 32년만에 ‘무죄판결’, 아자리아실종사건




자기 친딸을 죽인 엄마, 이것은 실제로 호주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이다. 자신의 생후 9주된 친딸을 엄마가 살해했다는 ‘영아살인사건’인데 세계적으로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던 살인사건이었다. 그런데 과연 친엄마가 자신이 낳은 영아를 진짜 살해했을까?



1980년도 호주에서 일어난 엄마 린디 체임벌린의 친딸 살해사건은 수십년에 걸쳐서 많은 의혹과 논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 8월 17일 예수재림교회에 다니고 있던 독실한 신자였던 린디 체임벌린은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호주 중부에 위치한 울룰루국립공원으로 캠핑을 갔다.


울룰루국립공원의 한 야생습지에서 캠핑을 차리고 생후 9주된 딸 아자리아를 텐트안에 재워놓고 린디 체임벌린은 남편, 아들과 함께 텐트밖에서 바비큐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후 텐트쪽에서 어린 딸의 큰 울음소리가 울려퍼졌고 딸의 울음소리를 듣은 엄마 린디 체임벌린은 텐트쪽으로 달려가보았는데 텐트안에 있던 9세된 딸 아자리아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성급히 텐트밖으로 나온 엄마 린디 체임벌린의 눈에는 멀리서 딩고가 어린딸을 물고가는 듯한 모습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곧바로 엄마 린디 체임벌린은 경찰에 신고했으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텐트주변과 인근일대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어린 딸 아자리아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당시 수색을 담당했던 경찰들은 텐트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실종된 딸 아자리아의 윗도리를 발견했는데 실종된 영아 아자리아의 윗도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실종된 딸 아자리아의 윗도리는 핏자국이 흔연히 뭍어있었지만 찢겨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또한 텐트주변에서 발견된 가위에서는 딸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친딸실종사건’의 논란을 지피는 불씨가 되었는데 과연 야생동물 딩고가 아이의 윗도리를 찢지않고 아이를 빼내어 물고갈 수가 있는가 하는 점과 가위에서 아이의 핏자국이 나왔다는 점 또한 또다른 의문점을 낳게 만들었다.



그리고 9주밖에 안된 친딸을 잃은 엄마 린디 체임벌린은 주변사람들에게 딸이 실종된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고 하며 친딸을 잃은 엄마로서 슬퍼하는 모습 또한 전혀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의혹이 크게 불거지자 경찰에서는 어린 영아 아자리아의 살해범으로 엄마 린디 체임벌린을 의심하게 되었으며 결국 1982년 엄마 린디 체임벌린은 ‘친딸실종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되었다.


이사건은 호주 역사상 희대의 친딸살인사건으로 대서 특필되었으며 언론과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면서 재판과정이 호주전역으로 생중계까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재판이 시작되자 마자 호주의 대형신문사들은 ‘기독교에 광적으로 집착한 린디 체임벌린이 자신의 친딸을 신의 제물로 바쳤다’라는 기사를 내보면서 엄마 린디 체임벌린이 자신의 친딸 아자리아를 죽인 살해범인 것처럼 몰아갔으며 호주의 수많은 언론과 신문사들은 특종을 놓치지않기 위해 린디 체임벌린을 마치 친딸을 살해한 살해범인 양 앞다투어서 선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또한 딸 아자리아가 실종되었던 그지역은 전통적으로 원주민들이 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성지였다고 하는데 기독교에 신앙심이 깊었던 린디 체임벌린이 ‘광야에서 제물을 받치라’는 구약성경의 구절대로 하느님께 재물을 바치기 위해 자신의 친딸을 죽이고 딩고가 물어간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의혹들이 거세게 일어났다.


재판에서 딩고전문가로 증언대에 섰던 동물연구자들은 딩고가 사람을 두려워해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는 소견을 내놓음으로써 엄마 린디 체임벌린은 재판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서게된다. 또한 검식전문가는 현장에서 발견된 아이의 윗도리에서 딩고의 타액이나 잇빨자국이 나오지 않았다는 검식결과까지 내놓게된다.


엄마 린디 체임벌린은 재판정에서 자신의 딸 아자리아를 딩고가 물고갔다고 강하게 항변했지만 ‘친딸을 살해한 광신도엄마’라고 대서특필한 신문사들의 언론플레이에 이미 세뇌되어 있었던 법정 배심원들과 판사는 이미 린디 체임벌린을 친딸 살해범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으며 린디 체임벌린에게 불리한 증언과 증거들만을 채택하고 있었다.


더욱이 친딸 아지리아의 윗도리에서 찢겨진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텐트주변 인근지역에서 딩고굴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딩고는 자신이 사는 지역을 결코 벗어나지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소견, 종교적 신앙심 때문에 친딸을 죽인 그녀를 극형에 처해야한다는 여론몰이등이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와 배심원들에 큰 영향을 줌으로써 린디 체임벌린는 결국 친딸을 죽인 살해범으로 ‘중노동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만다.



9주밖에 안된 사랑스럽고 어린 친딸을 엄마가 종교적인 신앙심 때문에 살해했다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과연 린디 체임벌린은 단지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자신의 친딸을 살해한 것일까?

이사건은 수많은 의혹점들을 양산하며 전세계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주었으며 오랫동안 숱한 논란과 논쟁들에 휩싸여왔다.


그런데 9살베기 영아 아자리아가 실종된 지 6년이 지난 1986년 어느날, 전혀 새로운 증언이 나옴으로써 사건은 대반전을 이루게 된다.

울룰루국립공원으로 관광을 나왔던 한 관광객이 그 사건현장으로부터 3km 떨어진 곳에서 한 동굴을 발견했으며, 그 동굴 안에서 아자리아의 겉옷을 발견하였고 그 관광객의 신고로 세상은 발칵 뒤집어진다.



결국 경찰은 ‘영아실종사건’을 다시 재수사하게 되었으며 이 재수사과정에서 1차재판 당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나타나게 되었다.

아자리아가 실종되었던 텐트와 가까운 인근지역에서 수많은 딩고굴들이 무수히 산재해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그지역에 살고있던 원주민들로부터 딩고들을 여러번 목격했었다는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또한 아지리아 실종사건 당시 최초검시관이었던 엘리자베스 모리스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사건발생 당시 울룰루 인근지역을 탐문조사했었는데 그지역에 살던 원주민들로부터 평소에 수많은 딩고들을 보았다는 목격담을 확보했으며 사건 당일에도 딩고가 나타난 것을 발견한 관광객의 증언까지 확보했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모리스는 ‘딩고가 아이를 물고갔을 것으로 보인다’는 검시보고서를 재판정에 제출했었지만 어쩐 일인지 재판에서는 자신의 보고서가 전혀 채택되지 않았다고 기자회견에서 폭로했다.



정말 기가 막힌 대반전이 아닐 수가 없다. 82년 1차 재판당시 경찰들과 재판관계자들은 딩고가 존재하고 있으며 딩고가 영아 아자리아를 물고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물과 증언들을 철저히 은폐했으며 재판 판결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영아실종사건은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돈을 벌기위해서, 특종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던 대형신문사들과 언론기관들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수있는 ‘영아실종사건’을 마치 ‘친딸살해사건’으로 둔갑시켜서 대서특필했으며, 이러한 신문사와 언론기관이 만들어낸 비뚤어진 언론플레이에 눈과 귀가 멀었던 경찰들과 법원 배심원들이 여론몰이에 철저히 세뇌됨으로써 그들에 편승해서 불공정한 판결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즉,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탐욕스러운 언론기관과 엘리트층들이 죄없는 한여인을 마녀사냥식으로 몰고가서 그녀를 살인범으로 조작했던 것이다.

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3의 권력기관으로 불리우는 언론기관들의 탐욕과 특종을 잡으려는 욕심이 친딸을 잃고 엄청난 상처를 입은 한 죄없는 가녀린 여인을 살인범으로 둔갑시키는 거대한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다시 열린 재판에서 린디 체임벌린은 그녀에게 비우호적인 재판관들의 비협조와 견제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고 소신있게 재판에 임한 결과 2012년 무려 32년 만에 무죄판결을 극적으로 이끌어냈다.


자신의 사랑스런 친딸을 잃고서도 위로는 커녕 친딸 살해범이란 누명을 쓰고 수십년간을 고통속에 살아왔던 린디 체임벌린은 국가를 상대로 자신이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린디 체임벌린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해서 우리나라돈으로 약 1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10억원의 배상금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녀가 지난 32년간 받아왔던 친딸살해범이라는 오명과 명예훼손,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은 그 돈으로도 결코 보상받을 수 없는 영원한 고통과 한으로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친딸을 잃은 어미의 한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린디 체임벌린은 82년 친딸살해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던 교도소에서 두 번째 딸을 낳았다고 한다. 친딸살해범으로 ‘무기징역형’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던 린디 체임벌린은 몇년 후에 두아들과 딸 등 세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라는 점이 정상참작되어서 집행유예를 받고 감옥에서 풀려날 수가 있었다고 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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