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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23회 클리프턴 홀의 비밀, 영국 최악의 흉가, 영국의 소녀유령 산드라




영국에서 한국의 영화 ‘여고괴담’과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서 섬뜻함을 넘어 충격을 주고있다. 영국의 한 가족이 2007년 노팅엄셔에 위치한 클리프턴홀이라는 대저택으로 이사를 왔다. 클리프턴홀이라고 불리우는 이 대저택은 11세기에 지어진 유서깊은 대저택으로 운치있고 웅장해서 가족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린 딸 써니는 만족해하는 아버지와 달리 이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드는 눈치를 보였다.



그런데 이 대저택으로 이사온 첫날 밤부터 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사온 첫날 써니의 가족 앞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의문의 소녀가 잠시 나타났었는데 그 의문의 소녀는 그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듯 밤마다 나타나서 가족들을 괴롭혔으며 가족들 전체가 이 이상한 소녀의 환영에 시달렸던 것이다.


어느날 밤에 누가 밖에서 황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잠시후 다시 문을 두드리며 ‘도와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외치는 소녀의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지만 문밖에는 아무도 없이 텅비어 있었다. 또한 써니의 엄마가 욕실에서 세면을 하고 거울을 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 거울에는 그 이상한 소녀의 얼굴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나타나는 이상한 의문의 소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의문의 소녀의 유령을 본 아버지는 스위치를 켜기위해 손을 뻗다가 그 소녀유령의 손과 닿게 되었는데 그만 그 손에 큰 상처를 입었고 써니는 거실에서 갑자기 사라지기까지 했다.


소녀유령은 가족들 모두에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급기야는 써니 아빠에게 타박상을 입히기까지 하였다.

써니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환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을 바꾸게 되었으며 그 저택에는 분명 소녀유령이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거실에 있다가 정원으로 나온 써니는 그 저택 정원에서 한 이상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는 써니에게 ‘조심해. 이곳은 오래 머물수 있는 집이 아니야’라고 충고하고 사라졌다.

얼마후 써니는 다락방에서 우연히 초등학생앨범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고 그 앨범을 뒤적이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그 앨범속 한 여학생 모습이 자신이 매일같이 시달리는 여자유령의 모습과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써니는 먼저 만났던 그남성이 이저택과 관련된 비밀을 알고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남성을 다시 만났으며 그 앨범을 보여주었는데 그 남성의 말이 정말 뜻밖이었다.

그남자는 ‘나는 그 학교 수위로 일하고 있었다. 학생 중에는 산드라라는 예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결국 산드라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 학교에는 이상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산드라 유령을 봤다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후 학교에서 계속해서 산드라유령이 출연하여 학생들은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 학교는 결국 폐교하고 말았고 그 학교 폐쇄 이후 그 학교를 개조해서 다시 지은 건물이 바로 클리프턴홀 저택이라는 것이다. 이 후 이저택에도 산드라의 유령이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종종 그모습을 보이곤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서 외롭게 죽어간 산드라가 한이 맺힌 유령이 되어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억울한 한을 풀려고 하는 것이었다.

클리프턴홀의 비밀을 알게 된 써니의 가족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고 지금까지 클리프턴홀은 아무도 살지않는 폐허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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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립튼의 ‘천국의 눈물 (Tears In Heaven)’ 노래동영상, ‘서프라이즈’ 621회 ‘아들을 위한 노래’




영국의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인 에릭 클립튼의 최대의 히트곡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이 에릭 클립튼이 자신의 죽은 아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실이 밝혀져 큰 화제가 되고 있다. 7월 6일 방영된 ‘서프라이즈’ 621회에서는 에릭 클립튼의 히트곡 ‘Tears In Heaven’의 탄생배경과 아들에 대한 슬픈 사연이 공개되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63년 그룹 크림으로 데뷔했던 에릭 클립튼은 81년에 발표한 앨범 ‘Another thiket'이 크게 히트를 하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80년대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더 이상 히트곡이 나오지 않게되자 에릭 클립튼은 음악적으로 몹시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에릭 클립튼은 후속곡을 만들기 위해 오랜기간 작업에 몰두했지만 좋은 악상이 떠오르지 않자 술과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

음악적으로 큰 활약을 펼쳐야될 중요한 시기에 좋은 곡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한 에릭 클립튼은 또다른 히트곡을 만들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었으며 이러한 강박관념으로 인해서 그의 곡작업은 더욱 더 난항에 빠져들게 되었고 좋은 곡을 만들지 못한 자신에 대한 힐책을 술과 마약에 의지함으로써 현실을 잊고자 하였다.



에릭 클립튼은 80년대 중반 이탈리아 사진작가인 로리 델 산토와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는데 더 이상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진 에릭 클립튼에게는 아들 또한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내와 가족들과도 단절된 채 알콜중독, 마약중독에 빠져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였다.


이렇게 알콜과 마약중독에 빠져있어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그의 부인은 에릭 클립튼에게 마약과 술에서 벗어나기를 간곡하게 권했지만 술과 마약에 완전 찌들어버린 에릭 클립튼은 더 이상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릭 클립튼에게 지쳐버린 그의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고 두사람은 별거생활을 하게 된다.


에릭 클립튼 부인 로리 델 산토와 아들 코너 사진


이후 자신의 아내와 아들과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된 에릭 클립튼은 그 때부터 자신의 잘못된 생활태도를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알콜중독자 치료보호시설에 스스로 찾아가서 술을 끊는 등 심기일전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오랜 노력 끝에 술과 마약을 끊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 에릭 클립튼은 꿈에도 그리워하던 아들을 만나러 갔으며 그는 아들과 아내에게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면서 아들에게 다음날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에릭 클립튼은 아들이 죽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충격을 받는다. 아들 코너는 아버지 에릭 클립튼을 기다리면서 55층 아파트 베란다 위에 있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지는 추락사고로 사망했던 것이다.



졸지에 아들을 잃어버린 에릭 클립튼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아들 코너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에릭 클립튼은 마음을 추스르고 죽은 아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기로 계획한다.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날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가사를 담은 노래가 바로 92년에 만들어진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이었고 감미롭고 애절한 멜로디를 지닌 노래 ‘Tears In Heaven’은 발표와 동시에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된다.


에릭 클립튼의 대표적인 히트곡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다. 에릭 클립튼 노래인생에서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고 있는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오랜 슬럼프에 빠져있던 에릭 클립튼에게 아들이 죽음으로써 동기를 만들어준, 죽은 아들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이다.


92년 에릭 클립튼이 발표한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발표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 1위를 거머쥐었고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2천만장이나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아들이 힘들어하는 아버지에게 영감을 주기위해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진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죽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천국에서 보내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친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을 2004년 에릭 클립튼은 돌연 더 이상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에릭 클립튼이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을 부르지 않기로 한 표면상의 이유는 이 곡을 처음 불렀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은 에릭 클립튼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던 아들과 이제는 작별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자신의 죽은 아들을 위해서 만든 노래인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에릭 클립튼의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담겨 있었는데 아들을 떠나보내고 12년이 흐른 상태에서 에릭 클립튼은 이 노래를 중단함으로써 아들을 마음속에서 잊기로 했던 것이다.


그럼 죽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연민의 정과 그리움이 사뭇쳐 흐르는 에릭 클립튼의 노래 ‘티어스 인 헤븐’의 노래를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릭 클립튼의 ‘Tears In Heaven’ 뮤직 동영상














tears in heaven 가사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너는 내이름을 알 수 있겠니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나는 강해져야해 그리고 꿋꿋하게 살아 가야해 왜냐하면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나는 여기 천국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Would you hold my hand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내손을 잡아주겠니

Would you help me stand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내가 굳건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니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

나는 밤낮없이 항상 내 살길을 찾아 나갈꺼야

Cause I know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

왜냐하면 나는 여기 천국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Time can bring you down

시간이 흐르면 좌절을 겪을 수도 있단다

Time can bend your knees

시간이 너를 굴복 시킬 수도 있고

Time can break your heart

시간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단다.

Have you begging please. Begging please

그럴때는 애원해라, 애원하거라

Beyond The Door There's Peace I'm Sure

저문 너머에는 분명히 평화가 있을거라고 확신 한단다.

And I Know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

그리고 난 안단다, 그곳 천국에는 더이상의 눈물은 없을 거라는 것을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너는 내이름을 알 수 있겠니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나는 강해져야해 그리고 꿋꿋하게 살아 가야해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나는 여기 천국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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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20회 딸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 딸의 억울한 죽음




6월 29일 방영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20회에서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귀한 딸을 잃고 그 범인을 찾아내어 법정에 세운 한 용감한 아버지의 한이 맺힌 복수편을 다루어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프랑스의 밤베르스키는 평범한 회계사 출신으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있었는데 1977년 아내와 예기치 않게 이혼을 하게 되는 바람에 자신의 애지중지하는 딸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딸 칼링카는 이혼한 아내가 양육하기 위해서 독일인 재혼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양육하게 되었고 밤베르스키는 사랑스러운 귀한 딸을 독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일을 겪어야만 했다.



의붓아버지인 크롬바흐와 딸 칼링카 사진


밤베르스키는 애지중지했고 끔찍해 사랑했던 딸 칼링카를 독일로 보내고 딸을 그리워하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1982년 어느날 뜻밖의 소식이 독일로부터 날아들었다.

그 소식은 끔찍이도 사랑했던 딸 칼링카의 사망소식이었으며 밤베르스키는 청천벽력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 한없이 밝고 명랑했던 딸 칼링카가 의문의 사망을 했다는 소식은 그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밤베르스키는 곧바로 딸이 사망했던 독일 아내의 집으로 달려갔다.



딸은 아버지와 헤이지고 난 후 독일로 건너가서 어머니와 독일인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독일로 한걸음에 달려온 친아버지 밤베르스키는 자신의 딸을 양육했던 전아내에게 딸이 사망한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딸을 양육했던 전부인과 의붓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방에 가보니까 딸이 숨져있었다며 그 사망원인을 자신들도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평소에 특별한 병도 없이 건강했던 아이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에 아버지 밤베르스키의 생각에는 아주 이상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인도 없이, 특별한 병도 없이 갑자기 건강했던 아이가 죽었다는 것은 누구든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래서 밤베르스키는 딸의 사망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딸의 장례도 미루고 딸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의뢰했다.


죽은 딸의 사신을 부검해보니 놀라운 사실이 들어났다. 딸의 오른쪽팔과 오른쪽발에 각각 하나씩 주사자국이 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딸에게 고의적으로 약물주사를 놓았던 흔적이었으며 또한 딸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물질이 나왔다. 밤베르스키는 직감적으로 누군가가 딸을 살해했다고 단정하고 독일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했다.



수사도중 밝혀진 사실은 의붓아버지 크롬바흐가 딸에게 영양주사를 놔주었다고 실토했는데 크롬바흐에 따르면 딸 칼링카가 평소에 많이 지쳐보여서 건강을 챙겨주기 위해서 여러번 철분제주사를 놔주었다고 실토했다.


크롬바흐가 딸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의식을 잃은 딸에게 성폭행했음을 감지한 밤베르스키는 독일법원에 의붓아버지 크롬바흐를 살인죄로 고소했다. 그렇지만 1987년 독일법원은 크롬바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독일법원은 딸의 몸에서 나온 물질이 크롬바흐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무죄 선고의 이유였다.



그러자 밤베르스키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 법원에서 다시 크롬바흐를 고소했는데 독일인 크롬바흐는 프랑스법원의 출석요구를 거듭해서 거부했으며 어쩔수 없이 프랑스에서 피고인이 궐석중인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프랑스법원은 크롬바흐에게 살인죄혐의로 징역 15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딸에게 투여했던 철분 성분을 계속 투여하게 되면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데 30년간 의사활동을 지속해온 베테랑 의사출신인 크롬바흐가 이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여해서 결과적으로 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유죄선고의 이유였다.


독일로 이사온 딸 칼링카, 의붓아버지 크롬바흐, 어머니


그렇지만 의붓아버지 크롬바흐를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독일인인 크롬바흐를 프랑스로 강제로 데려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끔찍이 사랑했던 딸 칼링카의 복수를 다짐한 아버지 밤베르스키는 크롬바흐를 어떻게든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 청부업자를 시켜서 크롬바흐를 프랑스로 강제로 납치해왔다. 결국 딸을 죽음에 이르게했던 의붓아버지 크롬바흐는 프랑스경찰에 체포되었고 살인죄의 죄목으로 프랑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딸의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힌 아버지의 복수는 무려 30년이나 기다린 끝에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딸의 복수를 끝마친 아버지 밤베르스키 또한 법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으며 그 또한 납치혐의로 인해 프랑스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독일법원에서 석연치않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프랑스법원에서는 외교상 문제로 인해 체포하지 못한 살인범을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왔던 용감한 아버지 밤베르스키는 딸의 복수를 위해서 자신도 범죄인이 되어야만 했던 얄궃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교도소에 수감되면서도 밤베르스키는 어린 나이에 고통속에 죽어간 딸의 고통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당당히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만약 재판에서 밤베르스키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10년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범인을 직접 잡아온 밤베르스키를 프랑스인들은 파렴치범을 단죄한 용감한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켐페인을 계속 벌이고 있다고 한다.


딸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본인마저 10년간 옥살이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죽은 딸을 다시는 살아돌아올 수 없는 것이니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살아있던 아버지 밤베르스키 만큼은 남은 여생을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프랑스법원에서 정상을 참작해서 형을 경감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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