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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적인 매력의 소피아 로렌 (Sophia Loren)

 

1934년 9월 20일생

출신지 이탈리아 로마

신체 174cm

 

  터질듯한 풍만한 몸매와 시골처녀의 섹시한 매력으로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과 헐리우드까지 공략한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출신의 세계적인 배우다
이탈리아의 실바나 망가노,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의 글래머형 여배우의 맥을 잇는 소피아 로렌은 볼륨있는 육체에서 뿜어져나오는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매력으로 전세계의 남성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AFI가 선정한 25명의 여배우 중 살아있는 다섯 전설 가운데 한 명이며 이탈리아인으로는 유일하다
 
소피아 로렌은 아버지와 이혼한 홀어머니와 함께 나폴리 빈민가에서 자라났는데 17세때 그녀가 우연히 참가한 나폴리의 미인대회‘바다의 여왕’에서 2등으로 입상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다
 미인대회 심사위원 카를로 폰티의 눈에 띄게 되고 카를로 폰티는 이탈리아의 명망높은 영화제작자로 그녀의 미모와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녀를 배우에의 길로 인도하고 키워준 은인이면서 후일 그녀의 생애 유일한 남편이 되었다

소피아 로렌은 51년 영화 ‘쿼바디스’로 (단역)데뷔하였고 ‘나폴리의 황금’ ‘해녀’ ‘엘시드’ ‘두 여인’ ‘로마제국의 멸망’ ‘카산드라 크로싱’ ‘해바라기’등 1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였고 77세인 10년과 11에도 영화 룰티모 가토파르도: 리트라토, 영화 비커밍 버트스턴에 출연할 정도로 최근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61년 제작된 ‘두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녀의 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고 그녀의 관능적인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이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셈이다
소피아 로렌은 섹시한 이미지와는 달리 ‘닥터 지바고’ ‘길’을 만든 이탈리아의 명제작자 카를로 폰티의 충실한 아내이자 영화인으로 성실한 삶은 살고 있는 모범영화인이다 

소피아 로렌의 이미지는 명랑하다기 보다는 이지적이고 글래머스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는 고결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언뜻보면 건강한 시골처녀의 풋풋한 섹시미를 풍기지만 그녀가 출연한 블록버스터급 대작인 ‘로마제국의 멸망’ ‘엘시드’등에서는 관능적 매력보다는 우수에 젖은 여인의 고결한 아름다움과 청초함이 더욱 돋보인다
이렇게 대작에서 소피아 로렌은 ‘우수’ ‘애수’의 슬픔을 간직한 청초한 여인, 고고한 여인 이미지가 더욱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로마제국의 멸망’에서는 몰락헤가는 로마를 되살리기 위해 고뇌하는 공주로, ‘엘시드’에서는 아버지의 원수로 변해버린 사랑하는 약혼자를 복수해야하는 자신의 운명 앞에 고뇌하는 한 여인으로, ‘해바라기’에서는 전쟁에서 죽었다는 전남편이 다시 돌아왔을 때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아쉬움과 미련속에서 역시 고뇌하는 연약한 여인의 이미지에서 그녀는 “우수에 젖은 고결한 아름다움”이 진하게 베어난다
‘엘시드’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카리스마있는 고결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치 세상의 희노애락을 초월한 신선의 모습처럼 ~

이렇듯 소피아 로렌은 외관상으론 터질듯한 육감적인 몸매에서 풍겨나오는 관능적인 매력보다는 우수에 젖은 청초한 고결미가 그녀의 진정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수상 내역

수상1958년 제22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1961년 제1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1961년 제27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1961년 제1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1962년 제3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1974년 제22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1991년 제6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공로상
1994년 제4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금곰상
1995년 제5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평생공로상
2001년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특별상 

 

 

 


 

(출연작품)

나인 (2009)
션쇼 (1994)
오로라 (1984)
불의 여인 (1979)
굴 없는 표적 (1979)
암호명 S 비밀 지령 (1978)
특별한 날 (1977)
안젤라 (1977)
산드라 크로싱 (1976)
코스마토스 . 여행 (1974)
밀회 (1974)
돈키호테 (1972)
레이디 리버티 (1971)
해바라기 (1970)
카운테스 프럼 홍콩 (1967)
베스크 (1966)
V2 3인의 첩보전 (1965)
이태리식 결혼 (1964)
로마 제국의 멸망 (1964)
보카치오 70 (1962)
엘 시드 (1961)
두 여인 (1960)
검은 난초 (1958)
잃어버린 전설 (1957)
자랑과 정열 (1957)
해녀 (1957)
소렌토의 염문 (1955)
나폴리의 황금 (1954)
쿼바디스 (1951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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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 젖은 미녀 ‘비비안 리’

   

 

 

 

비비안 리 1913년생 인도 출생
국적 영국
신장 161cm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에서 연기 공부

역대 허리웃 여배우중 가장 고전적인 미인이자 미인의 원조격인 비비안 리는 허리우드 미녀 배우 하면 항상 떠오르는 여배우다
출연한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비비안 리는 40~50년대 허리우드 영화에 가장 강렬한 족적을 남겼고 그리고 그녀의 영화처럼 54세 나이에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비안 리가 출연한 명작은 4~5편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녀만의 아름다운 카리스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세계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전세계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가슴속 깊이 각인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수’ ‘안나 까레리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름만 들어도 활홀한 이 영화들에 당당히 주연이라는 명함을 내걸고 출연한 비비안 리를 생각하면 ‘우수’ ‘고뇌’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수에 찬 미인, 고뇌하는 미녀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떠오르는 건 비비안 리가 출연한 ‘애수’에서 보여준 청순하고 가련하고 슬픈 여주인공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서인가 보다

 

06년 영국의 버틀그린 음료회사가 조사한 역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 비비안 리가 1위에 뽑혔다고 하며 2위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이고 3위는 캐서린 제타존스가 뽑혔다고 하는데 비비안 리가 죽은 지 40년이 지난 후에도 미인 1위에 뽑힐 만큼 그녀의 미모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더 아름답다고 평가를 받았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형님이나 누님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00% 미인이고 데보라 카나 오드리 헵번은 99% 미인이라는 말이었다

비비안 리는 35년 ‘날 보고 웃어봐요’로 영화계에 데뷔하였고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눈에 들어 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출연하여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다 이 영화는 허리우드 역사상 다섯 손까락에 꼽힐 만한 대작중의 대작으로 이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뛰어난 연기력과 아름다운 미모를 동시에 인정받은 비비안 리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는다


깜찍하고 여우같으면서 애교스러운 연기는 오직 비비안 리만 가능한 연기력이었고 그녀를 스칼렛 오하라 배역을 위해 스카웃한 데이비드 셀즈닉의 안목과 예상은 적중했고 크라크 게이블과 더불어 호흡을 멋지게 맞추며 정열적으로 연기를 펼친 그녀로 인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불후의 걸작이 되었고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1년 후 40년 영화 ‘애수’로 또한번 스타덤에 오른다


허리우드 미남스타인 로버트 테일러의 연인으로 나온 비비안 리는 청순하고 가련한 여인상을 아주 훌륭히 연기하며 전세계의 수많은 관람객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 영화 또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세겨진 명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애수’의 마지막 장면에서 착하고 사랑스런 애인 로버트 테일러에게 자신의 직업(창부)를 밝히는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그녀는 워털루 다리위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진한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뛰어난 연기력은 오직 비비안 리만이 가능한 그녀만의 전유물이다
실제 이 영화는 6.25 동란 당시 우리나라 부산에서 개봉되어 수많은 젊은 남녀들을 울리고 울렸던 영화라고 한다

 

 

 

 

비비안 리는 런던에서 연극배우로 활동을 하였는데 세익스피어 연극무대에 서게 되고 여기서 만난 운명적인 연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고 로렌스 올리비에와 많은 연극무대에서 상대역으로 출연하면서 그와의 사랑을 키워갔으며 결국 전남편과 이혼 후 40년에 올리비에와 재혼하게 된다

 

48년 영화 ‘안나 까레리나’에 출연하였고 51년에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하여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탁월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였다 이 영화에서 허영과 환상에 사로잡혀 과거의 영광만을 상기하면서 살아가는 편집광적인 이혼녀의 연기도 훌륭히 해내었는데 자신을 상류사회의 교양미 넘치는 인기 높은 여자라는 착각속에 빠진 그녀를 그녀가 무식하고 천박한 남자라고 경멸하던 제부(동생의 남편)에게 강간당하고 마침내 실성한 여인이 되어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와중에도 초대장을 받고 옛 연인을 만나러 가는 환상에 빠진 여인의 연기 또한 훌륭히 해냈고 결국 또 한번의 아카데미 상을 거머 줘었다

 

이렇게 비비안 리는 여러 편의 대작에 출연하였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다(14편) 오히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하는 가정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간간히 연극무대에도 오른다
60년 로렌스 올리비에와 이혼 후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갔고 67년 54세의 나이에 페렴으로 사망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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