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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남이장군의 비극과 죽음, 설화





3월 30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남이장군편’을 방송하여 남이장군에 대한 역사적 치적에 대해서 다시한번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이장군은 조선시대 세조때 공을 많이 세운 기개와 무용이 뛰어난 장수였다. 남이장군은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무예에 뛰어나고 병법에 능한 전형적인 호걸형 무인이다.

남이장군은 평소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지닌 이상과 기개가 높았던 인물이다. 훗날 남이장군의 이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이 남이장군의 비극적인 종말을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남이장군은 세조때 외적의 침입과 반란 때 출정하여 큰 공을 많이 세웠던 뛰어난 조선의 용장이었다.

건주여진족을 물리치고 세조 12년에는 이시애의 난(1467년)을 평정하는 등 뛰어난 무예와 용맹성으로 많은 백성들의 지지와 신망을 받았던 무장이었다.

남이장군은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국방부장관)에 오르는 파격적인 승진을 하게 된다. 남이장군의 출중한 무공을 높이 산 세조는 남이장군을 병조판서에 임명하였고 자신의 후계자인 예종의 후견인으로 삼았다.


또한 남이장군은 당시 권력의 핵심인물이었던 권남의 사위가 되어 더욱 권력층에 가까이 다가간다. 조선시대 때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많이 받았던 남이장군에 관련된 민간의 전설들이 많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남이장군과 훈구대신 권남의 딸과 관련된 전설이다.


남이는 한 여자시종이 물동이를 이고 걸어오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된다. 그런데 남이가 자세히 보니까 그 여자시종의 물동이 위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이 올라타고 있는 것이 남이장군의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귀신은 여자시종 물동이위에 탄 채 한 우람한 양반집 저택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에 남이가 이상히 여겨 그 여자시종을 따라 양반집 저택으로 들어가보니 곧이어 곡소리가 크게 나고 그 양반집 여식이 고통에 심음하며 다 죽어가고 있었다.

남이장군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병에 걸려 고통에 신음하는 그 여식의 머리위에서 아까 여자시종을 따라 들어갔던 여자귀신이 그 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이는 바로 그 여자귀신을 향해서 ‘물럿거라! 어찌 귀신 따위가 남의 귀한집 딸을 희롱하는가! 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자 깜짝 놀란 여자귀신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말았다.


그렇게 여자귀신을 쫒아내자 그 양반집 딸은 바로 병마에서 회복되어 일어났다고 한다. 그 공로로 그 양반집 여식과 남이장군은 혼인을 맺게 되었는데 바로 그녀가 훈구대신 권남의 딸이었으며 남이장군은 태조 때 1등공신이자 세도가인 권남의 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민간에 널리 퍼져있는 남이장군에 과한 전설은 남이장군의 높은 기개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남이장군의 호방함을 잘 보여주는 시 한 수가 있어 소개한다.


백두산석마도진 (白頭山石磨刀盡)이요

두만강수음마무(頭滿江水飮馬無)라

남아이십미평국 (男兒二十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리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게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앴도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이시는 남이장군이 국경을 침범한 건주여진족을 물리치고 회군하는 길에 지은 시이다. 남이장군의 드높은 기개와 호방함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기개 넘치는 시 한 수가 훗날 남이장군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남이장군이 젊은 나이에 여진족을 물리치고 큰 전공을 세우면서 초고속승진을 하자 남이장군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당시 훈구세력인 한명회에 의해서 정치적 견제를 받게 된다.즉, 기득권세력인 훈구세력과 신흥세력의 갈등과 대립의 한복판에 남이장군이 휘말리게 된 것이다.


어느날 하늘에서 푸른빛을 띤 혜성이 긴 꼬리를 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 혜성의 출현은 전쟁이나 모반을 의미하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져 왔는데 마침 혜성의 출현하던 날 밤 남이장군은 당직을 서고 있었고 혜성의 출현을 전해들은 남이장군은 ‘혜성이 나타나는 것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는데 이말은 전해들은 유자광은 남이장군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했던 것이다.


이 말 한마디로 인해서 남이장군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게 되었다. 전혀 굽힐줄 모르는 강직한 성격과 발언으로 평소에 조정에 반감을 갖는 대신들이 많았던 남이장군은 자신을 시기하던 간특한 야심가였던 유자광의 고변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또한 정적관계에 있던 한명회, 유자광은 남이장군의 시에서 '남아이십 미평국(未平國)' 구절을 '남아이십 미득국(未得國) '이라 고쳐서 고변함으로써 남이장군이 평소에 역심을 품었다고 고변을 하게 된다.

‘나라를 평정한다’를 ‘나라를 얻는다’로 거짓 고변을 해서 죄없는 남이장군을 역적으로 몰았던 것이다. 결국 남이장군은 역적의 누명을 쓰게 되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도 능지처참의 형을 당하게 된다.





조선시대에 오직 권력에만 눈이 먼 간특한 간신들에 의해 이와같은 기개 높고 뛰어난 용장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전정한 충신들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특권층에 아첨만 하는 아첨배들만이 종국적으로는 살아남아 훗날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남이장군 같은 맹장이 나올 수 없게 만든 불행한 비극의 서막이 되었던 것이다.


한명회, 유자광 같은 권력에만 눈이 먼 훈구세력들이 드높은 기개와 뛰어난 용병술로 여진족을 토벌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켰던 남이장군과 같은 용장이 더 이상 나올 수 있는 토대를 없애버린 것이다.


남보다 뛰어나면 어떻게든 시기하고 꼬투리를 잡아 역적으로 몰아가니 뛰어난 인재들은 출사하지 않고 초야로 숨어들어 은둔하는 풍토를 만들었으니 누가 있어서 나라를 지켜내겠는가?

남이장군 같은 뛰어난 용장을 역적으로 몰아 숙청했다는 것은 조선의 큰 비극이자 훗날 조선이 파멸하게 되는 전조였던 것이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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