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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41회, 노르웨이왕세자비 메테 마릿의 사과, 참회의 눈물, 마약중독, 미혼모 과거




12월 14일 방송된 ‘서프라이즈’ 641회에서는 노르웨이 왕세자비 메테 마릿의 눈물겨운 사연이 소개되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노르웨이 왕세자비에 올랐던 메테 마릿은 21세기의 최고의 신데렐라 같은 인물이지요. 메테 마릿은 아마 전세계의 모든 여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고전동화속의 신데렐라 그 자체입니다.


노르웨이 왕세자비 메테 마릿


극빈층의 맏딸로 태어나 가난에 허덕였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장역할을 하기위해 온갖 힘든 일들을 헤쳐나가야만 했고 또한 대학생활 때에는 마약에 중독되는 등 정말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여인인데 우연찮게도 지역축제 때 만난 노르웨이 왕세자의 눈에 들어 졸지에 인생역전을 일궤내어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왕세자비로 등극한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답니다.


메테 마릿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가장으로서 온갖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생활했는데 대학에 들어가 망나니남자친구를 만나서 마약중독에 빠지게 되며 그녀의 인생이 추락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인생역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거 같군요.

우연히 고향에서 개최되었던 음악페스티벌에서 노르웨이의 호콘왕세자를 만나게 됩니다. 호콘왕세자의 첫눈에 들어 두사람은 극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호콘왕세자와 극빈층 출신의 메테 마릿의 신분과 지위를 초월한 세기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었죠.



그런데 메테 마릿은 그당시 전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았다는 충격적인 과거까지 있는 상태인데도 노르웨이 호콘왕세자는 전혀 그녀의 현실을 문제삼지 않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메테 마릿을 사랑해주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두사람이 결혼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엄청난 반발과 역풍이 몰아치게 됐답니다.

언론에서는 호콘의 왕세자비가 될 메테 마릿의 과거를 들추기 시작했으며 메테 마릿이 과거에 마약중독자였던 사실과 그녀의 망나니 남자친구가 마피아출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대학때 난교파티를 함께 벌였다는 사실, 또한 그녀가 미혼모라는 사실까지 까발리며 메테 마릿이 결코 숭고한 노르웨이 왕실의 왕세자비가 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계속해서 반대했었답니다.


호콘 왕세자와 메테 마릿의 결혼에 왕실은 물론 전국적인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결혼발표 후 메테 마릿은 TV중계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는 방송을 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TV중계로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반성하는 메테 마릿의 진정성에 이를 지켜보았던 국민들이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연 것일까요?



메테 마릿에 그토록 반대했던 국민들은 메테 마릿이 눈물로 읍소하며 지난날의 과오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TV를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후 메테 마릿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왕세자비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싸늘했던 여론은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에 동정을 표시하면서 역경을 헤쳐나간 그녀의 행동에 경의를 표했으며 국민들은 메테 마릿을 따뜻이 아껴주며 지지해주는 최대의 지지자로 뒤바뀌게 되었답니다.


최하위 계층의 극빈자로 태어나서 졸지에 노르웨이 왕실의 왕세자비로 등극한 메테 마릿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딛고 그것들을 헤체나가는 과정에서 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참회한다면 싸늘했던 대중들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느끼게 되는군요.


그리고 극빈층으로 태어나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메테 마릿은 정말 행운을 타고난 21세기 최고의 신데렐라가 아닐 수 없답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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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38회, 제2의 마릴린 먼로, 제인 맨스필드, 금발미녀배우




11월 23일 방송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38회에서는 평생 마릴린 먼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릴린 먼로를 원망하며 살다간 여배우 제인 맨스필드의 기구한 운명을 그렸다.


제인 맨스필드는 1950년대 허리우드에서 풍만한 육체와 섹시한 금발을 트레이드마크로 해서 ‘못 말리는 여자’ ‘성공이 록헌터를 망치게 될까’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면서 5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였다.

그런데 이렇게 50년대 승승장구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제인 맨스필드에게는 한가지 핸디캡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제2의 마릴린 먼로’, ‘B급 마릴린 먼로’라고 하는 마릴린 먼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제인 맨스필드는 사실 허리우드의 초대형 영화사인 ‘파라마운트사’에서 당시 라이벌 영화사인 ‘20세기 폭스사’의 마릴린 먼로에게 대항할 수 있는 대항마로 키워졌던 배우였고 그녀는 마릴린 먼로와 거의 똑같은 분장과 의상, 그리고 섹스어필까지도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키워진 배우였기 때문이다.



1950년대는 금발의 미녀스타이자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였던 마릴린 먼로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마릴린 먼로의 소속사였던 20세기 폭스사에서 마릴린 먼로를 출연시킨 영화 ‘7년만의 외출’이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으며 마릴린 먼로의 말 한마디와 금발머리, 그리고 풍만한 육체는 당시 따라올 여배우가 전무했다.



마릴린 먼로가 소속되었던 20세기 폭스사와의 경쟁에서 심한 위기감을 느꼈던 파라마운트사에서는 마릴린 먼로에게 대항할 수 있는 대항마를 물색 중이었는데 그러던 중 풍만한 몸매를 지녔던 단역여배우 제인 맨스필드가 눈에 들어왔으며 그녀에게 마릴린 먼로와 같은 금발머리로 치장시키고 마릴린 먼로처럼 섹시한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을 입히고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마릴린 먼로를 따라하게 함으로써 철저히 마릴린 먼로의 아류배우로 키웠고 또한 그녀를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시켰는데 이렇게 ‘제2의 마릴린 먼로’로서 활동했던 제인 맨스필드는 50년대에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마릴린 먼로의 풍만한 육체와 섹시한 이미지와 너무나도 흡사했던 제인 맨스필드는 마릴린 먼로의 높은 인기 덕분에 ‘제2의 마릴린 먼로’로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제인 맨스필드는 명성은 높아갔지만 항상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야만 하는 자신의 연기생활에 큰 불만을 갖게 되었고 더 이상 ‘제2의 마릴린 먼로’가 아닌 진정한 연기자로서 거듭나길 원하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마릴린 먼로 흉내만 내는 배우로 지낼 수만은 없었던 제인 맨스필드는 연기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원했다.

그래서 제인 맨스필드는 마릴린 먼로의 흉내를 그만두고 진정한 예술의 세계를 찾아서 유럽으로 날아갔다. 당시 유럽에서는 예술성이 높은 실험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는데 제인 맨스필드는 유럽에서 진정한 연기자로서 거듭나길 원했다.



그렇지만 유럽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영화사에서도 그녀에게 마릴린 먼로 스타일의 섹시연기만을 요구해왔다. 그러던 중 1962년 마릴린 먼로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제인 맨스필드는 드디어 마릴린 먼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기뻐했다.

마릴린 먼로가 죽고 난 이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제인 맨스필드는 또다시 낭패를 맛보아야만 했다.


마릴린 먼로가 없어진 상황에서 허리우드의 영화사에서는 더 이상 제인 맨스필드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그동안 제인 맨스필드의 존재감은 오로지 높은 인기를 끌고 있었던 마릴린 먼로의 생존시에만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제2의 마릴린 먼로’로서만 그 존재감이 필요로 했던 제인 맨스필드는 마릴린 먼로 사망 후에는 더 이상 용도가 없어진 것이다.



마릴린 먼로 사망 후에 자신의 진정한 연기자로서 가치를 보여주려고 했던 제인 맨스필드를 원하는 영화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마릴린 먼로의 사망과 더불어 제인 맨스필드의 역할도 함께 끝났던 것이다.


이렇게 영원히 마릴린 먼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햇던 제인 맨스필드는 평생 마릴린 먼로를 원망하며 살았다고 한다. 결국 제인 맨스필드는 심한 우울증과 알콜 중독에 결려서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1967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그녀는 34살의 한창의 나이에 마릴린 먼로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간직한 채 삶을 마감했다.


그렇지만 삼류 연극단체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던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분명 마릴린 먼로 때문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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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637회, 다이애나비의 비밀테이프, 연인 배리 매너키, 다이애나비의 사망원인




11월16일 방송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37회에서는 영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왕세자비로 남아있는 영국의 전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충격적인 비밀테이프가 공개된 사연을 소개했다.


다이애나비가 촬스왕세자와 결혼중이던 92년~93년도에 촬영된 비밀테이프는 다이애나에게 연설법을 가르치던 교사 피터 세틀런이 촬영했던 비밀테이프로 미국의 NBC 방송국에서 공개되었고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고백이 담겨져있는 그 비밀테이프에는 다이애나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는데 특히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영국 촬스왕세자와 결혼생활을 하던 중에 다른 남자를 사랑했었다는 놀라운 고백이 담겨져 있었다.


비밀테이프를 촬영했던 피터 세틀런은 다이애나가 사망한 지 7년 후에 그 비밀테이프를 공개했는데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다이애나의 고민과 사랑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 비밀테이프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자신이 촬스왕세자와 결혼한 것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라고 털어놓았다. 다이애나는 촬스왕세자와 결혼한 첫날 밤에 촬스왕세자와 카밀라가 연인관계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며 다이애나는 촬스왕세자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신혼시절에도 촬스왕세자가 전화로 카밀라와 사랑한다는 통화내용을 여러번에 걸쳐서 듣었다고 한다. 촬스왕세자가 연인 카밀라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이애나는 그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다이애나는 낙심한 끝에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애나는 애인 카밀라에게 빠져 자신에게로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촬스왕세자로 인해서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는데 무려 5번에 걸쳐서 자살시도를 했다고 하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미 결혼 때부터 남편 촬스왕세자는 다른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고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않고 있는 까닭에 거대한 궁전에서 홀로 외롭게 남겨져 있는 다이애나는 의지할 곳 없는 사실상 외로운 고아신세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사랑을 전혀 받지못하고 외로운 궁궐속에서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던 다이애나는 더 이상 행복한 왕세자비가 아니었고 평범한 여인들보다도 훨씬 더 불행한 여인이 되어버렸다.


촬스황태자의 연인 카밀라 파커볼스(왼쪽)


다이애나가 자살시도한 사건들은 외부에는 철저히 감추어졌고 다이애나가 촬스왕세자와 마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다아애나 왕세자비가 5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는 것만 보아도 다이애나왕세자비의 불행과 고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것이었다. 왕세자비라는 신분 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다이애나에겐 화려한 궁궐생활이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음의 고통을 간직한 채 왕실생활을 어렵게 이어가던 다이애나의 마음을 이해주고 위로해주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고 그녀는 고백했는데 그 남자는 다름아닌 다이애나의 경호원 배리 매너키였다. 배리 매너키는 다이애나를 24시간 동안 경호해주면서 다이애나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경호원 배리 매너키에게 다이애나비는 사랑을 품게되었다고 한다.


다이애나비는 비밀테이프에서 자신의 경호원 배리 매너키를 사랑했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 비밀테이프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의 모든 지위를 버리고 배리 매너키와 함께 도망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었다.


다이애나의 연인 배리 매너키


그런데 다이애나의 연인 배리 매너키는 87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졸지에 사망하고 만다. 다이애나가 마음속으로 유일하게 의지했고 사랑했던 애인 배리 매너키가 사망하자 다이애나는 더 큰 좌절감에 빠져버렸다.


1993년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랑과 사생활을 고백한 비밀테이트를 찍은 다이애나는 자신이 죽기전까지 공개하지 말도록 했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테이프를 촬영한 지 4년 후인 1997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만다.


다이애나가 죽은 지 7년 후에 다이애나의 사랑고백이 담겨져있던 비밀테이프가 공개되어 전세계인들을 충격으로 몰고갔던 것이다.

여성으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까지 오르면서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처럼 보였던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그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이애나의 불행한 삶을 안타까워하며 그녀를 추모하고 있다.



한편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는 연인 도디 알 파예드와 자동차를 타고가던 중 프랑스 파리의 알마터널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이사건을 담당했던 법원은 당시 운전기사 앙리 폴의 부주의한 운전과 파파라치들의 극성 때문에 사고가 생겼다고 결론지은 바가 있다.


다이애나의 사망에 대해서 단순 사고사 또는 영국왕실의 음모에 의한 타살이라는 등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으며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다이애나가 알마터널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망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알려졌으며 그녀를 빨리 구조해서 치료했다면 살아날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다이애나가 연인 도디 알 파예드와 파리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차에 탄 직후부터 수많은 파파라치들이 뒤를 따라 그녀의 차를 끈질기게 추격해온 것은 사실이다.



촬스왕세자와 이혼 직후부터 다이애나는 매스컴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려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 알 파예드가 탄 자동차가 파파라치들을 따돌리기 위해서 과속운전을 했으며 파리의 알마터널 난간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사고원인이다.


그렇지만 다이애나의 연인 도디 알 파예드의 부친 모하메드 알 파예드 측은 다이애나의 죽음은 다이애나가 영국의 무기 거래를 폭로하려는 계획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이애나의 죽음과 관련해서 어느쪽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다이애나가 사망한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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