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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사체 발견의 미스테리, 타살설, 유병언 시신조작설, 사망원인, 노숙자의 정체




7월 22일 전남순천경찰서는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결과 그 사체는 유병언의 사체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그 사체는 전남 순천의 송치재 부근의 별장에서 2.3km 떨어진 한 매실밭에서 밭주인 발씨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그 사체는 발견 당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버려 처음에는 유병언인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하며 80% 정도 부패해서 거의 반백골화 상태였었다고 한다. 유병언 추정 사체의 부근에는 천가방 하나, 스쿠알렌 1병, 육포 2봉지, 막대기 하나, 막걸리 1병(빈병), 소주 2병(빈병)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유병언 사망과 관련한 경찰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유병언 추정 사체 발견은 많은 의혹점을 낳고 있으며 유병언에 관한 최대의 미스테리가 되었다. 즉,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유병언 추정 사체 발견을 믿지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경찰내부에서도 그 사체는 유병언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그 사체는 그냥 평범한 노숙자의 사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오히려 유병언 사체 발견은 유병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유병언에 대한 의혹만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유병언 추정 사체 발견은 20세기 우리나라의 최대의 미스터리가 될 것 같다.


5월 중순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이후 무려 120만 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왔는데도 두 달 동안 전혀 꼬리를 잡히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게 도피생활을 이어갔던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이렇게 끔찍스럽고 초라한 행색으로 변사체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유병언 추정 사체의 발견 당시의 모습과 유류품들


경찰에서는 그 사체에 대한 DNA유전자 감식과 오른손 지문 감식결과 유병언과 일치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통보를 확인했다고 그 사체가 유병언이 확실하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경찰에서 국과수의 감식결과까지 내놓으면서 그 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경찰의 발표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너무나 많다.


만일 그 시신이 유병언의 사체가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유병언이 사망한 시점은 5월 25일부터 6월 12일까지 이기간 중에 유병언은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경찰이 지난 5월 유병언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전남 순천 송치재휴게소 부근에 있는 별장인 ‘숲속의 추억’을 급습하였으며 이별장에 있던 유병언은 간발의 차이로 탈출에 성공했으며 그 별장에서 유병언의 여비서 신윤아만 검거하는데 그쳤다.


이 때가 바로 5월 25일이며 이 때까지도 유병언은 살아있었으며 이 별장에서 유병언은 검찰과 경찰이 급습하기 직전에 도망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모씨의 신고로 유병언 추정 사체가 발견된 시점은 6월 12일이니까 유병언은 5월 25일부터 6월 12일 사이에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병언이 아무리 빨리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유병언은 5월 25일 이후에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유병언이 5월 25일 사망했다면 18일 후에 유병언의 사체가 발견된 것인데 유병언의 사체가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살이 80%가 부패되어 백골화가 되어있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아무리 날씨가 고온다습했다 해도 시신의 부패 상태와 주변 정황 등이 미스터리한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도 반백골화된 채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경찰에 따르면 “수년간 사체를 봐왔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절대로 유병언씨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며 시신이 방치된 시간 대비 부패 정도가 극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다. 유병언이라고 내놓은 그 사체의 부패상태는 전문가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죽은 지 6개월 정도 지나야 그 정도의 부패한 사체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 5월25일 순천 송치재에서 달아난 것으로 알려진 유병언이 아무리 날씨가 더웠다 해도 불과 18일 만에 ‘반백골’ 상태의 변사체로 나타났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 유병언 추정 사체가 최초 발견된 당시에는 순천경찰서에서는 해당 변사체가 숨진 지 약 6개월 정도 지났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순천경찰서에서는 그 사체가 유병언이라고 전혀 생각못하고 행려병자, 객사자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뒤늦게 국과수 감식을 해서 유병언 사체라고 갑자기 발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구원파 측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유병언 키와 관련된 외모의 상이점이다. 사체 발견 때 키 등 신체적 특성이나 체구 확인 과정에서 다른 점이 많아 유병언이 아닐 것으로 경찰측에서도 판단했다고 알려졌다.


구원파의 이태종대변인은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발견됐다는 사체는 유 전회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며 "최소한 지난 5월25일 유병언 전 회장과 동행했던 신모씨가 체포됐을 시점까지는 유 전회장이 살아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던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키가 상당히 작아서 한 눈에 봐도 구별할 수 있는데 (변사체와) 외모도 달랐다는 것 같다. 또 (변사체) 주위에 막걸리병, 술병이 많이 있었다고 하던데, 유병언 전 회장은 술을 전혀 안 마신다. 상황을 봤을 때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닐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경찰의 보도를 반박했다.


세 번째 의문점으로는 평소에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는 유병언이 왜 막걸리 한병과 소주 두병을 먹었는지도 도합 세명의 술을 짬뽕으로 먹었다는 것인데 그것도 값싼 육포를 안주 삼아서 먹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재력가가 값싼 소주에다 육포를 먹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격이 맞지않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사체의 주인공이 유병언이 아닌 일반 노숙자로 추정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 사체의 키나 체구도 유병언의 키와는 차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점 때문에 순천경찰서에서는 처음에는 그 사체가 유병언이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유병언 키’ 또는 ‘유병언 키와 외모’ ‘유병언 술’ ‘유병언 손가락’ 등이 계속해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고 있는 까닭이다.


유병언 추정 사체가 발견된 매실밭


네번째 미스터리는 그 사체가 발견된 마을에서 종종 모습을 보이곤 했던 노숙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이다. 평소 구원파신도 등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성공적인 도피생활을 어어왔던 유병언이 어떤 경위로 인해서 홀로 노숙자 차림으로 아무도 없는 밭에서 생을 마감했느냐는 것도 또다른 미스테리이다.


해당 변사체가 발견된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4월까지 벙거지모자에 검은 바바리 차림으로 현장 주변을 배회했던 노숙자를 자주 목격했는데 최근에는 보지 못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출현했다는 사라진 노숙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궁금증만 증폭되고 있다. 그 노숙자는 분명 유병언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며 그 노숙자의 실종과 유병언 추정 사체와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6개여월 동안 마을 주민들에게 자주 목격되었던 그 노숙자의 행색이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사체의 행색과 유사한 측면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네 번째의 미스터리로 유병언 추정 사체의 발견 당시 그 사체는 목과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주장이다.

YTN 보도에 따르면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그 사체는 발견 당시 목 부위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고 얼굴은 오른쪽 방향으로 심하게 돌아가 있는 상태로 목과 몸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즉, 변사체의 목과 몸이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에서는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유병언 추정 사체가 누워있던 장소


현재 유병언 추정 사체를 두고 유병언의 사망과 관련해서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순천경찰서는 타살로 추정될만한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며 자살로 추정하고 있는 실정인데 순천경찰서의 발표도 오락가락 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체가 발견 당시 너무나도 심하게 부패되어 있어서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다고 발표했으면서 또다시 발표하기를 그 사체에서 칼이나 흉기로 인한 외상의 흔적이 없었다고 모순된 발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부패하고 홰손되었는데 어떻게 타살이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유병언이 벼랑 끝에 몰린 극단적인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감을 느끼고 소주와 막걸리에 독약을 섞어서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기는 하다.


다섯 번째 의문점은 유병언이 목숨만큼 소중히 갖고 다니던 20억이 들어있다는 돈가방이 사체 현장에 없었다는 점과 유병언의 안경이 없다는 점이다.

유병언은 항상 안경을 끼고 다닌다. 유병언 관련 동영상이나 사진에서 보면 유병언은 항상 안경을 끼고 있는데 그 사체 현장에서는 어디에도 유병언의 안경이 없는 점도 이상하다. 또한 유병언이 도피와 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20억 돈가방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것은 유병언의 타살 가능성을 높여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유병언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송치재 부근 '숲속의 추억' 별장


유병언이 5월 25일 순천 송치재휴게소 부근의 별장에서 경찰로부터 달아난 이후에 그의 측근들과 같이 인근 산속으로 도망쳤다고 가정해보면 그 당시 경찰이 800여명을 동원에서 송치재 별장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는데 산속으로 달아나던 극단적인 상황에서 측근들이 더 이상 유병언과 함께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유병언을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유병언에게 고용되어 유병언에게 헌신적인 도움을 주었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유병언과의 관계에서 건질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상황에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데에 있어서 걸림돌로 전락하고 만 유병언을 죽이고 그의 돈가방을 탈취해서 달아났다는 추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유병언 측근들이 유병언에게 헌신적인 충성을 다했던 이유는 그에게는 돈과 명예라는 유인요소가 풍부하게 있었을 때의 상황이고 이제 그런 유인요소가 사라져 버린 유병언은 빨리 제거해야 될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일 뿐인 것이다. 더욱이 그와 같이 있으면 자신들도 철창신세를 져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차라리 유병언을 죽이고 그동안 유병언에게 봉사하고 헌신한 대가로 유병언의 돈가방을 챙겼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병언의 사망이 확실하다면 유병언이 자살했다기 보다는 측근들이나 주변인물들에 의한 타살의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유병언 추정 사체 부근에 따른 유류품들은 있는데도 돈가방이 없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유병언이 송치재부근 별장에서 달아나기 전까지 유병언은 여비서 신윤아와 유운전기사 양회정(55)씨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미처 달아나지 못했던 여비서 신씨는 급습했던 경찰에 체포되었고 유병언과 운전기사 양시만이 탈출했던 것이다.

유병언과 함께 탈출했던 것으로 알려진 운전기사 양씨가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화정씨가 유병언과 함께 별장에서 탈출하고 난 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유병언을 버리고 혼자 달아났거나 또는 유병언의 사망에 관여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아니면 또다른 공범이 있을 수도 있다.


유병언의 사망하기 전에 유병언의 소재가 마지막으로 확인되었던 곳은 송치재휴게소 부근의 별장인데 경찰이 급습하기 전에 그 별장을 탈출한 유병언이 그 별장에서 불과 2.3km 거리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인 매실밭에서 한가로이 값싼 육포 안주에다 소주와 막걸리를 먹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다.



간발의 차이로 송치재 별장에서 유병언을 놓친 경찰은 당시 송치재 휴게소 주변을 55회에 걸쳐 연인원 8천여명을 동원해 정밀 수색했다고 한다. 유병언 추정 사체는 송치재 별장에서 불과 2.3km로도 안되는 가까운 매실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일 당시 유병언은 별장을 빠져나와 멀리 가지 못하고 그 인근 산속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이 8천명이나 동원되어 샅샅이 수색하는 와중에 유병언을 왜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더군다나 당뇨등 지병이 있고 73세의 고령인 유병언이 가파른 산속을 잘 걷지도 못했을 텐데도 8000명의 수색조가 늘고 병약한 노인네 한명을 그 근처에 놔두고 전혀 잡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유병언을 보면 상당히 영악하고 영리한 사람 같은데 그렇게 영리한 사람이 자신의 소재가 발각난 송치재 별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매실밭에서 그것도 남들이 볼 수 있는 바깥에서 한가로인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는 부분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의 소재가 들어난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게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도 유병언 추정 사체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별장에서 불과 2.5km 이내의 거리에서 배회하고 있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다. 그것도 전혀 먹지도 못하는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


이 부분도 유병언의 타살설의 주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유병언이 멀리 달아나는 것이 상식인데, 사실 유병언이 멀리 달아났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돈가방을 빼앗기고 살해되어서 그 곳 송치재 부근의 매실밭으로 옮겨다 놓아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리고 그 타살범은 유병언이 마치 외부에서 잘 못먹는 소주와 막걸리를 짬뽕해서 먹다가 그만 쇼크사한 것으로 가장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씨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양씨를 체포해야만 유씨의 마지막 행적은 물론 가방과 거액 현금뭉치의 존재에 대한 설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양씨와 김씨가 하루속히 자수해서 (유씨 마지막 행방과 관련한) 사실을 진술해주길 기대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금수원 내에서 유씨 도피를 총괄 지휘하던 '김엄마' 김명숙(59·여)씨도 의문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핵심인물로 꼽힌다. 

순천 도피조를 지휘하던 김씨가 압수수색 전 금수원을 빠져나간 뒤로 유씨에게 합류하거나 유씨와 가까운 거리에서 도피를 도왔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유병언의 메모, 유서?

경찰에서 유병언의 메모를 공개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경찰에서 공개한 이 메모는 지난 5월 말 유 씨가 순천 별장을 빠져나갈 당시 검찰에 붙잡힌 유병언의 개인비서 신모(34·여)씨가 보관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메모에는 A4 용지 총 31쪽 분량으로 되어 있으며, 도망자가 된 유 전 회장의 심경을 적은 글로서 자신을 마녀사냥식으로 몰고가는 정부와 경찰에 대한 원망과 언론에 대한 강한 불만 등이 젹혀있다고 한다. 또한 해당 문서에는 자신을 붙잡지 못하고 허탕만 치고 있는 경찰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유병언의 자필문서는 독특하게도 거울을 보고 읽어야 해석이 가능하도록 모두 거꾸로 쓰여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해당 매모에서 유병언 전 회장은 "연일 터져대는 방송들은 마녀사냥의 도를 넘어 구시대 인민재판의 영상매체로 진화되어 떠들어대는 민족 전체와 동포들 머문 세상의 큰 이간질을 해대는 악의적인 소리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라며 언론에 대한 극심한 불만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유 전 회장은 자신의 도피 생활과 관련해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정말 마음에 없는 잡기 놀이에 내가 나를 숨기는 비겁자같이 되었네"라며 도망자가 된 자신의 한스러움과 허탕만 치는 경찰의 무능을 질타했다.


공개된 유 전 회장의 자필 문서는 "내 노년의 비상하는 각오와 회복되는 건강을 경축하며…"라는 문구로 끝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같은 유병언의 자필메모를 보면 유병언의 도피생활 중의 심경을 읽을 수가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보더라도 유병언이 자살했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특히 맨 마지막 문장인 ‘내 노년의 비상하는 각오’ ‘회복되는 건강을 경축하며’이란 문장을 보면 유병언은 도피 중에도 상당히 사기가 높아 있었고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문장에서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같은 내용의 메모를 쓰지 않는다. 맨 마지막에 있는 매모가 가장 최근에 씌여진 유병언의 메모인 것이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가녀리고 가냘픈 大(대)가 太(태)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야. 과잉 충성스런 보필 방식일 거야” “아무리 생각을 좋게 가지려 해도 뭔가 미심쩍은 크고 작은 의문들이 긴 꼬리 작은 꼬리에 여운이…”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신도들은 유병언 전 회장이 대통령을 ‘大(대)’라고 자주 이야기했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을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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