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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공포의 강타자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의 경기

 

 

 

 

조지 포먼 총전적 81전 76승 68KO 5패

 

 

역대 세계헤비급 복싱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시기는 단연 1970년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70년대 헤비급에서는 가장 테크닉이 뛰어나고 강력한 펀치를 가진 헤비급 강자들이 가장 많이 포진했던 시기인 만큼 헤비급 사상 가장 뛰어난 명경기들이 많이 치러졌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인 지금의 헤비급복서들보다 한 차원 위라고 평가되는 훌륭한 선수들이 그많큼 많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가장 빠르고 테크닉이 뛰어났던 무하마드 알리, 인파이팅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하게 대쉬해들어가는 조 프레이저, 왠만한 선수는 펀치 한방으로 쓰러뜨리는 조지 포먼 등 역대 헤비급복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되는 선수들이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70년대의 헤비급 무대였다.

 

 

 

그런 만큼 선수들 간의 치열하고 볼만한 명경기들이 많이 속출했던 시기였고 흥행면에서도 가장 성공을 거두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명경기 중에서도 경악과 충격을 가져왔던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의 명경기를 다루어 보겠다.

조지 포먼! 이름만 들어도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던 70년대 최고의 강타자라는 애칭이 따라다니던 공포의 강펀치를 보유한 선수이다.

조지 포먼의 강펀치는 70년대에 무하마드 알리를 제외하고는 당해낼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조지 포먼의 닉네임은 햄머펀처인데 조지 포먼의 펀치 한방에 정확하게 걸리면 그것으로 게임이 끝나던 그런 선수이다.

 

조지 포먼이 최고의 테크니션 무하마드 알리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15차 방어 이상 롱런할 수도 있었던 강타자였는데 조지 포먼이 무하마드 알리와 헤비급 타이틀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운명 때문에 롱런을 하지 못하고 타이틀을 잃고 말았으니 조지 포먼은 무하마드 알리와 동시대에 태어난 걸 한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야 말았다. 조지 포먼 대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 예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포인트가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의 세계헤비급 타이틀전이다.

 

 

조 프레이저는 70년 지미 엘리스를 5회 KO로 누르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고 그 후 무하마드 알리를 포함해서 3차 방어전을 알리전만 빼고 모두 KO승을 장식하며 탄탄한 롱런가도를 달리고 있던 배태랑이었다.

조 프레이저는 인파이팅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선수로 그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선수들은 그의 소나기 펀치세례에 거의 KO되거나 그로기상태에 빠지게 된다.

 

조 프레이저는 상대가 누구이든 상대가 숨쉴 틈 없이 상대방의 가슴팍에 파고들어가 사정없이 갈겨대는 펀치세례로 테크닉이 좋고 아무리 빠른 선수들도 조 프레이저의 인파이팅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대부분 KO패당하기 일쑤였다.

조 프레이저는 이러한 탱크같은 인파인팅 기술로 인해서 29승 26KO 무패라고 하는 뛰어난 전적을 만들며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무하마드 알리마저 다운시키면서 승리를 일궈내 조 프레이저의 롱런이 점쳐지던 시대가 열렸었다.

최고의 테크니션 무하마드 알리를 완벽하게 뉘이고 3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완벽하게 승리해낸 조 프레이저에게는 더 이상 그에게 위협이 될만한 선수가 없을 거라고 예상이 되었는데 느닷없이 올림픽 금메달 출신인 조지 포먼이 나타나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지 포먼은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프로에 데뷔해 승승장구하면서 떠오르는 유망주로 자신의 이름을 서서히 알려나가던 신예유망주였는데 조 프레이저와 경기 전까지의 전적이 37전 37승 34KO의 전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펀치력이 막강한 선수로 KO율이 90%에 육박한 강력한 펀치력의 소유자였다.

조지 포먼은 처크 웨프너를 3회에 잡고 맷집이 최강이라는 캐나다의 조지 추발로를 역시 3회에 KO시키고 유망주인 분 커크만(22승 1패)도 2회에 KO시키는 등 거침없는 KO행진을 이어나가던 강타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사람의 경기를 예상했던 도박사들은 조 프레이저의 승리를 점쳤는데 그 이유는 조지 포먼은 펀치력은 막강하지만 수비가 불안하고 테크닉면에서는 조 프레이저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 프레이저는 1971년도에 가장 뛰어난 복서로 평가받던 무하마드 알리를 14회에 다운까지 시키면서 완벽한 판정승을 일궈내어 테크닉과 펀치력을 겸비한 완벽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었던 터라 조 프레이저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조 프레이저의 승리가 점쳐지던 경기였다.

 

그런데 1973년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벌어진 조 프레이저와 조지 포먼의 경기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최대의 이변이 일어나고 만다.

챔피언 조 프레이저가 펀치 한방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고 무려 6번 다운당한 끝에 2회에 비참하게 KO패당하고 말았다. 70년대 최대의 명경기이자 최고의 이변이 일어났다.

 

그럼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의 타이틀전 경기를 감상해 보도록 하죠. 그리고 난후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죠.

 

 

 

병역기피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3년간 링 밖에서 절치부심하던 무하마드 알리가 다시 링에 컴백해서 당시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했었는데 조 프레이저는 그의 전매특허인 강력한 레프트훅 한방으로 거물급 무하마드 알리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당시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를 무너뜨린 조 프레이저는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링위에 올랐었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조지 포먼의 쇠망치 같은 펀치를 맞고 1회에 3번, 2회에 또 3번, 도합 6번의 다운을 당하고 KO패당하고 말았다.

조 프레이저의 패배의 원인은 조 프레이저의 전매특허였던 인파이팅을 이용한 밀착공격이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원인은 조지 포먼의 햄머와도 같은 강펀치를 들 수 있다.

헤비급 복서치고는 키와 리치가 짧은 조 프레이저는 거리를 두지 않고 상대의 가슴팍까지 파고들어가는 밀착공격을 해야 자신의 좌우콤비블로우를 터뜨릴 수 있다. 그리고 결정타인 레프트훅으로 상대를 KO시키는 선수이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한결같이 조 프레이저의 밀착공격에 말려들어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데 조지 포먼은 달랐다.

조지 포먼은 조 프레이저의 밀착공격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지 포먼은 고개를 숙이고 대쉬해 들어오는 조 프레이저를 두손으로 밀어제쳐서 거리를 벌려 놓았고 자신의 주특기인 강력한 라이트어퍼컷을 조 프레이저의 턱에 작렬시키면서 조 프레이저에게 큰 데미지를 줬던 것이다.

조지 포먼의 어퍼컷 한방은 그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후에 출현한 마이크 타이슨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하고 무시무시하다.

 

 

어느정도 맷집도 좋았던 조 프레이저는 자신의 밀착공격이 막혀버리자 조지 포먼을 향한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가리기만 하고 조지 포먼의 강력한 라이트 어퍼컷에 걸릴 때마다 다운을 당하며 결국 초반에 KO패당하고 만다.

 

다른 선수들한테는 다 통했던 조 프레이저의 인파이팅 기술(밀착공격)이 유일하게 조지 포먼한테만 먹혀들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조 프레이저의 강력한 레프트훅도 전혀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알리에게도 다운을 빼앗았던 그의 뛰어난 인파이팅 기술은 힘과 펀치력이 막강했던 조지 포먼의 벽을 넘지 못하고 6번 다운이라는 망신만 당하고 비참하게 KO패당하고 헤비급 타이틀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만큼 조지 포먼의 펀치력은 당시 당해낼 선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조 프레이저와의 70년대 최고의 명경기를 만들어내었다.

이렇게 강력한 챔피언 조 프레이저를 무너뜨린 조지 포먼은 당대의 최고 강타자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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