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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플의  ♬ Hush ♬

 

67년

 

1기 멤버 - 보컬: 로드 에반스, 기타: 리치 블랙모어, 키보드: 존 로드, 베이스: 니키 심퍼(1969년 탈퇴), 드럼: 이언 페이스

 

 

딥퍼플(Deep Purple)은 1967년에 ‘Hush’로 데뷔한 영국의 록 밴드로 하드 록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그룹이다.

딥퍼플은 첫 앨범 [Shades of Deep Purple]가 미국 앨범차트 톱 5위에 오르면서 유망한 그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그 앨범 수록곡 ‘Hush'가 크게 히트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린다.

딥퍼플의 음악은 전자기타를 사용한 무거우면서 강렬하고 테크니컬한 사운드를 구사하면서 60년대 후반 ‘하드록’이라는 새로운 락의 장르를 개척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록큰롤의 달콤한 연주에서 거칠고 강렬한 하드록으로 변신을 시도하여 딥퍼플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 ‘하드록’이 탄생한 것이다. 소리치는 듯한 무절제한 목소리, 허스키한 보컬은 테크니컬한 기타연주와 만나 새로운 음악기법, 무절제속의 절제,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락이라는 색다른 연주 기법이 탄생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드록’이다.

딥 퍼플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메탈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딥 퍼플은 지금까지 1억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딥퍼플은 72년 "Smoke On The Water"을 발표하여 크게 히트하면서 그룹의 명성과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Hush 가사

 

I got a certan little girl she's on my mind

No doubt about it she looks so fine

She's the best girl that I ever had

Sometimes she's gonna make me feel so bad

Hush, hush

Thought I heard her calling my name now

Hush, hush

She took my heart but I love her just the same now

Hush, hush

Thought I heard her calling my name now

Hush, hush

I need your love and I'm not to blame now

 

Love, love

They got it early in the morning

Love, love

They got it late in the evening

Love, love

Well, I want that needing

Love, love

Oh, I gotta get ahead of it

 

She's got a love like quicksand

Only took one touch of her hand

Blow my mind and I'm in so deep

That I can't eat and I can't sleep

 

Listen

Hush, hush

Thought I heard her calling my name now

Hush, hush

She took my heart but I love her just the same now

Hush, hush

Thought I heard her calling my name now

Hush, hush

I need your love and I'm not to blame now

 

Love, love

They got it early in the morning

Love, love

They got it late in the evening

Love, love

Well, I want that needing

Love, love

Oh, I gotta get ahead of it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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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뉴세븐 원더스재단이 선정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은 로마의 콜롯세움, 요르단의 페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페루의 마추픽추, 중국의 만리장성, 맥시코의 치첸이트사,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이다.

 

 1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경기장이다. 이곳은 혅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콜로세움은 네로황제의 황금궁전에 있던 인공호수를 메우고 그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1세기경에 착공하여 8년간 공사 끝에 완공되었는데 높이 48m 폭이 55m 둘레가 500m인 당시엔 최대규모의 건축물이었고 수학적인 공식을 적용하여 과학적으로 설계해서 만든 건축물로 당시의 낙후된 기술력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이곳에서 최고의 검투사들과 여러 식민지에서 끌려온 포로들과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고 인간들과 맹수들과의 곁투도 벌어졌던 곳으로 로마귀족들은 각종 결투를 관람하며 즐기던 곳으로 로마 귀족사회 문화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곳이다.

 

 

 

 

 

2 요르단의 암벽 도시, 페트라

 

 

 

유목민인 나바태아인들이 지은 암벽 도시인 페트라는 건축물을 쌓아서 만든 도시가 아니라 암벽을 졍교하게 깎고 조각해서 만든 조각 건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곳은 당시 인구 3만이 거주하는 대도시였고 깎아지른 암벽 위에 주거시설을 비롯하여 목욕탕과 시장, 무덤과 상수도 시설까지 갖추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고 이러한 다양한 시설들을 모두 깎아지른 절벽 위에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절벽을 따라서 먼저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하나하나 조각하고 다듬어서 건축물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니 역시 미스터리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이 곳에 거주하던 나바테아인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이 곳을 지나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아서 부를 축적하여 한 때 인구 3만의 번창한 도시로 성장하였다.페트라는 1812년에 발견되었지만 아직도 도시의 80%는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고 한다.

페트라는 둥그런 암벽으로 둘러 쌓여 있고 이 도시로 들어가는 통로는 절벽 사이의 아주 가느다란 통로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만들기도 어려운 절벽 도시를 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깎아지른 암벽 표면에 거주지를 지으면 이곳을 침입한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기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철옹성 같은 페트라도 결국 106년 로마 트리야누스 황제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그 후에 이 곳 사람들은 페트라를 떠나고 도시는 모래속에 파묻히고 만다.

이 도시가 어떠한 공법으로 만들어졌는지 과학자들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신비로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3 인도의 궁전 무덤, 타지마할

 

 

 

타지마할(Taj-Mahal)은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그라 교외에 있는 궁전 형식의 묘로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궁전이다. '빛의 궁전'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하여 세운 무덤이다. 국가 재정이 기울어질 정도로 거액을 들여서 22년 만에 완성한 사랑하는 왕비를 위한 무덤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이 사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하니 황제의 아내를 향한 뜨거운 사랑에 탄복을 자아내게 한다. 이 거대한 궁전 무덤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온 나라의 보물과 자금, 미술품, 공예품을 한데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길 중앙에 있는 일직선의 연못이 양옆의 나무를 비추어 초록빛을 띠며 우유 빛깔의 대리석으로 된 돔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리석을 그물 모양으로 조각한 이중 장치를 통하여 햇빛이 돔 내부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곳에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묘관을 안치해 두었다. 묘관은 나란히 남북으로 안치되어 있고, 얼굴을 서쪽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하여 전통적인 이슬람 묘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1층의 무덤은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 무덤은 지하층의 똑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페루의 마추픽추(마츄피츄)

 

 

 

안데스 산맥의 2,400m 고산지대에 있는 잉카 제국의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있다.

마추픽추는 1만 명이나 되는 잉카인들이 살던 요새중의 요새로 외부의 적들의 침공에 대비해 방어에 유리한 안데스 고산지대에 요새 도시를 지었다.

잉카인들의 돌을 다루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20톤이나 되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어 수십 킬로나 떨어진 산 위로 운반해와 신전과 집들을 지었는데 정교하게 돌로 쌓아올린 건축물들은 경이롭기 그지없고 가장 큰 돌은 무게가 361톤에 달한다고 한다. 마추픽추에는 평야가 적었지만, 잉카인들은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으며 그 고대의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 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역사 속 문명과 패망,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 주는 잉카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이다.

 

 

 

 

 

 

중국의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기원전 3C 경 진시황제가 북방의 흉노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를 시작하였고 여러 시대를 거쳐 중축, 개축되었다가 명나라 때 몽골족의 침략을 대비하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만리장성 축조의 시작으로부터 완성까지는 거의 2,000년이나 걸린 세계 최대 기간의 공사와 세계 최대 길이를 자랑하는 성곽이다.

, 만리장성은 중국이 북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그 길이가 무려 6,400km나 되는 세계 최대의 토목공사로 손꼽히고 있다.

성곽 축조를 시작한 진시황제 때에는 10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동원해 가면서 무리하게 공사를 추진하다가 혹사당해 죽은 사람만도 수 십만 명이 넘는다고 하며 공사 착출을 피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집단 이주하거나 집단 망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진나라의 분열과 패망을 가져왔던 역사의 대사건이었다.

진시황제의 가혹한 토목공사에 시달리던 진나라 백성들이 한반도의 남쪽 지역으로 많이 이주해왔는데 한반도의 남쪽을 다스리던 마한의 왕이 경상도 땅을 진나라 망명 집단에게 내주어 살게함으로써 진한의 성립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만리장성의 전략적 가치는 시대별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는데 중국의 수나라나 당나라, 청나라 때처럼 다민족 융합정책을 추구하던 시대에는 만리장성의 국경선은 그 의미가 없었고 그 당시의 국경선은 만리장성보다 더 넓었기 때문이며 진나라나 명나라 시대에는 한족중심의 정책을 추진하였던 시기로 폐쇄성이 강하여 만리장성의 전략적 가치가 중시되어 장성의 개축과 보수와 중축에 힘을 기울였던 시기이다. 현재의 만리장성의 모습은 명나라 때 거의 완성되었다.

 

 

 

 

 

 

6. 멕시코 치첸이트사

 

 

 

치첸이트사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유적지이다.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1000개가 넘는 기둥으로이루어졌고 신전 높이는 24m, 이 도시를 건설한 마야인들은 그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한 뒤 부족 전체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 마야인들이 남긴 최대의 유적지라서 더욱 미스테리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는 부족 사람을 신께 바치는 공양 희생물로 삼은 흔적이 발견되어 많은 놀라움과 충격을 주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치첸이트에 마야인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5세기경인데 그 후 7세기 말경 한 때 번성하였던 이 곳 마야인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려 후대 학자들로부터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을 불러일으켜 논란이 되었던 곳이다.

신전 기둥에는 마야인들의 신인 ‘차크몰’ 상이 있는데 이 ‘차크몰’동상의 중앙에 쟁반이 있는데 이 쟁반 위에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바쳤다고 하여 후세인들을 경악케 하였던 곳이다.

 

치첸이트사의 건물들은 수학과 천문학 지식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마야인들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것들로 꼽힌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깃털 달린 뱀’을 뜻하는 쿠쿨칸의 피라미드다. 유적지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다 위풍당당한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마야인들의 수학과 천문학 지식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9세기 초에 건설된 피라미드 네 면의 계단 숫자를 모두 합치면 364, 맨 위의 제단까지 합치면 태양력의 1년인 365가 된다. 네 면의 52개의 판벽은 마야-톨테크 역법에서 세상의 1주기를 나타내는 숫자다.

 

 

 

 

 

7.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시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 코르코바두 언덕 정상에 자리한 38m 높이의 거대 예수석상. 브라질인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가 설계하고 폴란드계 프랑스 건축가 폴 란도프스키 가 1931년 10월 12일 세웠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뒤 브라질로 옮겨져 조립됐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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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추하의   2도채홍

 

 진추하 작곡  78년

 

 

 

진추하는 70년대 중반 아시아의 지축을 뒤흔든 홍콩의 톱스타였다.

18세의 나이에 ‘Dark Side Of Your Mind’ 홍콩 창작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홍콩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녀는 20세에 첫 출연한 영화사랑의 스잔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아시아의 톱스타로 각광받았다. 또한 영화사랑의 스잔나의 주제가‘One Summer Night’을 직접 작곡함과 동시에 직접 불러 한국을 비롯 동남아에 수많은 매니아 팬층을 형성하며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녀이다.

 

80~90년대 인기를 끓었던 왕조현, 임청하 그 이상의 톱스타였다고 기억한다.

진추하가 사랑의 스잔나에 이어 두 번째로 출현한 영화가 바로추하 내사랑인데 이 영화도 국내에서 78년도에 개봉되어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고 한,홍 합작으로 만들어졌던 영화라 진추하가 영화 찰영차 국내에 왔을 때 수많은 고교생 팬들이 모여들어 촬영장마다 인산인해를 이뤄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하니 70년대에 진추하의 높은 인기가 실감이 난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이 공연차 외국에 나가면 공항에서부터 몰려드는 수많은 외국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상황이 이미 35년 전에 홍콩의 진추하 때부터 시작된 셈인데 진추하가 팬덤 문화의 원조인 셈이다. 

 

진추하의 두번째 영화 '추하 내사랑'의 주제가인 '제2도채홍(두번째 피어 오르는 무지개) 역시 진추하가 직접 작곡한 곡인데 진추하의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가슴에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곡이다. 이 곡은 무척 슬픈 곡조의 노래로 마치 실연의 상처를 가슴에 담은 여인의 회한 같은 느낌이 들어 들으면 들을수록 슬픈 분위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One Summer Night’처럼 화려하고 경쾌한 느낌은 없지만 고요하면서도 구슬픈 곡조가 우리의 발라드곡을 연상시키듯 낯설지가 않고 무언가 심연속에 가라 않은 우리 가슴속에 깊이 맻힌 회한에 진한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감동을 준다.

 'One Summer Night'의 빛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이다.

슬픈 선율 속에서 피어나는 진한 감성적 아름다움이 진추하의 청량한 보컬과 하모니가 잘 맞는 곡이다.

우리 감성을 울리는 진추하의 가녀린 선율의 노래, 제2도채홍을 오랫만에 다시 감상해보자. 

 

 

 

 

2도채홍’노래 동영상

 

 

 

 

 

 

 

 

 

 

 

 

 

 

진추하가 78년에 홍콩에서 발표한 제5집 '제2도채홍' 앨범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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