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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글래머 여배우 김진아 사망, 사망원인, 출연영화, 아버지 김진규




김진규의 딸로 그리고 글래머 섹시스타로 8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김진아씨가 사망했다고 한다. 여배우 김진아는 지병인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8월 20일 하와이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이제 김진아 나이 51세의 한창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21세기 들어서 젊은 연예인들이 잇따라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

김진아의 아버지는 50~60년대의 최고의 명배우 김진규의 딸이며 그녀의 어머니 또한 당대 미인여배우였던 김보애로서 김진아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김진규와 김보애의 만남과 결혼 자체도 당시에는 큰 화제거리가 되었을 만큼 유명연예인들이었다.


김진아는 올해 초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고 하며 한국에서 영화출연 제의를 고사하고 요양차 미국 하와이로 건너갔으며 결국 암으로 인한 합병증이 발병해서 갑작스럽게 임종을 맞이했다. 현재로써는 김진아의 정확한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만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김진아의 친동생인 배우 김진근측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6월말 김진근 정애연 부부가 누나 김진아가 몸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에 검토 중인 차기작도 고사하고 하와이로 건너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 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김진아는 병원으로부터 금년 말까지라는 시한부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암으로 인한 합병증이 더욱 악화되어 갑작스럽게 위독한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악화된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향년 5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과 하직하고 말았다. 특히 정애연의 트위터에는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이 게재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김진아는 아버지 김진규와 어머니 김보애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갔다.

김진아는 명배우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그녀는 영화베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진아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원래 교수가 되어 평범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것을 바랐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 김진규씨도 자신의 딸이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김진아의 운명을 바꾼 것이 바로 영화 시사회장이었다고 하는데 김진아가 미국 유학 도중 우연히 한국에 들러 영화시시회장에 가게 되었는데 그녀의 서구적인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을 보고 시사회장의 많은 감독들이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영화 시사회장에 다녀온 이후부터 여러 감독들로부터 그녀는 계속해서 캐스팅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당시 현모양처로서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랬던 김진아는 캐스팅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번 정해진 사람의 운명을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가 없는 것 같다. 평범한 삶을 바랐던 김진아의 생각과는 다르게 운명처럼 영화배우로 자신도 모르게 끌려들어가고 만 것이다.


결국 김진아는 어머니 김보애의 당부로 꼭 한편만 영화촬영에 응하기로 하고 전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그당시 김진아 어머니 김보애씨는 미국으로 출국하려는 딸의 여권을 빼앗았다고 한다.


김진아와 남편 케빈 오제이


김진아가 처음 출연했던 영화인 ‘다른 시간 다른 장소’로 1983년 개봉된 영화인데. 당시 이영화에 출연한 김진아의 세련되고 서구적인 미모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그녀는 한국 영화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영화 출연을 계기로 김진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화베우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1984년 어머니 김보애싸와 함께 출연한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에 출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새로운 스타로 부각되었다.



당시 김진아가 받았던 개런티가 무려 2500만원이라 하는데 80년대 중반에 2500만원이라고 하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데뷔 초기부터 톱스타의 개런티를 받았던 것이다.


​그후 김진아는 80년대에만 12편이 넘는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80년대의 대표적인 글래머 미녀여배우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렇게 인기 여배우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던 그녀는 87년 영화 ‘연산일기’ 끝으로 바로 영화계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다.

미국에서 자신이 원했던 공부를 계속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녀는 90년대 이후 가끔 한국나들이를 하면서 간간이 영화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 미국인 남편 케빈 오제이와 만나 결혼했으며 매튜라는 아들도 입양하며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현모양처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김진아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영화는 2010년도에 개봉되었던 영화 ‘하녀’다. 영화 ‘하녀’는 원래 아버지이자 명배우였던 김진규씨가 출연했던 60년대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 김진아는 산부인과 의사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바 있다.


김진아 어머니 김보애와 아버지 김진규


사실 김진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아버지 김진규의 예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김진아의 아버지 김진규는 사실 딸 김진아보다 더욱 유명한 60년대 최고의 명배우였다. 김진아 아버지 김진규는 우리나라 영화 초창기 개척시절에 한국의 영화에 다수 출연하면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한국영화 발전에 선봉장 역할을 했던 당대의 명배우였다.


1950~1960년대 김진규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유난히도 걸작품들이 많이 있다. 50~60년대의 한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서 김진규를 꼽는다고 해도 크게 과연이 아니라고 본다.


가장 한국적인 신사배우였던 김진규


완벽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온화하면서도 선이 굵은 이미지에 자상한 남편이자 멋쟁이 신사 스타일의 김진규는 50~60년대 당시 한국영화의 트랜드 그자체였다. 마치 미국의 허리우드 미남배우 그레고리 펙을 연상시키는 듯한 중후하고 품격이 넘치는 비주얼을 지니고 있어, 기사도 넘치는 멋쟁이 신사역활을 많이 했던 김진규는 가장 한국적인 신사의 이미지를 창조해내었던 명배우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당시 김진규의 멋진 신사스타일이 유행의 한 장르였으며 올백으로 감아올린 김진규 머리 스타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60년대 기사, 신사 비주얼이라고 하는 멋진 트랜드의 주인공 김진규는 당시 인기가 상당히 높았으며 60년대 한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

겼다.


‘오발탄’ ‘하녀’ ‘성웅 이순신’ ‘사명대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김진규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한결같이 당대의 뛰어난 걸작품들이다. 특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오발탄’ ‘하녀’ 등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한국영화의 최고의 걸작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기록이 남을 만큼 작품성이 아주 뛰어난 당대의 역작

이다.


50년대 화장품 모델 1호였던 김보애


‘사랑과 손님과 어머니’ ‘오발탄’ ‘하녀’ 등의 영화들은 지금 만들어지는 어떤 영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으로 영화를 직접 감상해보면 그 우수성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진규가 연기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진규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적당한 선에서 연기하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연기와 중후하고 안정된 연기력은 영화의 완성도를 훨씬 배가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빛이 난다.


당대의 톱스타 출신인 김진규와 김보애가 1959년 결혼하여 김진아, 김진근을 비롯한 네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김진규와 김보애는 1973년 이혼함으로써 14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어 팬들을 안타깝게도 하였다. 그런데 김진규와 김보애는 1997년 다시 재결합해 부부의 연을 다시 이어가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김진규는 1998년도에 사망함으로써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다.

김진아 어머니 김보애는 1956년 태평양화학의 모델이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모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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