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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대 소니 리스튼의 명경기 1차전

(헤비급 세계타이틀전 64년)

 

[페이지 중간에 경기 동영상 있어요]

 

 

20세기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무하마드 알리 대 60년대 헤비급 최고의 강타자 소니 리스튼의 경기는 64년 미국에서 열렸는데 이경기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복싱영웅 무하마드 알리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64년 당시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소니 리스튼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원자탄주먹을 가진 불세출의 강타자로 역대 헤비급 최강주먹인 조지 포먼과 마이크 타이슨과 더블어 3대 헤비급 KO펀처 중 한사람으로 그의 주먹은 무시무시하게 강했고 레프트잽만으로도 상대를 KO시킬 만큼 전율의 강타자였다. 소니 리스튼의 총 전적 54전 50승 4패 39KO으로 그의 판정승의 대부분은 데뷔 초기의 신인 때의 기록이며 그가 1960년 이후부터의 경기는 26승 25KO승을 거둬 막강한 강펀치를 휘두르며 90%의 KO율을 유지하였다.

 

소니 리스튼은 아칸소주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뒷골목 건달출신에다가 강절도,폭행 등으로 교도소를 21번이나 들락거린 죄수출신의 복서로 그에게 복싱은 상류사회와 부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기회였고 리스튼은 그의 타고난 체력과 강펀치를 무기로 헤비급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포스트쳄피언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 소니 리스튼은 헤비급 A급복서인 클리블랜드 윌리엄스(43승 2패)를 비롯해 론 해리스, 조라 폴리, 하워드 킹 등을 모두 KO로 누이고 당시 챔피언이었던 흑인 미남복서 플로이드 페터슨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60년대 초반 당시 알리 이전 시대에 뛰어난 테크닉으로 무하마드 알리 만큼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플로이드 페터슨을 소니 리스튼은 단 1회에 군말없이 KO시키고 역대 최강의 챔피언으로 군림하게 되고 그 이듬해 소니 리스튼은 플로이드 페터슨과의 리턴매치에서도 페터슨을 1회에 일방적으로 두들겨패고 실신 KO시키며 챔피언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킨다.

당대의 최고의 인기복서이자 뛰어난 테크니션이었던 플로이드 패터슨이 소니 리스튼에게 어처구니없이 1회에 KO당하자 복싱전문가들은 패터슨이 실수로 KO당했다며 재대결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재대결에서 또한번 소니 리스튼이 1회에 패터슨을 실신 KO시키자 더 이상 군말없이 소니 리스튼을 역대 최강의 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대의 테크니션을 두 번이나 1회 KO시킨 소니 리스튼은 90년대의 타이슨처럼 상대방을 펀치 한방으로 꼬꾸라뜨리는 전율의 강타자로서 당분간 그에게 맞설 상대는 없어 보였으며 롱런이 지속될 것으로 모두가 예상하였는데 갑자기 예상도 못했던 복병이 그에게 나타났다. 전율의 강타자 소니 리스튼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상대가 바로 캐시어스 클레이(나중에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였다.

 

무하마드 알리는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프로복싱으로 전향해서 당시 19연승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펀치력에서 한 수 위인 소니 리스튼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복싱계의 전반적인 평가였고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스튼에게 몇 회에 KO당하느냐가 관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당시 도박사들이 9대1로 소니 리스튼에게 일방적인 승리를 걸었을 정도로 무하마드 알리는 신출내기의 무명복서에 지나지 않았는데 1964년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비치 컨벤션 홀에서 열린 소니 리스튼과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스튼을 7회 TKO승으로 제압하는 20세기 헤비급 복싱사상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다.

20세기 최고의 명경기였던 64년 무하마드 알리 대 소니 리스튼의 경기는 20세기 최고의 헤비급 챔피언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원자탄 펀쳐인 소니 리스튼은 단지 무하마드 알리라는 복싱영웅의 탄생을 위한 제물이자 희생양으로서의 조연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64년 무하마드 알리와 소니 리스튼의 당시의 경기(1차전)를 한번 관람해보자.

 

 

 

아무도 예상 못했고 전혀 불가능해보였던 무하마드 알리의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20C 3대 최강의 강펀치 소유자중 한사람이었던 소니 리스튼을 두 번이나 KO시키고 위대한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무하마드 알리의 승리 비결을 무엇이었을까?

당시 경기 비디오를 분석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는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테크닉을 갖춘 기본기가 뛰어난 테크니션 스타일의 선수로 그는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자질과 실력은 갖추고 있었지만 상대가 당대의 최강의 강펀치와 실력을 갖춘 챔피언중의 챔피언인 소니 리스튼에게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펀치력에서는 무하마드 알리가 휠씬 열세였기 때문이고 스피드와 기본기는 뛰어나지만 아쉽게도 무하마드 알리에게는 한방의 강펀치가 없기 때문으로 상대는 잽 한방만 제대로 맞추면 KO시키는 소니 리스튼이 아닌가.

 

 

1회전에 독이 잔뜩 오른 소니 리스튼이 무하마드 알리를 향해 연속적으로 강편치를 휘두르고 대쉬했지만 무하마드 알리는 타고난 빠른 푸드웍과 해드웍으로 리스튼의 강편치를 요리조리 모두 피해버린다. 무하마드 알리가 타고난 스피드와 운동신경이 없었다면 아마 리스튼의 강펀치에 1회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전성기의 무하마드 알리는 빨랐고 지능적이었다.

주로 초반에 KO시키는 소니 리스튼의 강펀치를 위빙과 더킹을 적절히 구사하고 빠른 발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피해나갔다.

이렇게 리스튼의 강펀치를 무하마드 알리는 무력화시키면서 3회와 4회에 링중앙에서 전광석화와도 같은 원투스트레이트를 신속하게 소니 리스튼의 머리에 꽂아놓고 연이어 쉴 틈 주지않고 좌우훅을 휘두르며 소니 리스튼을 그로키상태로 몰아넣는다.

 

 

무하마드 알리는 초반전에 링외곽을 돌면서 소니 리스튼의 잽과 강펀치를 피하는 전술로 나가면서 상대가 허점을 보이면 전광석화처럼 빠른 원투스트레이트를 쏫아붇고 5~6회 이상 연타를 퍼부어 상대에게 야금야금 데미지를 가중시켜 나간다. 어차피 한방 강펀치가 없는 무하마드 알리로서는 연타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소니 리스튼의 강펀치를 무력화시키는 히트 앤드 어웨이 전법이 바로 무하마드 알리의 승리의 비결이다. 그리고 알리의 최고의 장점인 빠른 푸드웍과 빠른 원투스트레이트를 최대한으로 살려 결국 소니 리스튼이라는 무시무시한 곰을 7회에 TKO로 제압하고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

 

5회까지 무던히도 강펀치를 내뻗으며 무하마드 알리를 쫒아가던 소니 리스튼은 발빠른 무하마드 알리를 잡는데 실패했고 알리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좌우스트레이트와 잽을 수십차례 허용하고 오른쪽눈이 퉁퉁 부어올라 상대와의 거리를 잡을 수 없게 되자 결국 전의를 상실하게 되고 7회전에 기권패하고 만다. 그리고 기권패한 또 다른 원인은 오른쪽 팔과 어깨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인데 경기 후 찍은 엑스레이검사 결과 소니 리스튼의 어깨에 금이 가 있었다.

 

 

이로써 20C 헤비급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자 복싱영웅 무하마드 알리의 시대가 열렸고 당대의 최강주먹 소니 리스튼은 그 희생양이 되고야 말았다. 그 이듬해인 65년 무하마드 알리와 소니 리스튼은 리턴매치를 치렀는데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스튼을 1회 KO시키고 챔피언의 입지를 굳혔다.

소니 리스튼은 알리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후 재기전을 치러 14연속 KO승을 거두고 녹슬지 않은 강펀치를 과시하며 다시 정상 탈환을 노렸는데 15연승후에 치른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불의의 9회 KO패를 당한 후 자신에게 부귀영화를 가져다준 링과의 영원한 이별을 고했고 그 후 1970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수사당국에서는 소니 리스튼의 죽음을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발표하였으나 그의 주변인물들은 리스튼의 마약복용을 부정하였다고 하며 소니 리스튼의 죽음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세월의 뒤안길로 묻혀버렸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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