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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가라데의 최배달의 실전대결과 무술, 검객료마와의 대결




20세기 무술인으로서는 최강 중의 한사람으로 평가받는 재일한국인 최배달(최영의)이 이룩한 성과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단히 큰 것이었다.

최배달의 이름과 명예를 드높인 것은 그가 전세계의 200명의 강자들과 대결을 벌여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신화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최배달이 다른 무도인들과 다른 점은 그는 체육관 무도인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실제로 대결을 벌여가면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는 점이다.





최배달은 일생동안 전세계를 누비며 최고의 고수들에게 도전하여 승전을 쌓아갔으며 자신이 개발한 극진가라데를 실전에 가장 부합한 무술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최배달의 행동은 보통의 무도인들이라면 엄두를 내지도 못할 일들이며 강자들과의 대결에서 한번이라도 패배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수없이 맞이하면서도 한번도 물러섬이 없이 기꺼이 강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 나갔으며 또한 모두 이겼다는 점이 그가 위대한 무도인, 진정한 실력자로서 존경받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최배달은 또한 황소 47마리와 맨손 대결을 펼쳐서 모두 제압한 것으로 유명하며 최배달과 황소의 대결장면은 일본 TV로 중계함으로써 확실한 증거를 남겼다.

최배달이 나중에 한 이야기로는 자기한테 하도 많은 무술인들이 도전을 해와서 일부러 황소들과 싸웠으며 이를 방송으로 내보내어 미래의 도전자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강하니 나한테 도전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황소들과 싸웠다고 밝힌 바 있다.



최배달의 무술이 한국의 태권도인지, 일본의 가라데인지, 아니면 중국의 무술인지를 놓고 한 때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과연 세계를 재패한 최배달의 실전무술의 국적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최배달의 무술은 그가 한국에서 있을 때 하인에게서 배운 택견과 도일한 후 배웠던 가라데, 그리고 중국무술과 유도 등 여러 무술의 결합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가 수많은 실전무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가지 무술의 힘만으로는 힘들며 여러 가지 무술들을 조합해서 상황과 상대에 맞게 유효적절한 공격을 구사함으로써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최배달의 실전대결


본명이 최영의인 최배달은 38년 16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가라데를 연마하였는데 그가 처음으로 일본에서 배웠던 가라데는 ‘송도관가라데’라고 알려졌으며 20세 때에는 가라데 4단에 오르게 된다.

그 후 타쿠쇼쿠대학교(拓殖大學)에 들어간 후 일본 가라데의 아버지라 불리는 ‘후나코시 기친’의 사설도장에서 2년간 가라데를 전수받고 그후 ‘유류(剛柔琉) 가라데’를 2년간 더 연마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성인이 된 최배달은 자신의 무술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기요즈미산에 입산해서 수도하게 되었다.

기요즈미산은 훗날 최배달이 극진가라데를 완성한 성지로서 추앙받는 장소가 된다. 기요즈미산에서 수년 동안 외로움과 싸워가며 뼈를 깎는 듯한 고된훈련을 통해서 극진가라대를 개발하고 47년에 하산한 최배달은 동경에서 최초의 전일본 공수도(가라데)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최배달은 전일본 공수도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자 난바를 KO시키지만 당시 경기규칙은 실제로 가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대상의 1cm 앞에 멈취야 한다는 규칙으로 인해 난바와 공동우승자가 되었다.



최배달은 일본 가라데대회의 형식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실전 가라대를 완성시키기 위해 일본 전국의 가라데 고수들과 실전대결을 펼치는 실전투어를 벌여나가게 된다.

최배달은 실전투어에 나서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무도의 본질은 싸워서 이기는 것 뿐, 실전이 아닌 시합은 춤이나 체조 에 불과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실전공수(實戰空手) 그것 뿐이다.’


최배달은 일본 전국을 돌면서 강자들과 싸워나갔는데 니조십걸, 관장 마쓰이, 사카하라, 모리 등 그 댱시 일본 가라데에서 명성이 높았던 최고의 고수들을 차례로 쓰러뜨렸고 이제 최배달에게는 더 이상 적수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렇게 최배달이 승승장구하던 무렵에 거꾸로 최배달에게 도전장을 내민 가라데 고수가 있었는데 바로 미와 노부오였다.


미와 노부오는 일본 무술계의 고수중의 고수로서 닌자집안 태생으로서 닌자무술의 달인이었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닌자 필살기가 있었는데 최영의는 미와 노부오와의 대결에서 일생일대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여태까지 상대해왔던 고수들과 달리 미와 노부오의 공격은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치명적인 공격이었고 미와 노부오와 일전일퇴를 벌여나가던 최배달은 큰 부상을 입게 되었는데 그의 한쪽 눈은 부상으로 거의 안보였고 한쪽 발도 부상을 당해 움직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최영의의 패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실전 싸움에서 한 쪽 발을 쓸 수가 없다면 패배는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최대의 위기를 맞게된 최배달은 최후의 수단으로 수중전을 별여서 위기를 넘긴다. 즉, 최배달은 미와 노부오를 껴안은 채 함께 나고야 축성밑 물구덩이로 투신하여 수중전을 별여서 겨우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최배달은 다리를 못쓸 정도의 큰 부상을 당하는 일생일대의 큰 위기에서 뜻밖의 기지를 발휘해서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그 후 최배달은 일본 무도계의 최고수이자 관동 가라데의 대부인 금색 호랑이 ‘가네토라’의 도전장을 받고 요코하마의 대잔교에서 대결을 벌인다.

최배달은 가네토라와 일전일퇴의 피말리는 대결을 벌여나가던 중 가네토라의 양발차기를 맞고 쓰러짐으로써 최배달은 처음으로 패배를 기록했다.



그러나 며칠 후 최배달에게 승리한 가네토라가 할복자살함으로써 최배달의 패배가 아니라 최배달이 가네토라의 처와 자식을 위해서 스스로 져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최배달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대결에서 최후의 공격할 기회에서 공격을 하지않고 스스로 공격을 당해서 져준 것이었다.

진정한 무도인이었던 가네토라는 자신이 진정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자살함으로써 치욕을 씻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 가라데계의 고수들을 거의 다 평정해나갈 무렵 검도의 고수 료마로부터 뜻밖의 도전을 받게 된다.

검도 7단의 료마와의 대결은 최배달에게는 가장 치열했던 대결이며 죽음의 문턱까지간 생사의 대결이었다.


검도 고수 료마의 진검은 쏜살같이 빠르고 정확하게 최영의에게 날아들었고 료마의 진검이 스치고 지나간 최영의의 어깨와 등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많은 일본의 고수들을 물리쳤던 최영의 목숨은 결국 여기에서 끝나고 말 것인가?



죽음의 기로에 선 최영의의 머릿속에 본능적으로 하나의 전략이 스치고 지나갔다.

검객과의 대결에선 주먹과 발보다도 눈, 바로 빠른 눈을 이용하는 것이다. 칼이 날아올 때 칼끝을 똑바로 보고 그 동선을 눈으로 따라잡으면 승산이 있다는 본능이 스치고 지나갔다.


료마의 최후의 검날이 최영의에게 날아오는 순간 최배달은 정확히 그 칼날을 두 손으로 합해서 잡았던 것이다.

최배달이 검날을 두손으로 잡음과 동시에 칼끝은 최배달의 어깨를 찍었는데 최배달은 오히려 자신의 어깨로 칼의 무게를 흡수하면서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눈앞에 들어온 료마의 복부를 향해서 최배달의 필살기인 기공이 실린 정권을 박아 넣었다.

자신의 칼날이 최배달에게 박힌 상태에서 순간 중심을 잃었던 료마의 명치에 최배달의 햄머같은 정권이 꽃힌 것이다.


최배달의 발경(發勁)이 실린 정권을 맞은 료마는 심장파열로 즉사했다. 최초로 최배달은 살인을 하게 되었고 료마의 죽음으로 최배달은 큰 충격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이시기 최배달은 큰 상실감에 빠져서 술집에 드나들게 되었으며 야쿠자들과 수시로 싸우는 등 점점 폐인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배달은 여태까지 그가 이룩한 무도인생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가나가와현(神奈川縣) 하코네산에 입산해서 수도하게 된다.

최배달의 두 번째 입산수도였다. 하코네산에서 최배달은 진정 무도가의 길은

살법(殺法)이 아닌, 활법(活法)으로써의 무도 경지를 터득하고 료마의 유족과 진정한 화헤를 한 후에 산에서 하산하게 된다.


하코네산에서 하산한 최배달에게 또다른 도전장이 기다라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사시노(武藏野) 대결전’이라고 불리우는 일본 무도연합에서 선발된 최정예가라데 고수 30명과의 대결이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가라데 고수들로 뭉친 30명과 무사시노별판에서 생사를 건 결투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무사시노(武藏野) 대결전과 그 후 해외에서의 대결은 페이지 지면상 다음 포스팅에서 게제하겠습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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