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최배달 대 역도산의 대결, 역도산 vs 기무라 대결

- 역도산 경기 동영상 페이지 하단에 있습니다 -



일본 가라데계의 최고실력자, 최배달


최배달은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한국인 출신 무도가로서 일본의 수많은 가라데고수들을 실전으로 꺾고 일본 최고의 파이터로 우뚝 솟은 인물이죠.

‘신의 손’ ‘불멸의 신화’ ‘제2의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많은 별명들은 그가 일본 무도계에서 이룩했던 뛰어난 업적을 잘 대변해주고 있으며 최배달이 47년 일본 공수도(가라데)대회를 우승한 후 일본 전국에 퍼져있던 수많은 고수들에게 도전해서 쓰러뜨렸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죠.



최배달의 격파시범


최배달은 일본의 형식주의 가라데에 반기를 들고 기라성같은 일본무도가들과 실전대결을 별여서 ‘실전가라데’를 실천했으며 또한 그들을 모두 제압해서 자신이 ‘최강의 무도가’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던 진정한 실전무도가였죠. 아마 최배달같은 무도가는 다시는 출현하기 힘들 것 같군요.


왜냐하면 고수들과 대결은 목숨을 걸고 겨루는 룰이 없는 경기로서 실제로 검객 료마 같은 사람은 최배달과의 싸움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장검을 들고 공격했던 검객 료마가 최배달의 정권에 복부를 맞아 심장파열로 목숨을 잃고 만 것이지요.


과연 누가 최배달처럼 생명을 걸고 수많은 가라데고수들과 대결을 펼치겠습니까?

최배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실전가라데’의 전설, 최배달이 더욱 더 위대한 것이지요.

그런 최배달이 1950년대 중반 경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거목 역도산과 한판 대결을 펼칠 뻔했던 사연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최영의(최배달)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최고 스타, 역도산


1950년대 일본 가라데 계에서는 최영의가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면 일본 프로레슬링 계에서는 역도산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었죠.

역도산 또한 최배달처럼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스모선수로 활약했으나 일본스모계의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우연한 계기로 프로레슬링을 접하게 되어 본격적인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데뷔해서 제1인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죠.


역도산


미국의 거구의 레슬러들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가라데촙으로 쓰러뜨리며 연전연승을 벌여나가는 역도산은 당시 일본의 영웅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2차 대전의 패배로 미국에 대해 심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패전 일본인들에게 거구의 미국선수들을 내다꽃으며 승리를 이어나가는 역도산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활력소가 되었으니 역도산은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으며 미국을 극복할 수 있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감으로 비추어지며 되었지요.


역도산은 50년대 당시 높은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 레슬링협회를 만들어서 50년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완전 장악해 나갔지요.

그런 역도산에게 태그팀 맴버가 필요한 시점이 되어 새로운 맴버를 영입하게 됩니다. 역도산이 미국 태그팀과 경기를 치루기 위해서 새로 영입한 태그파트너는 일본 유도계의 귀신이라고 불리우는 ‘기무리’였지요.


이 기무라라는 유도선수 출신 레슬링선수로 활약했는데 이 기무라로 인해서 후에 역도산과 최배달이 갈등을 빚게 되며 마침내 최배달이 역도산에게 도전하게 됩니다.


역도산과 최배달의 대립과 대결


최배달과 역도산은 처음에는 같은 조선인 출신으로서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역도산과 기무라의 경기’사건이 발생했으며 그 이후 두사람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적대관계로 변하게 되었지요.


‘역도산과 기무라의 경기’사건으로 인해서 두 사람은 서로 반감과 대결의 관계로 치닫게 

됩니다.

두 사람 다 당시 일본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성공했던 사람들이고 일본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있던 영웅들이었는데 지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역도산의 아집과 항상 최고를 꺾고 싶어했던 고지식한 최배달의 아집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 갈등과 대립의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둘 다 어려웠던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한국인들인 만큼 두사람의 대립이 너무도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먼저 최배달과 역도산의 첫 번째 대립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 일본 유도의 대가 기무라가 있습니다.

기무라는 당시 일본 유도를 석권했던 유도의 달인으로서 최배달과 무척 친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요.

최배달과 기무라는 한 때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함께 했으며 같은 훈련캠프를 차려놓고 함께 장기간 훈련했었을 정도로 호형호제하면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기무라에게 역도산이 같은 테그팀의 구성을 제안했던 것이고 이 제안으로 일본 유도계의 거장 기무라는 일본 프로레스링계에 데뷔하게 되었지요.



역도산과 기무라의 프로레슬링 경기



평소 친하게 지냈던 기무라와 최배달


기무라는 역도산과 함께 태그팀을 이뤄서 미국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자주 벌였는데 문제는 인기가 높았던 역도산에 비해 지명도가 좀 떨어지는 기무라는 태그매치에서 항상 역도산의 그늘에 가려 조연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것이죠.

일본유도계의 거장이었던 기무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기무라는 역도산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자신만의 프로레슬링 단체를 만들어 독립노선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후 기무라는 역도산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지요. 일본 프로레슬링챔피언 자리를 놓고 말이지요.


1954년 결국 일본의 두 영웅인 역도산과 기무라의 프로레슬링경기가 펼쳐지는데 여기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답니다.

경기결과는 역도산의 완승으로 끝났는데 기무라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며 역도산을 비난하며 칼을 갈게 되었답니다.

사실 비공식적인 이야기인데 두사람의 경기는 원래 각본으로 약속된 경기였다는 것이지요. 일본 프로레슬링의 흥행을 위해서 처음 경기는 역도산과 기무라가 무승부를 하게끔 되어있는 경기였으며 두 번째, 세 번째 재대결을 계속 이어나가게 사전 약속이 이뤄진 경기라는 것

이지요.


서로 사전 약속하에 무승부로 끌고가야할 경기에서 역도산이 약속을 어기고 기무라를 무차별 난타하였고 거의 실신직전까지 기무라를 두들겨 패댕이쳐 역도산이  KO로 이겼는데 이것은 중대한 약속위반으로 기무라측에서는 최배달을 엄청난 배신자로 여기게 되었고 분개했던 것이랍니다.

역도산의 약속 위반으로 링위에서 처참하게 패했던 기무라의 복수를 최배달이 대신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역도산 vs 기무라의 경기 동영상









일본 유도게의 실력자,기무라



최배달의 역도산에 대한 도전과 대결


그 중에서 특히 가장 분개했던 사람이 다름아닌 최배달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최배달은 기무라의 비참한 몰락을 링사이드 옆에서 직접 지켜보았으며 최배달의 배신에 대해 가장 먼저 인지했던 것이지요.

경기가 끝나자마자 최배달은 바로 링위로 뛰어올라서 역도산에게 도전을 신청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주위의 만류로 제지당했지만 이 때부터 같은 한국인출신인 두사람, 최배달과 역도산은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로 치닫게 되었지요.


역도산과 기무라의 경기내용을 보면 처음에는 두사람이 가볍게 몸터치를 하면서 각본대로 느슨한 경기를 펼쳐나갔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기무라가 발로 역도산의 복부를 가격했는데 이 킥은 당시 반칙이라고 합니다.

예기치 않은 기무라의 공격을 받은 역도산은 갑자기 필름이 끊기고 돌연 기무라에게 달려들어 가라데촙을 쉴세없이 기무라에게 퍼부었고 충격을 받은 기무라는 링사이드에세 처참하게 얻어맞다가 링바닥에 주어앉아 버리는데 문제는 그 이후의 역도산의 행동에 있습니다.


그로키상태에 빠져 링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기무라에게 최배달은 발로 기무라의 얼굴과 몸통을 사정없이 걷어차 버렸지요.

심판의 제지를 무시하고 말이지요. 더욱이 주먹으로도 수차례 기무라의 얼굴을 가격하기도 합니다. 반칙까지 동원하면서 기무라를 무차별 난타를 가한 끝에 역도산은 15분만에 KO승으로 경기를 끝내었지요.


역도산이 사전에 맺었던 약속을 어기고 맹수처럼 달려들어 기무라를 무차별 공격한 것은 약속을 믿고 전혀 무방비상태였던 기무라에게는 일종의 기만행위로서, 

기무라로 하여금 약속을 믿고 방어자세를 전혀 취하지 않았던 기무라를 속인 행위라고 최배달을 판단하게 되었고 

기무라를 대신한 복수로 역도산에게 도전했던 것이랍니다.


더욱이 기무라와는 평소에 호형호제하면 형제 못지않게 우정을 쌓아갔던 최배달에게는 기무라의 몰락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그리고 역도산의 약속위반을 비겁한 행동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최배달의 역도산에 대한 도전은 또다른 관점에서 보면, 항상 최고를 지향하던 최배달에게 자신이 최고의 무도가임을 증명하고 싶은 새로운 대상을 역도산에게서 찾았다고도 할 수도 있지요.


최배달은 그동안 최고라고 평가되는 무도가들은 가라데, 유도, 레슬러등 가리지 않고 도전해서 모두 제압해온 것만 보아도 당시 최고의 인기와 최고의 레슬링기술을 보유했던 역도산은 최배달에게는 새로운 도전대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최고라고 평가되는 상대를 꺾지 않으면 못참는 성미를 가진 최배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최배달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역도산에게 도전장을 던지지만 역도산은 끝까지 최배달의 도전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당시 일본 프로레슬러로서 최고의 명예와 지위를 얻고 있었던 역도산으로서는 최배달과의 대결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기 때문이죠.


최배달과 싸워서 이겨봤자 자신은 격투기선수도 아니기 때문에 프로래슬링 경력에도 전혀 

도움도 되지 않으며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이때까지 쌓아놓은 자신의 명예와 공적은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역도산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패했던 강호 톰 라이슨을 최배달이 거뜬히 제압했다는 점에서 최배달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을 수도 있지요.


그 후 최배달은 자신의 도전을 받아주지 않는 역도산과 어떻게든 겨룰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역도산의 행적을 계속 추적해 다녔지요.

역도산이 자주 드나드는 나이트클럽이 있는데 이곳에서 여러번 역도산을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곤 하였지요.

하지만 역도산은 항상 제자들, 경호원들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최배달은 기회를 잡지못했다가 결국 혼자서 나이트클럽에 나타난 역도산을 만나게 됩니다.


이날 역도산이 혼자서 나이트클럽에 왔다가 진행자의 소개로 무대위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이 때 최배달이 역도산 앞으로 다가가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도산에게 도전의사를 밝혔지요.

전혀 예기치않게 최배달의 도전을 받게된 역도산은 순간 마이크 쇠파이프를 최배달에게 휘두르며 대항했다고 합니다.

일본 레슬링계의 최고의 실력자답게 맨손대결로 나올 줄 알았던 역도산이 쇠파이프로 자신을 겨누자 너무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최배달은 역도산에게 ‘비겁자’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비겁하게 행동한 역도산에게서 싸울 가치를 못 느꼈던 것이지요.



역도산


역도산이 왜 ‘마이크 쇠파이프’로 최배달을 상대하고자 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요. 아마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만요.

이러한 최배달의 주장을 김일 등 역도산의 제자들은 강하게 부정을 했다고 하며 역도산이 사망한 후에 스승을 모욕한 최배달에게 김일이 도전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루머일 수도 있겠지요.


일명 ‘블랙코브라’라는 별명을 가진 프로복싱 선수출신 프로레슬러 톰 라이스와도 두 사람 모두 경기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죠.

톰 라이스는 원래 프로복싱 헤비급 선수 출신인데 프로복싱계에서 사고를 쳐서 프로복싱계에서 쫒겨났는데 후에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해서 무차별적으로 링위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미치광이 레슬러로 명성이 높은 자이지요.

그는 프로레슬링기술도 뛰어나서 그의 허리꺾기, 코브라트위스트에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하며 프로복서 출신답게 강펀치를 마구 휘둘러서 상대를 주먹으로 쓰러뜨리는 미치광이 레슬러로 당시 최강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지요. 


이 난폭하기 그지없는 톰 라이스에게 역도산이 허리꺾기기술에 걸려서 패배하고 만 것이지요. 역도산 일생의 첫패배를 당하고 만 겁니다.

그런데 역도산 패배에 대한 복수를 최배달이 하였다는 점이 이채롭네요.

역도산이 무너지자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했으며 최배달과 톰 라이스는 링위에서 피말리는 접전을 펼치게 되었지요.

최배달과 톰 라이스의 대결은 페이지 지면상 다음호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