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루이16세 사형과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3월 30일 방영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프랑스대혁명 시기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루이16세와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의 악연을 소개하고 있다.
루이16세는 프랑스국왕으로서 독재정치와 공포정치를 감행했던 악덕군주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며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는 이러한 루이 16세의 독재통치를 타도하고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했던 급진파 혁명지도자로서 두사람은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파리 콩고드광장의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두사람의 정치적 견해와 이상은 달랐지만 같은 방식으로 처형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는 평민출신으로 성장해서 검사가 되었던 자수성가형의 인물로 18세기 당시 평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물리고 탄압하는 프랑스국왕 루이 16세의 전제통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며 더욱이 온갖 특혜와 면세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귀족계급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구조는 성지자와 귀족, 그리고 평민으로 나눠어져 있었는데 98%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평민층만에게만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고 온갖 특혜와 대토지를 보유한 귀족계급은 세금을 전혀 내지않아 사회의 불굥평이 심화되었다.
1789년 평민들이 주축이 되어 국민의회를 만들고 평민들의 권리 회복에 나서자 당시 프랑스국왕인 루이 16세는 군대를 동원해서 무력으로 진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평민들은 국왕의 횡포에 맞서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고 도망치는 루이 16세를 체
포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왕정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로베스피에르였는데 로베스피에르는 국왕을 유페한 뒤 국민공회를 만들고 자코뱅파의 대표가 되어 혁명정부를 이끌
었다.
그런데 루이 16세의 공포정치에 항거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프랑스대혁명을 이끌었던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주체인 국민공회의 수장이 되자 또다른 형태의 공포정치와 독재정치를 만들어냈다.
로베스피에르는 국왕의 권한을 폐하는 것으로 족하며 굳이 처형할 필요는 없다는 온건파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내 처형시켰으며 1794년 온건파인 조르주 당통 등 당내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혁명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매우 과격하고 독단적인 통치력을 발휘해서 또다른 공포정치를 낳았고 반혁명 혐의, 부패혐의 등의 죄목을 붙여 2,085명을 단두대로 보내는 등, 대량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혁명정부의 수장 로베스피에르는 처음에는 부패한 귀족세력을 숙청하는 등 혁명수행으로 도시빈민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1인 독재체제를 확립하고 난 뒤 반대파와 정치적 동지들마저 혁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탄압을 하는 등, 또다른 독재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둬들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
과격한 독재스타일로 또다른 공포정치를 감했했던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 의원들의 지지와 신망을 잃어갔으며 결국 또다른 반대파를 숙청하려던 계획을 세웠던 로베스피에르는 의원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국민공회에서 체포되었으며 1794년 7월 28일 루이 16세 처형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자신이 단두대에 의해서 처형당했던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하여 왕정을 무너뜨렸던 혁명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와 어렸을 적부터 악연이 있었는데 1774년 프랑스 왕립학교에 재학중이던 시절 평민이라는 이유로 루이 16세에게 모욕과 멸시를 당했던 과거가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이 혁명정부의 수장이 되어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온건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이 16세의 사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변호사 시절 가난한 평민들에게만 적용되는 불합리한 사형제도를 비판하였는데 ‘불공정한 사형제도는 악법이다’라고 외치며 사형재도 폐지를 주장했으며 인권변호사로서 명성을 쌓았던 인물이다.
젊은시절 인권을 외치며 사형재도 폐지를 주장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대혁명이 성공하고 자신이 권력을 잡자 자신이 반대했던 단두대사형을 중요한 권력수단으로 즐겨 활용했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는 등, 대량학살의 도구로 사용했으며 프랑스 역사상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오명을 남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으며 결국 자신도 자신이 즐겨 사용했던 단두대에 의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한번 흥한 것은 10일도 안되어 반드시 쇠하게 된다.
‘권력은 무상하며 권력은 사람을 부패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는 전리를 몰랐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초심을 잃고 지나친 독선과 집권욕으로 인해서 ‘공포정치’ ‘대량학살의 주범’이라는 치명적인 오점을 낳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