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재미있고 통쾌한 조니 와이즈뮬러의 타잔 영화, 동영상 (타잔과 유인원)

 

 

70~80년대에 국내에 TV드라마 시리즈로 방영된 큰 인기를 끌었던 ‘타잔’을 아십니까?

‘타잔(Tarzan)’은 먼저 영화로 만들어져서 크게 인기를 끌자 이후 드라마시리즈로 만들어서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디즈니랜드사에서 3D 에니메이션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1918년 처음 제작된 타잔영화는 현대에까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아마 가장 장수한 케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타잔’의 유래에 대해서 간략 소개하지요.

타잔은 1913년에 쓰여진 미국의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즈(Edgar Rice Burroughs)의 소설 "유인원 타잔(Tarzan of The Apes)"이 타잔의 효시이지요. 소설 ‘유인원 타잔’은 총 26부작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크게 인기를 끌자 이후 허리우드 영화와 드라마로도 수없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타잔(Tarzan)의 최초 영화는 엘모 링컨이 타잔역으로 분한 1918년작 ‘타잔의 로맨스’(The Romance of Tarzan)가 타잔영화의 효시로 알려지고 있지요. 물론 이때는 무성영화로 제작되었지요.

이후 타잔영화는 크게 붐을 타게 되고 그 인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총 40편의 타잔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하니 동일한 주제의 영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장수한 것은 타잔영화 이외에는 없을 듯 하군요.

 

영화 ‘트로이의 목마’가 크게 히트하자 이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가 3번 정도 더 만들어져서 재미를 보았지만 타잔영화처럼 동일한 주제를 40번 이상 리메이크한 경우는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닐까 합니다. 더욱이 드라마로도 수없이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었는데 영화와 드라마가 동시에 크게 히트한 작품으로 ‘타잔’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품이라고 할 정도이지요.

 

‘타잔’영화가 1918년 무성영화시대부터 만들어졌지만 진정한 타잔 영화는 유명한 조니 와이즈뮬러때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지요.

조니 와이즈뮬러 이젠에도 8편의 ‘타잔’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무성영화이거나 주인공 타잔은 무식한 원시인에 지나지 않았지요. 즉, ‘타잔’의 캐릭터가 유인원 즉, 고릴라나 원숭이류와 비슷한 존재로 주인공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질 못하였지요.

 

 

✦ 조니 와이즈뮬러의 타잔 영화, 타잔 영화의 전성기

 

 

 

그러나 1930년대 수영선수 출신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5번이나 따내었던 조니 와이즈뮬러(Johnny Weismuller)가 타잔으로 분한 영화 ‘타잔과 유인원’ 때부터 타잔영화가 싹 달라집니다.

드디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격을 갖춘 완성형 타잔이 조니 와이즈뮬러에 의해서 완성되었지요. 큰 키에 야성미가 물씬 풍기면서 섹시어필한 인격형의 ‘타잔’영화가 조니 와이즈뮬러에 의해서 구현되면서 타잔영화는 큰 인기를 끌게 되었으며 허리우드영화의 거물급 흥행카드로 군림하게 되었지요.

 

조니 와이즈뮬러에 의해서 원시인(유인원)타잔이 멋지고 야성적인, 그리고 세련된 타잔으로 변모하자 타잔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타잔영화의 큰 인기를 바탕으로 조니 와이즈뮬러는 32년부터 48년까지 무려 ‘타잔’영화를 12편이나 촬영한 ‘최장수 타잔’이 되었지요. 그리고 오늘날에도 타잔의 대명사로서 타잔의 아이콘으로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배우가 바로 조니 와이즈뮬러이지요.

조니 와이즈뮬러(Johnny Weismuller)는 1932년 MGM영화사에서 제인역의 미모의 허리웃여배우 ‘모린 오설리번(Maureen O'Sullivan)’와 함께 ‘타잔과 유인원’을 첫 촬영하여 크게 히트하였고 그녀와 ‘타잔과 친구들’ ‘타잔의 탈출’ ‘타잔의 숨겨진 보물’ ‘타잔의 뉴욕모험’ 등 총 6편의 ‘타잔’영화를 찍었지요.

 

조니 와이즈뮬러와 초기 '타잔'영화를 여섯편이나 함께 찍은 제인역의 '모린 오설리반'

 

그리고 영화사를 RKO사로 옮기어서 제2의 제인인 금발의 미녀 ‘브렌다 조이스(Brenda Joyce)’와 함께 ‘타잔과 아마존’ ‘타잔과 여자사냥꾼’ ‘타잔과 인어’ ‘타잔과 표범여인’ ‘타잔과 트라이엄프’ 등 총 6편의 타잔영화를 더 찍게 되지요.

 

이 조니 와이즈뮬러가 주연을 맡았을 때가 타잔영화의 전성기로서 가장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었고 조니 웨이즈뮬러는 타잔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준 배우로 큰 명성을 쌓게 되지요.

조니 와이즈뮬러는 총 12편의 ‘타잔’영화를 촬영하고 난 후 48년 은퇴를 하게 되지요. 조니 와이즈뮬러가 물러난 후에도 타잔영화는 아프리카의 생생한 자연과 동물의 등장과 정의감 넘치는 타잔의 모험과 액션으로 인하여 가장 큰 인기와 흥행의 캐릭터로 급부상하였고 그후 수많은 2세,3세의 타잔들이 출연하면서 수많은 타잔 후속작품들이 계속 만들어지게 됩니다.

 

48년 타잔의 아이콘이었던 조니 와이즈뮬러가 은퇴한 뒤에도 그의 뒤를 이어서 렉스 바커(Lex Barker), 고든 스콧 마호니(Gordon Scott Mahoney), 마이크 헨리(Mike Henry), 론 엘리(Ron Ely), 마일즈 오키프(Miles O'Keeffe), 크리스토퍼 람베르(Christopher Lambert) 등이 많은 차세대 타잔들이 나타나서 ‘타잔’영화는 계속해서 제작되었고 그 흥행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1981년에는 현대판 타잔영화인 보 데렉, 마일스 오키프가 주연한 ‘유인원, 타잔 Tarzan, The Ape Man’이 만들어졌으며 1984년에는 크리스토퍼 램버트 주연의 ‘그레이스톡 타잔, Greystoke The Legend Of Tarzan, Lord Of The Apes’이 또다시 만들어지게 되지요. 80년대 이후에 제작된 타잔영화는 기존의 타잔영화와는 좀 다르게 새로운 각도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재조명되어 다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타잔영화는 2000년 이후 현대에 들어와서도 영화와 3D애니메이션으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고 있을 정도로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조니 와이즈뮬러의 ‘타잔과 유인원’ 하이라이트 동영상

 

 

 

 

 

‘타잔’의 줄거리

 

1886년 영국은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를 담당할 존 클레이튼를 아프리카로 파견한다.

스코틀랜드 귀족출신인 존 클레이튼은 부인 앨리스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나는데 항해 도중 선원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존 클레이튼과 부인 앨리스는 아프리카 오지에 감금당하게 되지요.

존 클레이튼의 부인은 그곳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난 후 사망하고 존 클레이튼 또한 사나운 원숭이들의 공격을 받고 죽고 맙니다.

 

존 클레이튼의 한 살배기 아들은 아프리카 숲속에 남겨졌지만 그곳에 서식하던 원숭이 집단에게 발견되고 원숭이 우두머리의 승낙에 따라서 원숭이들이 클레이튼의 아들을 거두워서 키우게 되지요.

클레이튼의 아들은 피부색이 하얗다고 해서 원숭이무리에서 ‘하얀 피부’를 뜻하는 아프리카어 ‘타잔’으로 불리워지게 되며 ‘타잔’이 결국 그의 이름이 되었지요.

 

성인이 된 타잔은 골격이 커지고 힘도 장사라서 사냥에 능통했으며 행동은 민첩해졌지요. 그런 와중에 타잔은 원숭이무리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결국 그우두머리와 결투를 별여서 우두머리를 죽이고 자신이 원숭이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타잔은 자신이 관할하는 원숭이집단을 아주 평화적으로 통치하면서 숲의 평화와 안정을 찾아가던 중 밀림탐사를 나온 탐사대와 조우하게 되었지요.

 

인간의 이성과 동물적인 야성을 동시에 갖고 있던 타잔은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인간종족을 보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혼란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긴들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며 그들을 미행하게 되지요.

그러던 중 그 탐사대의 수장인 포터 교수의 딸 제인을 만나게 되는데요.

 

숲속에서 길을 잃었던 제인을 자신의 보금자리인 아늑한 나무위로 데려와서 원숭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보호해주게 하였지요.

한편 자신의 딸을 밀림에서 잃어버린 탐사대 포터일행은 타잔과 원숭이일행이 자신의 딸 제인을 납치해간 것으로 오해하고 원숭이들에게 총을 발사해서 죽이고 타잔에게도 총을 발사하여 타잔도 총에 맞아 숲속으로 달아났지요.

 

 

숲속으로 쫒기던 타잔은 숲에서 암사자를 만나게 되고 굶주린 암사자는 타잔을 먹이감으로 생각하고 타잔을 쫒아오는데 결국 타잔과 암사자와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장면은 명장면으로 유명하지요.

타잔은 총에 맞아 부상당한 상태에서도 암사자를 쓰러뜨리고 칼로 숨통을 끊어놓자 이번에는 숫사자가 타잔에게 달려들지요.

타잔은 사나운 숫사자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숫사자의 등뒤에서 숫사자의 목을 감싼 채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갖고 있던 칼로 숫사자의 목줄을 끊어 죽입니다.

 

결국 암사자와 숫사자 모두를 죽인 타잔은 그만 탈진하고 마는데 타잔의 신호를 듣고 달려온 코끼리가 쓰러진 타잔은 긴코로 감아서 보금자리까지 운반해주는 장면은 신기할 따름이지요. 더욱이 숲에 내려놓은 코끼리가 기절한 타잔을 코로 물을 운반해서 물로 얼굴을 뿌려주어 깨어나게 하는 장면 또한 보기에 흥미로왔지요.

 

3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치고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보여지며

‘인간과 사자와의 싸움 장면’ 등 지금이라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수준의 영화를 30년대에 만들었다는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지요.

단지 영화가 흑백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영화의 구성이 뛰어나며 각종 동물 등 볼거리가 워낙 많아서 흥미로왔지요.

제인으로 나온 ‘모린 오설리반’의 깜찍하고 예쁜 연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제인역의 ‘모린 오설리반’은 ‘조니 와이즈뮬러’와 6편이나 함께 타잔시리즈를 찍은 던 ‘조니 와이즈뮬러’의 초기 파트너였었는데 연기가 아주 일품인 당대의 톱스타였다고 합니다.

 

1932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암사자, 숫사자, 코끼리, 표범, 악어, 누우, 원숭이 등 많은 동물과 맹수들이 함께 나오며 인간(타잔)과 사자가 싸우는 장면은 정말 흥미진진하며 어떻게 촬영했는지 매우 놀랍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네요.

지금처럼 3G 그래픽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그래픽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인간과 사자의 싸움 영상을 그당시에는 사람과 사자가 실제 연기를 통해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촬영했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네요.

 

타잔역으로 나온 조니 와이즈뮬러는 키가 191cm나 되는 장신에다가 올림픽에서 수영으로 금메달을 5번이나 딸 정도로 근력과 운동신경이 뛰어난 배우인데 실제 영상에서 사자와 직접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과 사자가 무는 듯한 장면등이 나오는데 촬영할 때 부상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니 와이즈뮬러는 이렇게 위험천만한 타잔영화를 무려 12편이나 촬영했다고 합니다.

 

아뭏튼 조니 와이즈뮬러가 출연한 ‘타잔과 유인원’은 웬만한 동물다큐 영화보다 훨씬 더 흥미로우며 진한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걸작이랍니다.

 

 

 

'모린 오설리반'에 이어 '조니 와이즈뮬러'의 두번째 파트너로 제인역을 맡았던 '브렌다 조이스'도 후반기 6편의 타잔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타잔과 그의 친구들'에서 콤비로 함께 출연한 '모린 오설리반'과 '조니 와이즈뮬러', 두사람은 타잔 영화를 총 6편이나 함께 촬영했다.

 

타잔영화에 콤비로 함께 출연했던 '모린 오설리반'과 '조니 와이즈뮬러'

 

 

 

 

 

 

 

 

Posted by 프린스.
,
반응형

 

 

 

서스팬스와 스릴감 넘치는 공포영화 드라큐라(Dracula)

 

 

허리우드 호러영화 1958년작

 

여름철 숨막히는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 보내려면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인데 공포영화 중에서도 가장 섬뜩하고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무서운 영화가 바로 드라큐라 영화이다.

가마솥 더위가 한창인 복날 공포스러운 전율과 스릴을 느껴볼 수 있는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영화 '괴인 드라큐라'(일명, Horror of Dracula)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어름짱처럼 찬 냉기운을 느껴볼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피서 방법이 또 있으랴!

 

 

크리스토퍼 리가 주연한 드라큐라영화 포스터

 

드라큐라 영화는 20세기 초부터 수없이 많이 제작되어 왔으며 제목도 다양하고 스토리도 가지각색으로 진화해왔다.

드라큐라, 드라큐라백작, 흡혈귀, 뱀파이어, 노스페라투 등 제목도 여러 가지로 변화했는데 아마 동일한 주제와 인물을 가지고 이렇게 오랫동안 영화화된 영화도 드물 것이다.

같은 스토리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중 가장 많이 리메이크한 영화가 드라큐라 영화이다.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이 뛰어나면 후대에 다른 감독이 같은 내용의 영화를 다시 리메이크해서 제작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드라큐라 영화 만큼 그 횟수가 10번을 넘게 리메이크된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드라큐라 영화의 흥행성과 작품성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큐라 영화가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1922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노스페라투(Nosferatu)이다.

지금보면 드라큐라의 모습이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그 당시는 상당한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여졌던 영화였고 그 후 헐리우드 드라큐라 영화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벨라 루고시의 드라큐라(1933년작)가 만들어졌으며 58년에 영국 헤머사에서 제작된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드라큐라 영화가 있으며 92년에 게리올드만,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가 만들어졌고 계속해서 1994년에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주연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그 뒤를 이었고 2012년까지 드라큐라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져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라큐라 영화는 미국 등 서유럽에서만 10개 이상의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다른 대륙들까지 합치면 30편이 넘을 것이다.

 

실제 드라큐라백작이 살았다고 하는 루마니아의 듀란성

 

미국 포브사에서 13년에 역대 흡혈귀(뱀파이어)영화 10선을 발표하고 1위부터 10까지 순위를 매겼는데 그 중에서 1위로 선정된 영화는 92년 게리 올드만 주연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영화이다.

게리올드만이 드라큐라로 분하고 안소니 홉킨스가 반 헬싱으로 분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는 전세계 총 흥행수입이 총 2,380억원으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기념비적인 벰파이어영화이다. 이영화는 드라큐라의 원작자인 브람 스토커의 원작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다.

이러한 높은 흥행성과 내용면에서 높게 평가되어 1위로 선정되었다.

 

미나역으로 분한  멜리사 스트리블링(Melissa Stribling)

 

2위는 크리스토퍼 리가 드라큐라로 분한 '드라큐라'(일명, Horror of Dracula)이다. 국내 개봉시 제목은 '괴인 드라큐라'이다.

드라큐라 시리즈 중에서 가장 섬뜩하고 공포와 스릴감이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드라큐라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영원한 드라큐라의 아이콘이라고 불리우던 크리스토퍼 리와 드라큐라를 잡는 반헬싱역에 피터 커싱이 출연했고 영국 해머사에서 제작한 영화인데 분위기 자체가 무척 음산하고 공포스럽기 그지없으며 드라큐라역을 맡은 드라큐라보다도 더 무섭게 생긴 크리스토퍼 리의 외모에서 풍겨지는 카리스마가 워낙 강해서 영화 분위기를 전율과 스릴로 몰아넣는데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풀 수 없는 사건 전개가 특히 뛰어난 영화이다.

 

기존에 제작된 드라큐라 영화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럽고 코믹한 면을 완전 배제하고 공포스럽고 사실적 사건전개로 인해 스릴감에서는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한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드라큐라는 트랜실바니아에서 생존했다고 알려진 드라큐라백작에 관한 전설을 영화한 것인데 최초로 컬러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테런스 피셔 감독이 연출한 '괴인 드라큐라'(일명, Horror of Dracula)는 공포스럽고 사실적인 뱀파이어영화의 전형을 선보여준 기념비적인 영화이다.

 

 

드라큐라의 원작자는 영국의 소설가인 브람 스토커이다.

브람 스토커는 유럽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에다가 자신의 창작을 입혀서 드라큐라를 창조해냈다.

브람 스토커가 드라큐라 소설을 썼던 시기인 19후반의 유럽은 공포 스릴러물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이런 시류에 편승해서 전설 뱀파이어를 소설 드라큐라로 완성한 것이다.

 

영화 드라큐라는 물론 괴물같은 사악한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보통 인간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가진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평소에는 점잖고 말쑥한 영국신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잔인무도한 악마로 변하는 드라큐라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또한 드라큐라가 원하는 여성은 정숙하고 품위있는 여성이라고 한다.

이것 또한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드라큐라 자신은 사실상 연쇄살인범으로서 추악하고 흉측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여성은 품위있어야 하고 정숙한 여성만을 선정한다는 것이 인간의 복잡한 이중적인 정신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연쇄살인범들도 자기자식은 끔찍이 사랑하며 미인들을 좋아하지 않는가!

드라큐라 영화는 평소 선과 악의 이중성을 겸비한 인간의 양면적인 심리상테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 소름이 오싹끼치는 크리스토퍼 리의 드라큐라 영화 한편을 감상하면서 숨막힐 정도로 달아오르는 뜨거운 체온을 한방에 날려버리자!

 

- 영화 ‘흡혈귀 드라큐라’ 줄거리 -

영국의 젊은 변호사 조나단은 영국에 저택을 알아봐 달라는 드라큐라백작의 의뢰를 받고 드라큐라백작이 사는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로 가서 드라큐라성으로 간다. 비스트리츠에서 드라큐라성으로 가는 길목의 주점에서 만난 사람들은 드라큐라성에서 온갖 귀신들이 나온다며 가지 말라고 만류하면서 그에게 십자가를 건네준다.

드라큐라성에서 하루를 묶은 조나단은 백작이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 그 방에 들어갔다가 드라큐라 여인을 만나고 그녀는 자신은 인질이라며 자신을 탈출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척하면서 조나단에게 접근하다가 조나단의 목에 이빨자국을 남기는데 이를 본 드라큐라가 그녀를 조나단에게서 떼어낸다.

 

조나단은 지하의 음침한 방에 들어갔다가 관속에 누워있는 드라큐라를 보고 그가 수백 년간 죽지 않고 살아온 불사의 흡혈귀라는 것을 알고 탈출을 계획하지만 결국 드라큐라에게 붙잡혀 탈출하지 못한다.

 

조나단의 약혼녀 루시

 

한편 영국 런던에 사는 조나단의 약혼녀인 루시는 몽유병이 발병하여 밤마다 돌아다니다가 돌아오곤 하는데 그녀와 같이 사는 오빠 아더 홀름우드와 올케 미나 홀름우드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만 가는 루시를 극진히 간호하는데 루시의 병세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저명한 의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인 아브라함 반헬싱을 찾아가서 루시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허지만 루시가 몽유병증세를 보이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빈혈증세까지 보이는 것은 밤마다 루시를 찾아오는 드라큐라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지난 밤 루시는 과다 출혈로 죽고만 것이다.

 

루시의 오빠 아더 홀름우드와 올케 미나 홀름우드

 

루시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 도처에서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목에 상처를 입은 채로 다시 나타나는 일이 발생하는데 반헬싱은 바로 루시가 흡혈귀가 되어서 아이들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밤에 잠복해서 루시를 기다리는데 그 후 나타난 루시가 그녀의 오빠에게 다가가서 사랑한다며 키스를 청하자 반헬싱박사가 루시를 제지하고 그녀에게 십자가를 대자 그녀의 손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녀가 흡혈귀임을 확신한다.

 

 

다시 낮이 되자 반헬싱박사는 루시가 안장되어있는 루시의 묘지로 가서 그녀의 심장에 말뚝을 박고서 그녀를 영원히 잠들게 한다.

점점 죽어가는 루시의 얼굴은 처음에는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나중에는 평온한 모습을 한 채 저세상으로 간다.

 

 

 

루시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시의 올케인 미나도 루시와 비슷한 증세인 빈혈증세를 보이며 날로 쇠약해져만 가는데 반헬싱박사는 이것이 드라큐라의 소행인 것을 알고 미나의 방으로 통하는 입구에 마늘과 장미를 잔뜩 갖다놓는다.

 

 

 반헬싱박사는 더 이상 드라큐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드라큐라를 제거하기 위해 드라큐라성으로 향한다.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에 있는 드라큐라성으로 찾아간 반헬싱박사는 드라큐라의 부하들을 먼저 제거한 후에 마침내 드라큐라가 잠들어있는 드라큐라관을 발견하고는 말뚝을 박으려고 하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다음날을 기약한다.

다음날 밤 홀에서 드라큐라와 마주친 반헬싱은 드라큐라와 결투를 벌이는데 괴력을 소유한 드라큐라의 강력한 힘에 밀려서 계속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에 가서 최후의 무기인 십자가를 드라큐라의 몸에 비추자 드라큐라의 몸은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때 다시 날이 밝아오면서 창문을 통해서 밝은 빛이 들어오자 드라큐라는 십자가의 빛과 햇빛을 동시에 받아서 그의 몸이 급격히 타들어가면서 결국 한줌의 재로 변하고 만다.

 

 

 

 

Posted by 프린스.
,
반응형

 

 

그리어 가슨의 추억의 영화 '마음의 행로'

 

 

 

역대 고전 허리웃 영화중에서 최고의 역작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머빈 르로이 감독의 ‘마음의 행로’가 아닐까 한다.

1942년 제작된 ‘마음의 행로’는 영국의 명배우였던 로널드 콜먼과 온화한 미인의 이미지를 짙게 풍기는 그리어 가슨이 열연했던 다시보고 싶은 영화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추억의 명작품이다.

‘마음의 행로’는 1942년 미국의 MGM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인데 MGM영화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대작을 만든 당시 최고의 영화사라고 할 수 있는 거대자본의 영화사이다.

 

특히 ‘마음의 행로’를 만든 감독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다 준 추억의 명화 ‘애수’를 만든 바로 머빈 르로이 감독이다.

‘마음의 행로’나 ‘애수’ 모두 머빈 르로이 감독의 작품으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남자주인공은 군인으로, 여자주인공은 무희로 나오는 등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전쟁의 참화속에서 피어나는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 하여 당시 2차 세계대전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마음의 행로’가 우리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요인은 그리어 가슨의 모성애를 짙게 풍기는 다정하고 온화한 이미지와 평생을 오직 한남자만을 바라보며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지고지순한 한여인의 순애보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모양처처럼 다정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짙게 풍기는 영국배우 그리어 가슨은 1940년대를 풍미했던 허리웃의 명배우였다.

1942년작 ‘마음의 행로’에서 그리어 가슨이 보여준 온화함과 모성애를 자아내는 착한 아내의 역할로 다정다감하고 아름다운 여배우로 우리들 가슴속에 진하게 각인되었다.

그리어 가슨은 원래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대학교를 나온 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유학한 후 여류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을 갖춘 지성미를 갖춘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허리웃 영화계에 투신하여 여러편의 걸작 영화에 출연하면서 4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배우이다.

 

그리어 가슨은 42년 ‘미니버부인’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또한 ‘오만과 편견’, 43년 ‘큐리부인’ 53년 ‘줄리어스 시저’ 같은 메가톤급 영화에 출연하면서 당대에 지성미를 갖춘 온화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였다.

 

 

 

- 줄거리 -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심한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은 전쟁이 끝나자 몰래 수용소를 빠져나온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안개가 자욱한 길거리를 배회하는 도중에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여인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은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의 어눌하고 이상한 말투에 처음에는 의아해하지만 바로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에게 묘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이름도 모르고 거처가 불분명한 그를 도와주기 위해 임시로 자신이 일하는 극장으로 데려가서 머물게 한다.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이 극장에서 쇼를 공연하는 동안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는 무대 뒤에서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서 폴라 헨슨의 매니저를 밀쳐버리는데 그만 그 매니저가 기절해 버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쇼를 마치고 돌아온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은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큰 사고를 일으킨 것을 알고 만일 누군가가 신고를 한다면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큰 곤경에 빠질 것을 알고 아직 자신의 이름과 거주지를 전혀 기억 못하는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시골로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를 데리고 도피여행을 떠나게 된다.

 

 

드디어 리버플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한 두사람은 결국 그림같이 아담한 작은 집에 함께 살면서 부부의 연을 맺고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는 한 출판사에 투고한 그의 글이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직업을 갖게 되었으며 그리고 예쁜 딸까지 낳아 두사람은 알콩달콩한 사랑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이렇게 영원히 함께 안락한 가정생활을 이어갈 줄 알았던 두사람 사이에 갑자기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영화는 반전을 이루게 된다.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과거를 일체 기억못하는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리버플 시내에 갔다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그는 그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뇌를 다치는 바람에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다시 회복하게 되고 그 대신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과의 있었던 모든 기억들은 잃어버리게 된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자신의 먼과거를 다시 되찾는 대가로 한 여인과 사랑했던 가까운 과거는 모두 망각하게 되는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의 운명은 한 여인에겐 너무나도 불행한 사건이었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를 만난 후부터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줄곧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헌신하면서 살아온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에겐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자신과의 있었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자 그녀는 찰스 레이어가 운영하는 회사에 그의 개인비서로 취직하고 만다.

찰스 레이어는 원래 재벌의 상속인으로 큰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고 젊은 여성과 약혼까지 한 상태였는데 그의 개인버서로 근무하게된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은 그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면서 그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단서를 제공하지만 그의 닫혀진 기억은 전혀 되돌아올 줄 모른다.

 

 

2년 넘게 자신의 전남편인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를 곁에서 보좌하면서 그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하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은 결국 전남편인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의 기억되찾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옛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면 영화가 성립될 수 없다.

이 자포자기의 상황에서 또한번의 반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재미에 재미를 더하게 되고 관객들은 큰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고 40년대 최고의 명작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전이란 대기업 회장인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는 자신의 거래처를 방문하기 위해서 리버플의 작은 도시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리버플은 바로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과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우었던 자신의 옛집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출장일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리버플의 시가지에서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는 우연히 한 사가지를 거닐고 있었는데 그곳은 과거에 와보았던 곳 같은 묘한 기억이 떠올라 자신이 발길이 가는데로 그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처음 와본듯한 도시에서 시골로 발길 닿는데로 거닐던 그가 마지막으로 다다랐던 종착지에는 작은 냇물 위로 아담한 한폭의 같은 집이 보였다.

 

바로 그집은 주인공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과 딸까지 낳으면서 함께 살았던 자신의 옛집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주인공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가 교통사고로 자신이 먼 기억을 되찾고 난 후 잃어버렸던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과 함께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참으로 로맨스 영화답게 정말 아름답고 극적인 상황설정이 아닐 수 없다.

자신과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옛집으로 들어가는 전남편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의 뒤를 쫒아온 폴라 헨슨(그리어 가슨)은 다시 잃어버렸던 자신과의 기억을 되찾은 전남편 찰스 레이어(로널드 콜먼)의 뒤에 서서 행복한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음의 행로’는 우리들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주는 참으로 잘 만든 걸작이라고 할 만 하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버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큰 감명을 주는 영화는 정말 흔치 않기 때문이다.

1942년에 만들어져서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큰 감동을 주는 영화는 ‘마음의 행로’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잘 만들어진 명작중의 명작이다.

 

이 영화의 파급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 후에 만들어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마음의 행로’의 주제를 본 따서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들이 계속해서 리메이크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리메이크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음의 행로’를 모방해서 만든 드라마가 수 편 존재한다.역대 영화중에서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준 영화 두 편을 고르라면 ‘마음의 행로’와 ‘애수’일 것이다. 이 두 편의 영화 모두 머빈 르로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