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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이산 세월호유가족 김용오, 문성근에게 막말 발언 논란, 뮤지컬배우 

이산




검색어 순위에 연일 상위에 오르는 이산이라 인물이 도대체 누구인지 찾아보았는데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배우 이산이 왜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지 이유를 알아보니까 기가 막일 뿐이었다.


배우 이산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막말과 욕설을 퍼부으면서 이슈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사람이라고 하며 본명은 이용근이라고 한다.



이산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단식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유민이아빠’ 김영오씨를 향해서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막말과 모욕적인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유민이 아빠라는 자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니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고 폭언을 했는데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배우(연극배우)라는 사람이 자신과 정치적인 철학이나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세월호참사로 자식을 잃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유가족에게 이렇게 참담한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


연극배우 이산은 또한 단식중인 가수 김장훈에게도 막말과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산은 8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가수 김장훈을 향해 ‘가수 김장훈, 노래도 못하는 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해서 유가족들의 단식 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김장훈을 겨냥한 말이다.


그런데 이산의 막말과 폭언은 배우 문성근에게도 향했다. ‘연극인으로 한 마디 하고 싶다. 문성근 XXX 넌 내 눈에 띄면 죽여버린다 XXX야’라고 욕설과 함께 폭언을 퍼부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막말, 폭언을 해대었던 연극배우 이산이 27일 해명성 글을 자신의 패이스북에 올렸다고 한다. 배우 이산은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비롯한 유가족 측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먼저 사과할 경우 자신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우 이산은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향해 "역사상 한민족 최초로 최고통수권자 앞에서 쌍욕한 당신이 대통령께 먼저 사과하면 당신께 사과하겠다. 김재규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면서 당신처럼 육두문자는 쓰지 않았다"며 "제가 투표한 정치적 신념의 지도자가 전 국민이 보는 TV로 능욕되는 장면을 본 투표권자로서의 모멸감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앞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는 방송에서 대통령을 향해서 ‘너 같으면 잠이 와!’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부분이 문제가 된 듯하다.


이어 자신이 욕설을 퍼부은 선배 배우 문성근에 대해서는 "최고의 배우이기에 한때 가장 존경했었다. 선배님께 육두문자를 쓴 건 정치적 수사였다"면서도 "인간의 정치적 욕망이 뭔지 선배님과 저를 반대 방향에서 보도록 만들었다.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연극배우 이산은 "저는 배우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길 늘 간절히 바라는 국민입니다. 세월호의 진실, 당연히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견해가 너무 다릅니다. 부디 세월호 정국이 돌파구를 찾아 합의돼 국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되길 빌어봅니다"는 의견을 게재했다.


결국 연극배우 이산이 이처럼 심한 막말과 폭언을 한 이유는 정치적 철학과 정치적 성향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박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입장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막말과 폭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배우라는 공인의 입장에서 어려운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토록 심한 발언을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이산은 연극배우이자 뮤지컬배우라고 하는데 그의 출연작을 보면 체코판 드라큘라에서 '광대'역을, 몬테크리스토에서 '파리아 신부' 역을, 러시아 뮤지컬 '아보스'에서 주인공 레자노프역을 연기했던 중견 배우라고 한다.


그런데 배우 이산이 자신의 발언논란에 대한 공식입장을 표명한 후에 한국뮤지컬협회 홈페이지가 마비됐다고 한다. 이는 배우 이산이 뮤지컬 배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산의 막말발언과 그의 해명성 발언에 동조하지 않는 네티즌들이 이산의 탈퇴를 촉구하고 항의 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이 접속했기 때문아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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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의 ‘명량해전’ 승리요인, 동영상, 사망자, 위치, 영화 ‘명량’ 관객수, 울들목


- 페이지 맨 하단에 '명량해전' 동영상 있습니다 -




영화 ‘명량’이 8월 24일 현재 관객수 1,60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등 때아닌 이순신과 명량해전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되고 있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1625만 7327명)

2006년 영화 ‘괴물’이 보유한 한국영화 1위 기록을 8년만에 갈아치웠으며 또한 영화 ‘아바타’가 보유한 1362만명 기록마저도 갈아치우면서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역사적인 인물을 주제로 한 사극영화가 관객 1000만명을 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로 도대체 왜 대한민국의 관객들은 이토록 이순신이 참전했던 417년 전의 명랑대첩에 열광하는 것일까?


얼마전에 영화 ‘명량’의 누적 관객수가 1,600만명을 넘어섰고 이러한 추세로 가면 한달 정도만 지나도 관객 2,000만명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추정되는 상황인데 현시점에서 보다라도 이순신을 주제로 한 영화 ‘명’은 대한민국 전체국민의 1/3이 관람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일 뿐만아니라 국민의 1/3이 관람했다고 하는 그 상징적 의미 또한 대단히 큰 것이며 우리나라 영화사상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영화로 길이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관객들이 이토록 이순신과 ‘명랑’에 집착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몇가지로 집어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의 아베정권이 끈질기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나라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위안부문제 등 계속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2차대전의 전범이 안치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참배하는 등 신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 주변의 정치상황에서 야기되는 위기감, 그리고 일본 견제의식에 저변에 강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이 아베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부쩍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적 언행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한반도정세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전쟁을 금지시킨 일본헌법 해석의 변경으로 전쟁이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호전적인 야욕 등과 맞물려서 일본 침략을 통쾌하게 물리친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 일본을 견제하려는 대중들의 극일심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영화 ‘명랑’의 주제가 된 과거 417년 전에 벌어진 이순신의 ‘명대첩’을 다시한번 살펴봄으로써 이순신의 위대한 치적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 이순신장군만이 가능했던 명량대첩(명량해전)의 대승리



이순신장군은 세계해전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냈던 조선이 낳은 최고의 명장이다.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 전적은 23전 23승으로 불패의 신화를 달성한 유일한 조선의 맹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순신장군은 진도앞 울들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에서 패배가 불을 보듯 뻔한 절대 열세인 처한 상황에서 전함 13척으로 뛰어난 전략을 구사해서 왜군 선단 333척을 물리친 해전사상 유래가 없는 최고의 대승을 일궤냈다. 이순신의 명랑해전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적’ ‘천운’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명대첩의 대승은 기적도 아니고 천운도 더더욱 아니며, 이순신의 치밀하고 뛰어난 지략과 전술, 그리고 조선 수군의 우월한 무기체계가 빛을 발휘해서 얻어낸 치밀하게 계획된 전투의 성과였다.



1592년 왜군 15만 9천명이 조선을 침략해온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전혀 전쟁준비가 안된 조선은 개전초기부터 연전연패를 당하며 수도 한양은 물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평양성마저도 함락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이렇게 육상전투에 연패하는 사이 서남해안 바다에서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 미리 준비한 거북선과 판옥선을 이끌고 서남해안 바다에서 왜군 선단을 파죽지세로 무찌르며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옥포해전, 한산도 대첩 등 끈임없이 처들어오는 왜군 선단들을 싸우는 족족 격퇴해 버리는 이순신 함대의 빛나는 전과로 인해서 평안도 북부를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을 점령하며 승승장구하던 왜군은 보급품 수송에 빨간불이 켜졌다.



시대적 영웅이 나타나면 영웅을 시샘하는 모함꾼들이 항상 꼬이게 되는 것이 조선의 고질적인 병폐다. 이순신장군이 옥포해전, 당항포해전, 안골포해전, 한산도해전 등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면서 일본 보급선의 발을 묶어두고 호남지방을 방어하는 수훈을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싸움에만 몰두하던 조정대신들은 자신보다 더 위대한 영웅의 출현을 시기하여 이순신을 모함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벌인다.

그리고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졸렬했던 임금, 선조 또한 이순신장군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이 높아지자 이순신장군에 대한 시기심과 의심을 품게되어 이순신장군을 명령불복종죄를 뒤집어 씌워 감옥에 수감하고 모진 고문을 행한다.


이렇게 조선에서는 왜군을 무찌른 데에 큰 공을 세운 전쟁의 영웅을 감옥에 가둬놓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가장 기뼈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이순신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던 바로 왜군들이었다.

이순신이 감옥에 있는 사이, 왜군들은 서남해안에 다시 거대한 전함을 이끌고 침략해 들어오는데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 된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거의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였고 원균 자신도 왜군의 칼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의 조선수군은 이순신이 모아두었던 300척의 전선의 대부분을 잃고 역사상 최대의 패베를 당했다.



해전의 대패로 다시 서남해안 재해권은 일본으로 넘어갔고 이에 몹시 다급해진 선조는 이순신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고 전선으로 내보내는 데 이 당시 선조는 ‘과인이 무슨 할말이 있으리오’라고 하는 굴욕적인 저자세로 이순신장군을 설득해서 다시 전선으로 내보냈다고 실록에선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자신의 명으로 처벌한 이순신장군에게 이렇게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재등용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선조가 자신의 잘못된 처사를 반성한 것인지, 아니면 이순신을 단지 전쟁방패막이로만 써먹을 교활한 계산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겟지만 ~


임진왜란 전쟁 발발 후 2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명나라군대가 개입하고 전세가 팽팽한 접전 상태에 접어들자, 명나라와 일본은 협상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그 후 3년 동안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전쟁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와의 협상이 결렬되자, 다시 대군을 파견해서 제2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바로 1997년에 벌어진 정유재란의 시작이다.

당시 왜군들은 300척이 훨씬 넘는 거대한 선단에 왜군 2만명을 태우고 서남해안으로 다시 쳐들어왔는데, 이들 왜군은 남해안을 거쳐서 서해로 올라가 예성강을 통과해 수도 한양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계산은 당시 이순신이 없는 남해안을 손쉽게 통과해서 서해로 올라가서 예성강이나 한강을 통해 한반도 중부권에 곧바로 진격해 한반도 중북부를 장악하려는 복안이었다. 이순신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감옥에 있는 줄만 알았던 이순신장군이 다시 진도앞바다에 나타난 것이다. 참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순신장군의 질긴 악연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장군이 감옥에 갇히게 되어서 가장 기뻐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는데 이제 또다시 이순신장군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었다.


명량해전의 최대의 격전지가 바로 울들목이다. 울들목은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섬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급류가 심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심한 옥고를 치르고 난 후 아픈 몸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장군에게는 당시 수백척의 왜적선과 상대할 수 있는 전함은 고작 13척에 불과했으며 병사들 또한 상당수가 도망가거나 사라진 후였다.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완성한 수군 함대 300척은 원균의 처절한 패배로 거의 다 소실되거나 수장되어 버렸기에, 그야말로 잿더미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개전 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이순신 수군의 열약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선조는 대신을 보내 이순신에게 차라리 수군을 폐지하고 충청도로 올라와서 훗날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하지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끝까지 항전의지를 되새겼던 것이다. 나중에 한 척이 추가되었다.

우리 조상이래서가 아니라 참으로 대단한 의지를 지닌 무장이 아닐 수 없다. 고작 함선 13척으로 적선 333척을 상대하겠다고 나선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장군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울들목의 지형적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법을 구사해서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


진도대교가 있는 울들목


진도섬과 해남면 사이에 있는 좁은 수로인 울들목은 수심이 20m 정도이며 거리는 323m에 불과한 작은 해협인데 엄청나게 빠르고 거센 조류가 흐르고 있어서 한번 조류에 휩쓸려 버리면 거센 조류에서 빠져나오기가 불가능한 곳인데, 이순신장군이 착안한 전술이 바로 이러한 거센 조류를 최대한 역이용하는 전법이었다는 사실을 왜선단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지리적 특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킨다는 것은 세계 해전 사상 최고의 해전이라는 대역사를 만들어냈으며 이순신장군이 아니라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복안이었다.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던 충성스러운 전사가 지혜와 병법을 최대한으로 활용함으로써 세계역사상 유래없는 대승을 일궤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수군이 13척의 판옥선으로 왜군선단 333척을 맞아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몇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다.

이순신함선들은 왜군선단을 만나 도망치는 척하며 물쌀이 가파르고 조류가 심한 울들목으로 많은 왜선들을 유인해 왔다. 쉽게 이야기하면 유인매복 작전을 구사했던 것이다. 당시 고작 13척에 불과한 이순신 선단으로서는 넓은 진도앞바다에서 정면승부를 거는 것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거북선


이순신장군은 전투 전부터 울들목에 철쇄(쇠사슬)를 준비해 두었는데 이 철쇄(쇠사슬)를 울들목의 좁은 해협 밑에 숨겨 놓았다가 적선이 나타났을 때 이 철쇄를 팽팽하게 당겨서 빠르게 밀려오는 왜선들의 밑부분을 걸어서 침몰시키거나 묶어두는 전법을 구사함으로써 왜군함선들의 공격진로를 완전 차단했던 것이다. 철쇄에 걸려 정지당한 왜선들은 일부는 침몰하거나, 뒤에 오는 함선들과 연쇄 충돌도미노 현상이 벌어짐으로써 일부 왜함선들이 난파되었고 많은 왜선들이 발이 묶여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왜함선의 진행방향으로 거센 조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러한 거센 조류도 왜함선들의 충돌시 충격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해서 왜선의 난파를배가시켰으며 울들목 철쇄(쇠사슬)에 의해 정지당한 왜군함선들의 조총사정 거리를 벗어난 지역에서 이순신함선들이 포진해 있다가 조총보다 훨씬 유효사거리가 긴 천자총통으로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함으로써 왜함선들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이순신함대의 승리의 또다른 요인은 바로 우수한 무기체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순신이 이끌던 판옥선에는 조선의 함포, 천자총통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 천자총통의 유효사거리는 평균 700m 정도 되며 가장 긴 사거리는 1,200m라고 한다. 이에 반해 당시 왜함선은 함포 자체가 없으며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조총이나 화살이다. 


당시 일본의 함선은 밑이 뽀쪽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매우 불안정해서 방향전환이나 무엇인가에 걸리면 잘 넘어진다. 그리고 일본 함선은 크기가 작아서 무거운 화포를 장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당시 일본에서는 함포 제작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그들은 오로지 조총으로만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군의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150m로 우리 천자총통의 유효사거리 700~1,200m 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공방전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조총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즉, 명량해전의 울들목에 철쇄(솨사슬)를 달아놓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철쇄로 왜함선의 발을 묶어두고 조총 사거리를 훨씬 벗어난 원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순신함선의 천자총통으로 맹폭격을 가하는 것으로, 이러한 이순신의 전략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명량해전의 대승의 요인이 되었다.


울들목의 해협에서 철쇄에 걸려 정지상태에 있는 왜함선들로부터 500m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이순신함선의 천자총통에서 일제히 함포사격을 가했을 경우에 500m 거리는 천자총통의 유효사거리 내에 있어서 적선을 파괴시킬 수 있지만 왜군 조총의 유효사거리에서는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우리 함선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시 조선의 천자총통 같은 무기의 우수성과 이순신장군의 치밀하고 뛰어난 전략전술이 그대로 적중했기 때문에 이순신 함대는 대승을 거두게 된 것이다.

명량대첩에서 왜선은 31척이 침몰해 버렸고 90척이 파손을 당했으며, 우리 함선은 단 한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명량해전에서 아군의 사망자수는 단 2명(부상자 3명)에 불과하며 왜군은 약 3,500여명의 사망자와 4,5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뭏튼 명량해전의 대승으로 인해서 서남해안의 재해권은 우리 수군이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으며 정유재란을 일으켜 2차로 침입해 들어왔던 왜군들의 북상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던 것이다.

육지에서는 당시 왜군들이 충청도지역까지 진출해 있었는데 북상하던 왜군들은 직산지역에서 명군을 만나 대접전을 벌였지만 이 역시 패배하였으며 충청도지역에서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되었는데, 해전에서 이순신함대에게 왜함대가 대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왜군들은 보급품 부족등의 문제로 더 이상 북상을 포기한 채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왜성을 쌓고 방어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순신장군의 명량해전의 대승은 한반도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 후 왜군들은 더 이상 서남해안 진출은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명량해전의 승리로 이순신함대의 완전한 해상권 장악이 완료되었고 왜군들의 보급품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한반도 북상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명량대첩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함대의 명량해전의 대승은 그동안 수세국면으로부터 벗어나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임진왜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순신의 ‘명량해전’ 동영상 1부






이순신의 ‘명량해전’ 동영상 2부









♣ 이순신장군의 임진왜란 당시 역대 전쟁기록


횟수 

전투시기 

충무공 년보

지휘장수

전투결과

조선-(명나라)

여진-왜(일본)

1

1587.9.

녹둔도

조경록 이순신

갑청아 사송아

포로 60명 구출

2

1588.1.14.

녹둔도

이일 김우추 이순신(이 전투 후 백의종군 풀림).

우을기내

적 33명 사살200여호 불태움.적380명 사살말 9필 소 20두 획득

3

1592.5.7.

옥포

이순신

도오도오 다카도라

왜선 26척 격파

4

1592.5.7.

합포

이순신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5척, 왜군 패주.

5

1592.5.8.

적진포

이순신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11척 격파.

6

1592.5.29.

사천

이순신 원균

가메이타 고레노리

왜선 13척 격파.

7

1592.6.2.

당포

이순신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21척 격파.

8

1592.6.5.

당항포

이순신 원균 이억기

 

왜선 26척 격파.

9

1592.6.7.

율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구루시마 미찌후사

왜선 7척 격파.

10

1592.7.8.

견내량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47척 격파.12척 나포.

11

1592.7.11.

안골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구기 요시다까

왜선 42척 격파.

12

1592.8.29.

장림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왜선 6척 도주.

13

1592.9.1.

부산다대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왜선 128척 격파.

14

1593.2.6∼ 3.8.

웅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구마다니

왜군 100명 사살.

15

1594.3.4.

당항포

이순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31척 격파.

16

1594.9.29.

장문포

이순신

후꾸하라

왜선 2척 격파.

17

1594.10.1.

영등포

이순신

시마쯔

왜군 격파.

18

1594.10.4.

장문포

이순신

후꾸시마

쌍방간 조우 대치전과 없음.

19

1597.8.28.

어란진

이순신

도오도오 다까도라

왜선 도주.

20

1597.9.7.

벽파진

이순신

도오도오 다까도라

왜선 도주.

21

1597.9.16.

명량

이순신

도오도오 다까도라

왜선 31척 격파.

22

1598.7.18.

절이도

이순신 진린

 

왜선 50척 격파.

23

1598.9.19∼11.15.

관양만 예교성

이순신 진린권율 유정(劉綎)

고니시 유끼나가

왜군 퇴로 요청.왜선 30척 격파.11척 나포.명나라 전선 39척 침몰.

24

1598.11.18∼11.19.

노량관음포

이순신 진린

고니시 유끼나가

이순신 전사.왜선 200여 척 격파.왜선 50척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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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27회 ‘아이언맨이 된 남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미남배우, 거짓방송 논란




지난 8월 24일 MBC에서 방송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허리우드 명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이야기기 담긴 ‘아이언맨이 된 남자’ 편이 다루어졌는데, ‘아이언맨이 된 남자’ 편이 방영된 후 시청자들로부터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고 한다.



왜냐하면 ‘서프라이즈’ 아이언맨 편에서 다루었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픽션화되었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24일 서프라이즈 ‘아이언맨이 된 남자’편에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어렸을 때부터 악동으로 묘사되었는데 친구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히고 정학처분을 받았으며 그 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등 마약중독자가 되어 버려 퇴폐적인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술과 마약에 찌들어 밑바닥 생활로 전전해 나갔는데 아들의 타락한 삶을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가 아들에게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영화에 단역배우로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며, 이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회색도시’ ‘채플린’ 등에 출연해서 그의 숨겨져 있는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명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약중독자에서 일약 유명한 영화배우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또다시 마약에 빠져들었으며 그의 마약 중독현상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결국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마약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교도소에 복역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6개월 동안 감옥생활 끝에 보석으로 풀려난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를 영화출연에 캐스팅하려는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영화출연으로 화려한 재기를 노리고 있었던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여러 영화사들을 돌며 영화출연을 타진했지만 이미 사고뭉치로 전락해버린 그에게 더 이상 영화출연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영화 ‘아이언맨’의 제작사측에서는 ‘아이언맨’의 공개캐스팅을 실시하였는데 재기를 꿈꾸고 있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의 감독을 찾아가서 자신에게 주인공 토니 스타크 배역을 맡겨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로버트 다우니는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었고 주인공 토니 스타크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로버트 다우니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영화 ‘아이언맨’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 그는 다시 세계적인 톱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아이언맨’의 흥행대성공으로 재기에 완벽하게 성공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그의 영화 한편당 출연료는 7,500만 달러(한화 약 769억2,000만원)를 받았다고 하며, 2013년도와 2014년도, 2년 동안 연속해서 허리우드배우 중 출연료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세계적인 톱스타로 급부상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에 연속으로 출연하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서프라이즈’ 방송 이후 일부 시청자들과 네티즌의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며 서프라이즈 아이언맨이 된 남자 편이 거짓방송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네티즌들의 주장은 기존에 알고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이며 ‘서프라이즈’ 제작팀이 로버트 다우니의 실상을 삼각하게 왜곡했다는 것이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은 ‘로비트 다우니 주니어의 완전히 틀린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꾸몄다’라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네티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서프라이즈’에서 방송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고등학생 때 동료학생의 만화책을 찢고 못살게 굴어서 정학처분을 받았다고 나왔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고등학생 때 배우로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을 뽑는 각종 투표에서 1위를 할 정도로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다고 하며 그는 연기자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스스로 브로드웨이로 찾아갔다고 한다.



마약에 찌들어서 아버지가 그를 영화단역배우로 출연시켰다는 내용도 거짓이라고 하며 그는 스스로 판단해서 영화사에 입문했다는 것이다. 또한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마약을 권했다고 하며 후일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자신에게 마약을 복용하도록 권했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서프라이즈’에서 마약사범으로 전락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하려는 영화사들은 없었다고 묘사하면서 그가 직접 ‘아이언맨’의 존 파브로감독을 찾아가서 캐스팅을 부탁했다고 하는데 로버트 다우니의 출연영화 ‘키스키스 뱅뱅’을 관람했던 존 파브로 감독이 먼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제의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서프라이즈 ‘아이언맨이 된 남자’편에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실제 상황과 다른 내용으로 방송을 했다며 네티즌들의 구체적인 지적과 항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서프라이즈 제작팀에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영화 ‘아이언맨’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극적인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 사실을 편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프라이즈 ‘아이언맨이 된 남자’의 내용이 서프라이즈한 것이 아니라 ‘아이언맨이 된 남자’를 제작한 제작팀의 제작 실수와 제작 의도가 더욱 서프라이즈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MBC 서프라이즈 시청자 게시판에는 지금도 ‘아이언맨이 된 남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항의글이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시청자게시판의 항의글을 보면 ‘장동건이나 원빈이 외국방송에서 가짜정보로 편집되어서 나오면 어떻겠음?’ ‘방송만 보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허위사실을 방송하다니 쯧쯧’ ‘여태까지 방송된 거짓말 한 것들, 안 걸린 게 다행인 줄 알아라’ 등등 수많은 시청자들의 거센 질타와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거짓 방송 논란에 대해 서프라이즈 제작팀은 25일 ‘일부 사실이 아닌 내용이 방송됐다, 방송의 극적 구성을 위해 각색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이 범한 실수다. 앞으로 정확한 방송을 위해 신경 쓰겠다’고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나섰다.

MBC 서프라이즈 방송은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과 인기를 독차지해왔던 인기프로그램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서프라이즈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으면서 통쾌한 재미를 느끼면서 오랫동안 즐겁게 시청하며 높은 시청률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시청률 높은 인기프로그램으로 장수하고 있는 ‘서프라이즈’ 제작팀은 시청자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검증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진실된 내용만을 엄선해서 방송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청률이 높은 만큼 실제 인물을 묘사하는 콘탠츠에서 일부라도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이 나온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큰 것이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준다면 그 실제인물과 시청자들 모두에게 엄청난 불이익을 주게 되는 것이다.

‘서프라이즈’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진실을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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