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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구광역시 9급 사회복지직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명단 발표




2014년도 대구광역시 9급 사회복지직 필기시험의 합격자명단이 발표되었습니다.

대구시 사회복지직 필기시험은 금년 3월 22일에 치러졌는데 4월 18일 그 합격자가 발표되었답니다.

14년도 대구시 9급 사회복지직 공무원시험의 선발예정인원은 총 129명인데 이번에 필기시험에 합격한 합격자수는 136명으로 나왔으므로 면접시험을 통해서 7명 정도가 탈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번 필기시험 합격자중에서 저소득층은 당초 선발인원에 1명 미달한 상황이라 전원 합격할 가능성이 높으며 시간선택제 합격자는 당초 선발인원인 8명과 똑같은 인원이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으니 결격사유가 없는 한 필기시험 합격자 전원 최종합격할 확률이 높다고 보여

집니다.



직 렬

선발예정

인원

필기합격

인원

합격선

(총점)

129

136

-

9급 사회복지직

(사회복지)

일 반

106

116

338.45

저소득

6

5

227.77

장애

9

7

228.19

시간선택제

8

8

295.45


사회복지직 필기시험에 합격하신 분들은 대구광역시청에 4월 28일,29일에 서류제출을 하시고 난 후 5월 9일날 치러지는 면접시험에 응시하면 됩니다.

대구시 사회복지직 최종합격자 발표는 5월 16일에 대구광역시청 홈페이지에서 공고한다고 합니다.



◆ 대구광역시 9급 사회복지직 필기시험 커트라인(합격선)


2014년 대구시 9급 사회복지직 필기시험 합격선을 살펴보면 일반이 338.45점(평점67.69), 저소득층이 227.77점, 장애가 228.19점이며 시간선택제가 295.45을 기록하고 있지요. 시간선텍제 사회복지직이 일반 사회복지직보다 총점기준 43점이나 낮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그럼 2013년도 대구시 사회복지직 필기시험 합격선을 알아볼까요?

13년도 대구시 사회복지직 커트라인은 일반이 341.66이며 저소득은 279.95점, 장애인은 309.73점을 기록하고 있는데 대구시 사회복지직 커트라인(합격선)은 2014년도가 2013년도보다 더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합격선이 낮아졌다는 것은 시험의 난이도가 더 어렵게 출제되었다는 것을 의미

하지요. 





◆ 2014년도 대구광역시 9급 사회복지직 필기시험 합격자명단


14년도 대구시 9급 사회복지직 필기시험의 합격자명단이 아래 파일에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합격자명단을 보실 수 있습니다.


▶ 14년 대구시 사회복지직 필기시험 합격자명단


2014년도 제1회(사회복지직9급) 대구광역시 지방공무원임용 필기시험 합격자.hwp








2014년도 대구광역시 9급 사회복지직 공무원 시험일정, 면접시험, 합격자발표일


 

시 험 명

응시원서 접수

(인터넷)

시 험 구 분

시험장소

공 고 일

시험일

합격자

발표일

제 1 회

(사회복지9급

-공개경쟁)

2.10(월)~2.14(금)

필 기

2.28(금)

3. 22(토)

4.18(금)

면 접

4.18(금)

5. 9(금)

5.16(금)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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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 내부진입 성공, 사망자수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이 난 지 삼일 째로 접어든 4월 18일 세월호에 구조잠수부 8명이 선내 내부진입이 이뤄져서 구조 및 수색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경찰청장은 ‘우선 선체 진입을 위한 3개 경로를 확보하고 18일 오전 10시에 선체에 공기주입을 성공했다’고 밝혔다. 구조 요원들은 오전에 마련해 놓은 진입 통로를 통해 오후 3시쯤 식당에 진입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잠수부들이 세월호 선내로 진입한 곳을 3층으로 객실과 매점등 편의시설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해양경찰청은 이들 잠수부들을 이용해서 선내에 공기주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해상 크레인이 속속 도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색 작업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28명, 실종자는 271명으로 전해졌다.


한편 세월호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 이준석(69)씨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세월호’가 좌초되자 선장 이씨와 승무원 다수는 제일 먼저 구명보트에 승선한 것으로 밝혀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과 수많은 인명피해의 책임이 있는 선장이 수백명의 나이 어린 학생들을 침몰하는 여객선에 남겨놓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선장 이씨는 선박 좌초 신고가 최초 접수된 지 약 40분 뒤인 오전 9시30분쯤 배 밖으로 나왔다. 한 생존 승객은 ‘내가 제일 먼저 경비정으로 뛰어내려 탑승했는데 당시 뛰어내린 사람들이 더 있었다’며 ‘경비정 구조대원에게 물으니 선장이 나보다 먼저 경비정에 탑승해 있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행 선원법에선 선장이 승객들이 전원 배에서 내릴 때까지 재선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어 조기 탈출한 선장 이모(69) 씨의 행동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배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최고 책임자인 선장이라면 마땅히 승객들을 지도하고 안전한 퇴출과 대피를 도와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 300여명의 승객들을 남겨놓고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탈출한 행동은 선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의 선장은 여객선이 좌초되었을 때 구내방송을 통해서 승객들에게는 밖으로 나오지 말고 방에 있으라고 안내를 해놓고는 자신은 먼저 밖으로 놔와 구명정을 타고 탈출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였다.

선장이라면 마땅히 승객들이 안전하게 대비하고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지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위험에 처한 승객 수백명을 버려두고 자신만 살겠다고 탈출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더욱이 이번 세월호의 침몰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선장이라 더욱 어이가 없을 뿐이다. 현재 선장 이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 가장 책임이 큰 것은 바로 세월호를 출항시킨 청해진해운이다.

안개가 잦아 다른 해운은 배를 출항하지 않는데도 유일하게 배를 출항시킨 곳이 청해진해운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수익에만 급급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여객선을 출항시킴으로써 대형사고를 만들어 내었다고 보여진다.


세월호의 침몰원인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가설은 세월호의 급격한 변침이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 48분 37초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항로를 갑자기 남서쪽으로 틀었다고 한다. 평소처럼 완만한 곡선형으로 선회를 한 것이 아니라 각도가 급한 삼각형 형태로 우회한 것이다.


전문가는 "세월호에 문제가 생긴 시점이 이 같은 급작스러운 우회 시점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해양경찰청도 "이번 사고의 원인은 선체 복원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급격히 방향을 튼 '변침(變針·배가 진로를 바꾸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세월호가 물살이 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를 통과하다 차량, 컨테이너 등 선적한 화물을 제대로 묶지 않아 중심을 잃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당시 선박이 '꽝' 소리를 냈다는 생존자 증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꽝' 소리는 화물이 중심을 잃고 선체와 충돌하면서 날 수 있다. 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방향을 급히 바꾸다 심하게 기울어졌고 선적된 컨테이너와 승용차가 쏟아지며 무게중심을 더 흔들어버렸다는 분석이다.


세월호의 침몰원인과 관련해서 종합해 보면 세월호는 조류가 센 병풍도 인근해상에서 급격하게 선로를 바꾸는 변침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배에 쌓아두었던 차량, 컨테이너들이 쏟아져서 선체와 충돌하였고 선적한 컨테이너들이 쏠려있는 왼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게 되고 세월호가 왼쪽으로 기울어져서 결국 침몰하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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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동영상, 사망자수, 생존자수, 침몰원인


RMS Titanic -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으며 17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사망자 9명, 구조자 179명, 실종자 287명이라는 대형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보다도 더 큰 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여객선참사 중 가장 큰 대형참사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번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보다도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큰 여객선 침몰사건이 1912년에 발생한 바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라고 할 수 있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여객선참사로 기록될 만큼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대형참사로 기록된 초호화유람선 침몰참사이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탑승객 2,223명을 태우고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하여 미국 뉴욕을 향해서 항해하던 중 4월 15일 대서양에서 거대한 빙산을 만나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곧바로 침몰해버렸으며 당시 무려 1,514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인류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낳았던 대형참사였다.

뉴욕쌍둥이빌딩 테러폭팔 사고 때보다는 더 큰 규모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 여객선사고이다. 이 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당시 구조된 사람은 710명에 불과했고 무려 1,514명이나 사망했다.


대서양 횡단을 목적으로 건조된 타이타닉을 화이트스타 라인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여객선이었는데 말이 여객선이지 사실상 유람선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설비를 갖추고 있는 초호화유람선이었다.

타이타닉호는 46,328톤으로 11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형 수영장과 초호화 스위트룸, 실내체육관, 찬란한 샹들리에가 눈부신 계단, 대형 레스또랑, 드넓은 산책코스 등 화려하고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아름답고 거대한 유람선이었다.



당시 승선한 탑승객 2,223명에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710명의 가난한 승객들도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서 더욱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던 사고였다.

이렇게 4만 6천톤급 11층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원인은 빙산과의 충돌 때문이었는데 또다른 원인은 바로 통신사의 안이한 태도로 인해서 위험신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타이타닉호가 항해 나흘 째인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경 20m의 거대한 빙산과 만나 충돌했는데 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항로를 변경해서 피할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타이타닉호가 침몰로 대형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타이타닉호 통신사 잭 필립스의 안이한 대응태도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타이타닉호는 다른 선박 통신사로부터 6번의 빙산위험 경고통신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항로를 변경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빙산충돌을 피할 수 있는 상황

이었다.



그런데 타이타닉호 통신사 잭 필립스는 빙산위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안 호의 통신사 에반스가 보낸 빙산위험 통신을 절차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폐기해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범하고 말았고 그러다가 타이타닉호는 전방 450m거리에 있는 20m의 거대한 빙산과 조우하게 된다.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빙산을 보았을 때 1등항해사등 승무원들이 제때에 선박을 돌리지 않는 2차 실수를 범하고 말았고 나중에 배를 우회전했을 때는 이미 늦어진 상황이 되고 말았다.

타이타닉호가 우회전하면서 선박의 아래부분이 빙산과 충돌했고 이 때 여객선 우측 하단에 90m가 손상되어 바닷물이 엄청나게 선체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타이타닉 통신사가 6차례나 받은 빙산위험 통신에 귀 기울였다면, 그리고 빙산을 보았을 때 신속히 뱃머리를 돌렸더라면, 충돌 및 침몰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 선례가 전혀 없었던 탓에 안전불감증에 푹 빠져있던 승무원들의 무사안일한 태도로 인해 미리 대처하지 못해서 선량한 승객 1,514명이 억울하게 사망하게 되는 대형참사를 낳게 된 것이다.



대형여객선 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안전개념과 대응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승무원들의 평소의 안전의식과 상황발생시 위기대처 능력의 여하에 따라서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피해를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이타닉호 하단으로 침투한 바닷물은 서서히 선박의 대부분으로 밀려들어갔으며 3시간 만에 타이타닉호를 완전히 침수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구명정이 20개 밖에 되지 않았는데 20개의 구명정으로는 사람 1,178명을 태울 수 있었으며 타이타닉호 총 탑승객은 2,223명 전부가 승선할 구명정을 부족하게 구비한 것도 2차피해를 키웠던 또다른 원인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원래 방수용 격벽이 설계되어 있었고 문들도 물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실제 사고발생시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구명정에 타지 못한 천명 이상의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게 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십 분 내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사람이 바다물에 빠졌을 경우에는 저체온증으로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동영상




스미스 선장은 배수 펌프로 선박안에 차있던 물을 밖으로 빼내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저 몇 분의 시간을 더 버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타이타닉호와 불과 20km 정도의 거리에 정박중인 화물선 캘리포니안호가 있었지만, 해당통신사가 타이타닉의 통신사에게 일침을 듣고서는 화가 나서 취침 중이라 타이타닉호의 긴급 조난신호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약 90km나 멀리 떨어진 여객선 카르파티아호가 타이타닉호가 보낸 조난 신호에 응답해 전속력으로 타이타닉이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배의 최대 속도가 17노트밖에 되지 않는 카르파티아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타이타닉호가 침몰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였고 그 때부터 카르파티아호에 의해서 구명정에 타고있던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총 710명을 구조하였지만 구명보트에 타지 못한 채, 구조되지 못한 1,514명의 사람들을 아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3차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장 가까운 거리(20km)에 있던 켈리포니안호가 구조요청 통신에 응답해 더 빨리 구조하러 왔더라면 훨씬 사망자를 줄일 수도 있었지만 켈리포니안호 통신사는 타이타닉호 통신사와 빙산위험 통신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로 인해서 서로 감정대립이 생겼으며 그로인해 타이타닉호의 조난통신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더욱 큰 인명피해를 가져왔던 것이다.


타이타닉호 침몰과정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혀져 오고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되기 시작한 후에도 남들에게 양보하기 위해서 구명정에 타지 않고 배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노부부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이 매우 좋은 노부부였는데, 남편 이사도라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은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하인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하인을 구명보트에 태운 뒤 남편과 함께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백만장자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현지처와 하인을 보트에 태우고 자신은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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