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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추정 사체 발견, 의문 증폭, 손가락 지문 DNA일치, 반백골화된 시신, 유병언 자살? 타살?




유병언 전 새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되었다고 화제가 되고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추적과 검거에 온국민들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사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사신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바로 전남 순천경찰서라고 하는데 순천경찰서는 6월 12일 박모씨의 신고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6월 12일 발견되었던 유병언 사체 소식을 한달도 훨씬 더 지난 지금시점에서 발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6월 22일 순천경찰서 3층 대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 브리핑을 열고 “당시 발견된 사체는 부패가 심해 신원파악을 못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유병언의 DNA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구두로 받았다”고 밝혔다.


우형호 순천 경찰서장의 발표에 따르면 유병언 사체 발견 당시, 유병언 사체에서는 스쿠알렌 1개와 천가방 하나, 돋보기 1개, 그리고 주변에 소주병 2개, 막걸리병 1개가 빈병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체로 발견된 유병언은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대자로 누워있었다고 히며 상의점퍼는 고가의 이테리제 ‘로로피아나’, 신발도 ‘와시바’라는 명품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병언 전 세모회장 추정 사체는 발견 당시에 거의 반백골화 상태였다고 경찰에서 발표하고 있다. 유병언 추정 사체가 상당히 훼손되어 있어서 거의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하는 것이다.

이같은 순천경찰서의 발표는 상당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발표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경찰의 발표에 많은 국민들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믿지못하겠다고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사체 사진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순천 송치재 부근의 한 매실밭이라고 하는데 이 매실밭은 유병언이 경기도 안성 금수원을 탈출해서 5월 25일까지 은신해있었던 바로 그 순천의 별장에서 가까운 지점(2~3㎞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당시 경찰은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송치재 인근 순천의 한 별장을 급습해서 수색을 벌였으나 유병언은 이미 탈출한 후였다. 바로 경찰이 수색을 벌였던 송치재 별장으로부터 2~3㎞ 정도 떨어진 한 매실밭에서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매실밭을 운영하는 박씨(77)가 6월 12일 자신의 밭에서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며 사체를 입수한 순천경찰서는 사체의 부패 정도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유병언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며 나중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서 검사를 실시한 결과 유병언의 사체로 확인되었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경찰의 발표에 대해 많은 누리꾼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시신발견 시점이나 발견 당시 경찰의 태도나 처리행태 등 너무 매끄럽지 못하고 의혹스러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순천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은 ‘시신 훼손으로 지문복원에 시간이 걸렸다. 오른 손 지문의 일부가 남았고 오늘 새벽 유병언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발견 당시 왼쪽 집게손가락은 절단돼 있었으며 6월 13일에 1차 부검을 바로 실시했다. 사망 시점에는 시신이 부패돼 알 수 없었다’ 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6월 12일 신고가 들어온 사체를 아무리 유병언인 줄 몰랐다고 해도 발견된 그지역이 바로 유병언이 은신해있던 그별장 부근이었으며 그 일대를 경찰 기동대까지 투입해서 유병언을 대대적으로 수색했던 바로 그지역인데 전혀 유병언일 거라는 추측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경찰의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으며 6월 13일 부검을 실시했는데도 오늘(7월 22일)에서야 유병언인 줄 알 수 있었다는 발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의혹스러운 부분은 또 있는데 그 사체가 유병언이 맞다면 유병언이 5월 25일 순천 별장을 탈출했고 사체가 발견된 시점은 6월 12일이니까 유병언은 5월 25일부터 6월 12일 사이에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소한 유병언이 사망한 가장 이른 시점은 5월 25일로 잡을 수 있는데 5월 25일 죽었다고 해도 6월 12일 발견된 사체가 80%나 백골화가 진행되어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대단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이 죽어서 불과 17일만에 그렇게 빨리 부패할 수 있을까? 더욱이 뼈가 80%나 차지할 정도로 그 짧은 기간에 심하게 부패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길게 잡아서 17일이고 짧게 잡으면 7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백골화가 80%나 진행된 그 사체가 과연 유병언의 사체가 맞는지에 대해서 많은 누리꾼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이다. 사람이 죽은지 불과 17일 만에 백골화가 80%나 진행되고 완전 부패되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일부의 누리꾼들은 그 시신은 유병언이 아닌 다른 노숙자의 시체가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5월25일 순천 송치재에서 달아난 것으로 알려진 유씨가 아무리 날씨가 더웠다 하더라도 불과 18일 만에 백골 상태의 변사체로 발견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참조

경찰 내부에서조차 유병언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발언이 나올 정도이니 여전히 의문투성이라고 한다. - 경향신문 참조


의혹스러운 부분은 또 있다. 사체 발견 당시 유병언 천가방 안에서 소주 2병과 막걸리 1병이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유병언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유병언이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자 신세를 비관하고 소주와 막걸리 짬뽕해서 3병이나 마셨다니, 속상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술을 전혀 못먹는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의혹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유병언은 수천억대의 자산가이며 도주 당시 현금 50억이 든 돈가방을 소지하고 있는 재력가가 속상하다고 고작 소주나 막걸리를 먹는다는 것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수천억대의 자산가가 경찰기동대 수천명이상이 동원되어 대대적으로 수색을 벌였던 순천별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밭도랑에서 값싼 소주와 막걸리를 남들이 볼수 있던 바깥에서 한가하게 마셨다니,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여러분! 상상해보시라! 바로 인근에서는 경찰 기동대가 수천명이 자신를 잡겠다고 거미줄처럼 지역 전체를 수색하고 있는데 그 가까운 지역에서 외부에 노출된 밭도랑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한가하게 마실 수 있겠는가? ‘나잡아 봐라’ 하고 ~

70년대 홍콩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은 스토리이다.


경찰은 이 시신이 유병언씨가 거의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이 사체의 손가락 지문을 채취해서 확인했다고 하며 유병언의 지문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또한 순천경찰서는 지난 21일 ‘국과수 감정 결과, 송치재에서 발견된 유병언 추정 사체에서 채취한 체액과 금수원 내 유병언 집무실에서 채취한 DNA시료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통보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이같은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부 네티즌들은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유병언 추정 사체발견 소식과 관련해서 ‘제2의 조희팔’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조희팔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다단계판매업체를 차리고 의료기 임대사업 등으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3만여명의 투자자를 속여서 4조원 이상을 가로채는 등 최대 규모의 피라미드 사기를 저질렀던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경찰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조희팔은 수사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고 중국밀항에 성공했다. 밀항한지 4년 뒤인 2012년 5월에 경찰은 조희팔이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해 국내로 조희팔의 유골이 이송됐다고 발표했다. 유골은 국내로 이송되어 화장되었으며, 결국 수사당국은 화장된 유골의 DNA를 확인했으나 감식이 불가능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자 피해자들은 조희팔이 자신의 사망을 허위로 꾸몄다고 주장했으며, 실제 중국에서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잇따라 발생했으며 그의 사망이 ‘거짓’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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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근로장학금 신청기간, 신청방법, 신청자격, 신청절차, 근로형태




대학생여러분! 국가근로장학금 신청하셨나요?

2014년 2학기 국가근로장학금 신청절차가 7월 21일부터 시작되었답니다. 그리고 오는 8월 1일까지 신청을 받는다고 하며 접수는 한국장학재단(http://www.kosaf.go.kr/) 홈페이지에서 받는다고 하니 아직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은 신청기간 내에 신청하시기 바래요.

국가근로장학생은 한국장학재단이 주최하며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근로에 대한 대가를 장학금이라는 형식으로 지급하는 장학금제도랍니다.



국가근로장학금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 중에서 국내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성적이 70점(100점 만점) 이상과 소득 7분위이하인 학생에게 지급해주는 장학금이지요.

이번에 신청하는 국가근로장학금은 2014년도 2학기 1차 근로장학금으로써 이번 1차에 신청을 놓치신 분들은 2차와 3차가 남아있으니 그 때 신청하시면 된답니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국가근로장학금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신청이 가능하며 장학재단 홈페이지에서 접수받기 때문에 24시간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국가근로장학금의 신청자격


국내 대학에 재학중인 국내국적의 학생으로 성적기준은 직전학기에 C학점 (70점이상) 이상의 기준을 충족하여야 하며 동시에 소득 7분위 이하의 소득기준에 해당해야 신청이 가능하답니다. 소득분위는 본인을 포함해서 부모님과 기혼자인 경우에는 본인과 배우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답니다. 

소득정보와 재산정보, 자동차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하네요. 즉 국가근로장학금은 성적은 C이상 소득은 7분위 이하의 요건을 충족해야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 국가근로장학금 신청기간, 신청절차


1차 : 2014.07.21(월) ~ 08.01(금)

2차 : 2014.09.22(월) ~ 09.26(금)

3차 : 2014.10.20(월) ~ 10.24(금)


3차례의 장학금 신청기간이 있는데요. 이 기간에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하고 관련서류 제출, 선발순위를 재단에서 확인해서 본인이 재학 중인 대학에 통보하면 대학에서 학생의 성적과 학적을 확인한 후 최종 선발합니다. 선발된 학생은 근로지에 배정돼 근로가 진행됩니다.


국가근로장학금의 합격자 발표는 자신이 다니는 소속 대학에서 합격자를 통보해준다고 합니다. 합격자가 되면 소속 대학교에서 해당자에게 근로지를 배정해주고 근로가 진행된답니다.





♣ 국가근로장학금의 신청방법 및 접수절차


국가근로장학금을 한국장학재단의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함 - 신청후 1~2일 후 홈페이지에 방문해서 서류제출 대상여부를 확인함 - 대상자로 확정되면 필수서류와 선택서류를 구분해서 제출함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 접속 - 로그인 - 사이버창구 - 서류제출 - 서류제출 버튼 클릭 후 파일 업로드


▶ 서류제출까지 완료하고 나면 한국장학재단에서 해당 학생에 대한 소득상황과 성적을 확인해서 적격자를 판정한다.

▶ 근로장학금의 적격자로 결정되고 나면 한국장학재단에서 그 학생의 소속대햑교로 합격사실을 통보한다.

▶ 해당대학교에서는 해당 학생에게 적절한 근무지를 배정해주게 된다. 그리고 근무가 시작된다.


♣ 근로형태, 근로시간 - 교내근로와 교외근로, 보수


국가근로장학금은 글자 그대로 일정시간의 근로를 제공하고 그 근로의 대가를 국가로부터 

장학금을 지급받는 근로장학금입니다. 그러니 대가제공 없이 그냥 지급받는 일반장학금과는 다른 개념이지요. 일정기간 동안 일정시간의 노무(근로)를 제공해야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지요.


국가근로장학금은 교내근로와 교외근로로 나눠어 지는데 교내근로의 경우 시급 8,000원, 교외근로의 경우 시급 9,500원을 지급받게 된답니다.

일반 아르바이트의 경우 시급이 고작 4,500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급여수준이라서 학생들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랍니다.


국가근로장학금은 학생들의 근로가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복지혜텍의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근로시간은 최소한으로 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는 최대한으로 높여주는 제도랍니다.


근로시간은 한학기중에 주당 최대 20시간 근로(야간교육과정 학생은 주당 최대 40시간), 방학 중에는 주당 최대 40시간 근로가 이뤄지며 근로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 이뤄지므로 강의수강에는 지장이 없답니다.

방학 때에는 근로시간이 더 늘어나므로 때문에 그에 따라 보수도 증가하게 되므로 목돈도 마련할 수 있답니다.


또한 교내근무의 경우에 도서관에 배정된다면 근로와 공부를 함께 병행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답니다. 도서관 근무는 주로 앉아서 하는 환경이므로 책을 보면서 근로가 가능하기에 근로환경 측면에서 일반 아르바이트와는 상대가 되지 않지요.


 2014년 한국장학재단은 장학생 선정 기준에서 소득 산정 방법과 학점 제한 등을 개편함으로써 수혜층을 더욱 넓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직전학기 성적 C0이상, 소득 7분위 이하인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근로 장학생으로 지원이 가능합니다.


또한, 국가근로장학금은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다자녀 가구, 국가 유공자 자녀, 장애인 등의 경우에는 선발 시 우대한다고 합니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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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23회 클리프턴 홀의 비밀, 영국 최악의 흉가, 영국의 소녀유령 산드라




영국에서 한국의 영화 ‘여고괴담’과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서 섬뜻함을 넘어 충격을 주고있다. 영국의 한 가족이 2007년 노팅엄셔에 위치한 클리프턴홀이라는 대저택으로 이사를 왔다. 클리프턴홀이라고 불리우는 이 대저택은 11세기에 지어진 유서깊은 대저택으로 운치있고 웅장해서 가족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린 딸 써니는 만족해하는 아버지와 달리 이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드는 눈치를 보였다.



그런데 이 대저택으로 이사온 첫날 밤부터 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사온 첫날 써니의 가족 앞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의문의 소녀가 잠시 나타났었는데 그 의문의 소녀는 그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듯 밤마다 나타나서 가족들을 괴롭혔으며 가족들 전체가 이 이상한 소녀의 환영에 시달렸던 것이다.


어느날 밤에 누가 밖에서 황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잠시후 다시 문을 두드리며 ‘도와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외치는 소녀의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지만 문밖에는 아무도 없이 텅비어 있었다. 또한 써니의 엄마가 욕실에서 세면을 하고 거울을 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 거울에는 그 이상한 소녀의 얼굴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나타나는 이상한 의문의 소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의문의 소녀의 유령을 본 아버지는 스위치를 켜기위해 손을 뻗다가 그 소녀유령의 손과 닿게 되었는데 그만 그 손에 큰 상처를 입었고 써니는 거실에서 갑자기 사라지기까지 했다.


소녀유령은 가족들 모두에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급기야는 써니 아빠에게 타박상을 입히기까지 하였다.

써니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환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을 바꾸게 되었으며 그 저택에는 분명 소녀유령이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거실에 있다가 정원으로 나온 써니는 그 저택 정원에서 한 이상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는 써니에게 ‘조심해. 이곳은 오래 머물수 있는 집이 아니야’라고 충고하고 사라졌다.

얼마후 써니는 다락방에서 우연히 초등학생앨범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고 그 앨범을 뒤적이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그 앨범속 한 여학생 모습이 자신이 매일같이 시달리는 여자유령의 모습과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써니는 먼저 만났던 그남성이 이저택과 관련된 비밀을 알고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남성을 다시 만났으며 그 앨범을 보여주었는데 그 남성의 말이 정말 뜻밖이었다.

그남자는 ‘나는 그 학교 수위로 일하고 있었다. 학생 중에는 산드라라는 예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결국 산드라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 학교에는 이상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산드라 유령을 봤다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후 학교에서 계속해서 산드라유령이 출연하여 학생들은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 학교는 결국 폐교하고 말았고 그 학교 폐쇄 이후 그 학교를 개조해서 다시 지은 건물이 바로 클리프턴홀 저택이라는 것이다. 이 후 이저택에도 산드라의 유령이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종종 그모습을 보이곤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서 외롭게 죽어간 산드라가 한이 맺힌 유령이 되어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억울한 한을 풀려고 하는 것이었다.

클리프턴홀의 비밀을 알게 된 써니의 가족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고 지금까지 클리프턴홀은 아무도 살지않는 폐허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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